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명승

명승 제63호 부여 구드래 일원(扶餘 구드래 一圓)

오늘의 쉼터 2009. 12. 28. 19:19


 

종 목 명승  제63호
명 칭 부여 구드래 일원(扶餘 구드래 一圓)
분 류 자연유산 / 명승/ 역사문화경관/ 
수량/면적 2,519,062.67㎡
지 정 일 2009.12.09
소 재 지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산1번지 등
시 대
소 유 자 국·공·사유
관 리 자 부여군(부여군수)

 

일반설명

'구드래'는 부소산 서쪽 기슭의 백마강 가에 있는 나루터 일대를 말한다.

이 명칭은 ‘구들돌’이라는 말에서 나온 것으로 추측하는데,『삼국유사』에 의하면, 백제왕이 왕흥사에 예불을 드리러 가다 사비수 언덕 바위에 올라 부처님을 향해 절을 하자, 바위가 저절로 따뜻해져서 이 곳을 ‘자온대(自溫臺)’라 부르게 되었고, 그 이름에서 구들돌, 그리고 다시 구드래로 변하여 구드래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는 견해가 있다.

또한 백제를 오가는 왜의 배들이 구드래 나루터를 통해 백제의 수도인 사비에 들어 왔는데, 왜에서 백제를 부를 때 ‘구다라’라고 부른 것은 ‘구드래’와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구드래 나루를 건너 울성산 남쪽 기슭에는 백제 법왕 2년(600)에 세운 왕흥사가 있고, 옛 문헌에 ‘사비의 강’으로 기록된 백마강이 부소산 기슭을 따라 흐르고 있다. 백마강 양쪽에는 왕흥사와 호함리절터, 부소산성, 부여나성을 비롯한 당시의 유적들이 많이 분포되어 있는데,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소중한 문화유산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곳으로 중요한 유적이다.
 
 
구드래는 부소산< 扶蘇山 > 서쪽 기슭의 백마강< 白馬江 >가에 있는 동리 이름으로서, 이 일대는 강과 어울려 빼어난 경승을 이루고 있다. 삼국유사< 三國遺事 >에 의하면 백제 임금이 왕흥사< 王興寺 >에 예불< 禮佛 >을 드리러 갈 적에 먼저 사자수< 泗비水 > 언덕의 바위에 올라 부처님을 향하여 절을 하면 그 바위가 스스로 따뜻해지므로 자온대< 自溫臺 >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있다. 구드래라는 동명은 이 자온대의 전설과 문헌 기록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된다. 왕흥사는 법왕< 法王 > 2년(600)에 창건된 국찰< 國刹 >로서 당시의 절터는 이 구드래나루를 건너 울성산 남쪽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백마강은 옛 문헌에 사비강< 泗비江 >·사비하< 泗비河 >·사자강< 泗비江 >·백강< 白江 >·백촌강< 白村江 >으로 기록된 강으로 오늘의 금강의 한 부분이다. 부소산 건너 동편 천정대 앞 범바위에서 부여읍의 남쪽 현북리< 縣北里 > 파진산까지 약 16km 정도를 말한다. 부여의 옛 지명이 소부리< 蘇扶里 >·사비< 泗비 >로서, 백마강의 옛 이름들도 '소부리의 강', '사비의 강', '서울의 강'으로 풀이될 수 있다. 이 강은 부여 북·서·남쪽을 감돌아서 그 모양을 보아 반월성< 半月城 >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백마강 양안에는 천정대 를 비롯하여 왕흥사지 < 王興寺址 >, 호암사지 < 虎岩寺址 >, 청룡사지< 靑龍寺址 >, 부소산성 < 扶蘇山城 >, 부여나성 < 扶餘羅城 > 등 많은 당시의 유적이 분포하고 있다.
 
 
 

부여 구드래 일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