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 목 | 시도유형문화재 제2호 (광주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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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칭 | 숭렬전(崇烈殿) |
분 류 |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주거건축/ 가옥 |
수량/면적 | 1동 |
지정(등록)일 | 1972.05.04 |
소 재 지 | 경기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 717 |
시 대 | 조선시대 |
소유자 | 국유 |
관리자 | (재)경기문화재단 |
상 세 문 의 | 경기도 광주시 문화공보과 031-760-4821 |
일반설명
조선 인조 16년(1638)에 지은 사당으로 백제의 시조인 온조왕을 모시고 있다. 뒷날 남한산성을 쌓을 당시 총책임자였고 병자호란(1636) 때 싸우다 죽은 이서의 위패를 함께 모셨다. 원래 건물 이름은 ‘온조왕사’였으나 정조 19년(1795)에 왕이 ‘숭렬’이라는 현판을 내려 숭렬전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정조대왕의 꿈에 온조왕이 나타나 정조의 인품과 성업을 칭찬하면서 혼자 있기가 쓸쓸하니 죽은 사람 중에서 명망있는 신하를 같이 있게 해달라고 하였다. 이에 정조는 남한산성을 쌓은 공로자인 이서를 같이 모시게 했다고 한다. 이 사당은 백제(百濟)의 시조인 온조왕(溫祚王)을 모신 곳이다. 본래 조선(朝鮮) 인조(仁祖) 16년(1638)에 온조왕사(溫祚王祠)로 건립한 건물인데 정조(正祖) 19년(1795)에 왕께서 사액(賜額)을 하사 숭렬전(崇烈殿)으로 바꾸었다. 인조(仁祖) 4년(1626) 수어사(守禦使)로서 남한산성의 수축에 힘쓰고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남한산성에서 적과 싸우다 병사한 이서(李曙)를 함께 배향(配享)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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