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상식/세상사는이야기

◈수진리 연가-2 ◈

오늘의 쉼터 2009. 9. 4. 10:54



    ◈수진리 연가-2 ◈할머니는 집을 맡겨 두셔서 좋다고 하셨다. 나는 아이 키우면서 주인 눈치 안보여서 더욱 좋았다. 처음 뵈었을 때 할머니는 시커먼 산 도적 마귀할멈처럼 무서워 보였다. 그런데 너무 정 많고 경우가 똑바른 분이셨다. 고쳐야 할 일 있으면 알아서 고쳐 쓰는 내게 가끔씩 꼬깃꼬깃 쌈지 돈을 쥐어 주시기도 하고, 어버이날이나 명절 때 색 고운 블라우스 하나, 고기 한 근, 술 한 병이면 민망할 정도로 고마워 하셨다. 큰돈이 필요하시면 방세를 올려달라고 하셨는데, 그래도 좋았던 것은, 사정얘기 다 하시고 달리 방법이 없어 번번이 미안하다 하셨다. 건강은 하신지 궁금하다. 시동생이 이사 온 후, 안방 장롱을 앞쪽으로 밀고 상 하나를 펼쳐 놓고, 남편은 책을 봤다. 친정 엄마는 그것만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고 하지만, 지금 생각해 봐도 그때만큼 좋은 때는 없었던 것 같다. 그 나름대로 우울을 걸치고 사느라 숨이 가빴어도 티 없이 맑은 이웃이 있었고, 순수와 젊음이 있었다. 몇 십 년만의 살인적인 더위에 군불지피는 것 같은 서향집에서, 툭하면 솜이불을 쓰고 앓아누웠어도, 밥해먹고 아이보고 치우는 일은 서로 들락거리며 해주었다. 남편의 퇴근 시간이 늦은 연순은 우리 집 남자들 저녁까지 챙기고서야
    내려가곤 했다. 차창 밖으로 스치는 바람에 아카시아 향기가 묻어난다. 그렇구나 벌써 오월이구나. 복정동은 언제 그리 변하였는지 완전한 신도시였다. 수진리 고개 마루도 예전과는 냄새부터가 틀리다. 그러고 보니 몇 년 만이던가? 아이의 학교를 서울에서 보내야겠다고 다시 서울로 들어와 싼 동네 구옥 두 칸짜리를 얻어 들어갔더니, 새로 집 짓는다고 일 년 만에 다시 쫓겨나 정신없이 살다보니
    어언 15년이 다 되었구나. 실향민이 고향을 찾은 느낌처럼 그 바람 냄새조차 좋았다. 가슴이 벌렁댄다. 맘먹으니 한 시간이면 떡을 치고 오는 것을...... 그동안 앞집 살던 새댁 미란은 큰길가에 4층짜리 상가주택 주인이 되었다. 늘 김치를 해 날라서 김치 안 해본 몇 년을 살게 해주었던 연순은 무슨 음식이라도 다 잘해서 이집 저집 불려 다니던 동네 요리사였는데, 백화점 안에 큰 안경점을 두 군데나 내었다. 팥밥이랑 겉절이를 기가 막히게 해서 자주 불러 먹이던 가영이네는 가락시장의 야채 경매상 주인이 되어 떵떵거리고 일찌감치 경제에 눈을 뜬 서울토박이 새댁 동기네는 제일 먼저 집 장만을 해서 구리시로 가버렸었다. 다들 보고 싶다. 입가에 웃음이 저절로 돈다. 미란네를 가니까 하나 둘 속속 모인다. 그 집 남편이 모두 모이면 맛있는 거 먹이라고 카드를 주고 자리를 피해 주었단다. 잘 생긴 외모에 까다로운 성격 때문에 말한 번 제대로 건너지 못하고 살았었는데, 새삼 고맙고 세월이 느껴진다. 다들 그만그만하고 체형유지도 잘 되어 있었다. 나만 배불뚝이 아줌마가 되었다. 캬륵 캬륵 야단들이 났다. 아이들도 몰라보게 컸다. 애들 공부 이야기, 서로 맛사지를 해주다 예민한 피부를 가진 연순이 얼굴이 눈이 안보이게
    부어올라 기절할 뻔 했던 일, 매달 3만원씩 저축해서 100만원 적금 타서는, 사업하는 남편에게 이자 받고 빌려주던 미란이 얘기며, 겨우 말 시작한 아이를 시간만 되면 문 닫아 걸고 공부를 시키던 아라네 얘기며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한 삼년 그렇게 다시 살아봤으면 좋겠다. 그들의 밝은 웃음과 건강한 생활태도들이 앙금처럼 앉아 있는 우울을 조금씩 걷어내 주었기에, 오늘의 나를 지탱하고 있는 것이란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그래서 늘 불러도 신바람이 돌고, 생기가 도는 수진리 연가는 불러도 불러도 싫증이 나지 않는 나의 18번, 참으로 아름다운 노래이다. 한동안은 구름 위를 걸어 다닐 듯하다. <시인, 수필가 황범순> ***************************************************************************** 가족 여러분...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느껴야 하는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내 신혼 시절, 개봉동 술 친구들이 생각납니다. 그때는 노래를 직접 부를 수 있는 단란주점이 유행했는데 아내들 몰래 그곳에서 술 먹다가 마누라들에게 들켰던 일, 술 값이 너무 많이 나와 부부싸움을 하던 일 등 추억이 나를 미소짓게 합니다. 가족 여러분... 오늘은 자기가 살아왔던 옛 발자취를 생각하며 추억에 잠시 잠기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임수홍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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