종합상식/세상사는이야기

구두 속의 쪽지

오늘의 쉼터 2010. 6. 10. 17:55

(6월 10일 목)

    구두 속의 쪽지 해마다 스승의 날이 가까워지면 생각나는 일 두 가지가 있다. 몇 년 전 스승의 날, 아파트 한 단지에 살고 있는 맞벌이 큰 딸이 출근길에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초등학교 2학년 손자에게 카네이션 한 송이 사서 들려 보내라고. 손자는 벌써 학교에 가고 없다며 아내 걱정이 태산이다. 선생님께 꽃을 드리지 못하는 어린 손자의 얼굴이 눈에 밟힌단다. 꽃을 준비 못한 딸아이가 나는 못 마땅했다. 당장 전화로 호통을 치고 싶었으나 직장일이 바빠 준비 못했으리라 짐작 되어 참았다. 어린 손자의 가슴에 선생님에 대한 은혜恩惠 하는 마음을 심어 주고 싶었다. 아내와 나는 꽃집에서 카네이션 두 송이를 준비해 손자에게 주며 하나는 네가 선생님에게 공손이 인사드리고 꽃을 드려라. 그리고 나머지 한 송이는 너처럼 미처 준비하지 못한 친구에게 주어라. 어린 손자지만 알았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고맙습니다. 인사를 했다. 어린 마음속에 부모父母님을 공경恭敬하고 선생님 말씀에 순종順從하는 착한 손자이기를 기도한다. 대견스런 손자가 귀여워 우리부부는 기분이 좋았다. 평생平生을 교직에 있다가 정연한 나는 8년 전 일이 생각이 났다. 남여 전교생 2천여 명 교직원이 백여 명 되는 실업계 고등학교에 교장으로 재직 중이었다. 겨울 방학 전 학생들 마지막 고교졸업고사가 있는 날이었다. 나는 할 일이 있어 학생들이 하교하고 전 직원이 퇴근 한 후 늦게 학교를 나오게 되었다. 퇴근길 현관 신발장에서 구두를 꺼내 신었다. 그런데 구두 속에 곱게 접은 하얀 쪽지가 있었다. “교장 선생님!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고 조회시간에 훈화를 하셨죠.” “그런 데 저는 억울합니다.” “오늘 상업영어 시험시간에 분반 학급 여3-2 A조에서 주관식 문제를 커닝을 했답니다.” “저는 밤을 새워 공부해 분반 B조에서 정직正直하게 시험을 보았습니다.” “존경하는 교장 선생님! 조사하여 바르게 시정해 주세요.” 편지의 내용은 짧지만 부정不正을 바로 잡아 달라는 학생의 요구가 강强하게 가슴을 울렸다. 물론 열심히 공부한 학생이 높은 성적이 나오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고발 학생의 의사를 무시하고 부정행위자不正行爲者를 그대로 방치 할 수가 없었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와 쪽지를 여러 차례 읽으며 나는 잠을 설쳤다. 다음 날 출근하여 교감선생님께 직접 조사해보라 했다. 교직 경험이 없는 기간 제 여교사가 늦게 등교한 학생을 훈계하는 중에 23명 중 21명이 주관식 한 두 문제를 앞뒤로 보았다고 시인하는 자술서를 썼다. 성적관리 규정에 의거 해당과목 0점 처리, 부정행위자 21명을 징계토록 했다. 교감과 주임교사가 그대로 덮어두자 했다. 그러나 모든 결정의 결과는 교장이 책임을 면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부정행위자 21명 보다 부정을 바로 잡아 달라는 한 학생이 옳다고 생각했다. 이 일을 그대로 덮어 두면 정직한 한생의 나에 대한 불신의 상처가 두려웠다. 의義와 불의不義의 양편에서 다수多數와 소수小數에 관계없이 옳은 편을 따라야 하는 것이 원칙原則이라생각한다. 의와 불의가 상존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고민과 번민 속에 원칙原則으로 처리 하는 것이 진리眞理라 생각 했다. 학생들이 도교육청 홈피에 살려 달라고 글을 올렸다. 교육청에서는 이러한 학생 민원이 없도록 처리하라고 전화가 빗발쳤다. 나는 학생과 학교 교육은 학교장인 내가 법法에 따라 지도한다고 일축했다. 일부 인문계 고등학교에서는 학생의 내신이 유리하도록 평가 난이도를 낮추는 사례가 빈번했다. 21명 유기정학 대상이나 교장 재량권 행사로 하루근신에 유리 청소를 하게했다. 유기정학을 받으면 취업 확정된 학생이 규정상 취업이 취소되었다. 만약 유기정학으로 처리 할 경우 학생들에게 가혹한 벌이라 생각했다. 교육청 출입 기자가 중앙 일간지에 “우리 교육敎育은 살아 있다.”는 기사를 썼다. 신문 기사를 보고 KBS TV 방송국에서 이른 아침 출근 전에 카메라를 메고 학교에 들이 닥쳤다. 우리나라 교육을 바로 잡기 위해서라도 방송에 협조해 달라고 하루 종일 교장실에 진을 치고 있었다. 누구나 부정행위자를 당연히 처벌 했을 것이다. 사전에 예방토록 지도 못한 것이 부끄럽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두 번 상처를 주고 싶지 않다고 취재를 거절했다. 학교명과 학생들 교복은 보이지 않도록 하체만 촬영하기로 합의하여 할 수 없이 촬영에 협조했다. 결국 학교명은 나오지 않았으나 인터뷰 하는 나의 얼굴이 밤 9시 뉴스에 3분 정도보도 되었다. 어느 교장이라도 그리 처리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대외적으로 알려진 것이 부끄럽다. 스승의 날에 즈음하여 양심적으로 후회는 없다. 부정행위를 그대로 덮어 둘 경우 앞으로 사회생활에서 부정에 편승하려는 못된 버릇이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그 학생들에게 미안하다. 부정행위가 미웠다. 지금도 그 학생들을 사랑한다. 그게 최선이었을까? 내가 살아 있는 한 나 자신에게 그 질문이 내가 죽을 때까지 떠나지 않을 것이다. 졸업고사에서 옆에 사람 것 한 두문제보고 시험을 본 경험이 한두 번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단지 그것이 감독교사에게 들켜 문제가 되지 않았을 뿐이다. 하지만 정직한 한 학생과 여러 명의 부정한 학생 모두가 내게는 소중했다. 처벌 받은 학생들이 성적표를 보며 최소한 정직하게 살려는 노력으로 행복하기를 빈다. 사회나 직장생활에서 두 번 다시 부정에 타협하는 일이 없기를 빌어 본다. <시인, 소설가 김용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