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 목 | 시도기념물 제1호 (울주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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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칭 | 박제상유적(朴堤上遺蹟) |
분 류 | 유적건조물 / 인물사건/ 인물기념/ 사우 |
수량/면적 | 14동(3개소) |
지정(등록)일 | 1997.10.09 |
소 재 지 | 울산 울주군 두동면 만화리 산30-2, 범서면 척과리 산152 |
시 대 | 시대미상 |
소유자 | 울산광역시 |
관리자 | 울주군 |
상 세 문 의 | 울산광역시 울주군 문화관광과 052-229-7633 |
일반설명
신라의 충신 박제상과 그의 부인을 기리기 위해 세웠던 사당터이다.
박제상은 고구려와 왜국에 볼모로 잡혀있던 왕자를 구출하기 위해 먼저 고구려에서 왕자 복호를 구하여 귀국시킨 후, 왜국으로 건너가 왕자 미사흔을 구출했다. 그러나 자신은 잡혀 심한 고문 끝에 불에 타 숨졌다. 박제상의 부인 김씨는 두 딸을 데리고 치술령에 올라, 왜국으로 떠난 남편을 기다리다 죽어 망부석이 되었으며, 부인의 영혼이 새가 되어 날아가 숨은 곳을 은을암이라고 한다. 그후 왕은 박제상의 딸을 둘째 며느리로 삼고 박제상에게는 대아찬의 벼슬을 내렸다. 이곳에 사당을 세워 박제상과 그 부인의 충절을 기리는 제사를 지냈다고 하는데, 정확한 건립연대나 규모는 알 수 없다. 이곳은 신라의 충신 박제상과 그의 부인을 기리기 위하여 세웠던 사당터이다. 박제상은 신라시조(始祖) 박혁거세(朴赫居世)의 후예로 내물왕(奈勿王) 8년(363) 양주 충효동에서 태어났다. 박제상은 눌지왕(訥祗王) 즉위후 고구려와 일본에 볼모로 잡혀 있던 두 왕제를 구출코자, 먼저 고구려에 가 있던 복호(卜好)를 구출해 귀국시킨 후, 일본으로 건너가 미사흔(未斯欣)을 구출해 내었다. 그러나 자신은 잡혀 심한 고문 끝에 불에 태워지는 참형을 당해 숨졌다. 한편 박제상의 부인은 두딸을 데리고 치술령(치述領)에 올라 일본에 간 남편을 기다리다 죽으니 그 몸은 돌로 변하여 망부석(望夫石)이 되고 그 영혼은 새가 되어 날아가 숨은 곳이 은을암(隱乙岩)이라 한다. 그후 왕은 박제상의 딸을 둘째며느리로 삼고 박제상에게는 대아찬(大阿飡)을 추증(追贈)하였으며, 김씨부인(金氏婦人)은 국대부인(國大夫人)에 추봉하였다. 이곳에 사당을 짓고 기리는 제를 봉행토록한 곳이 치산서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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