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씨전
인조대왕 때 이득춘이라는 사람이 있어 벼슬이 이조참판 홍문관 부제학에 이르렀는데 그는 부인 강씨와의
사이에 남매를 두었으니 아들의 이름은 시백이요, 딸의 이름은 시화였다. 시백의 나이 16세요,
시와의 나이 13세가 되었을 때 왕이 이참판에게 강원 감찰사를 제수하시니 공이 부인과 시화는 집에 두고
시백만 데리고 임지로 부임하여 시백에게 시서를 강론하고 학문을 지도하였다.
이 때 금강산에 박현옥이라는 선비가 있으니 별호를 유점대사라 하는데 도학에 능했다.
그는 유점사 근처에 비취정을 짓고 세월을 보내고 있었으므로 세상 사람들은 그를 비취 선생이라 하고
혹은 유점처사라 부르는데, 그에게는 시집가지 않은 딸이 있었다. 이참판이 유점처사의 딸을 시백의
배필로 삼기로 했다.
세월이 흘러서 이듬해 봄철이 되자 왕께서 이공에게 벼슬을 돋우어 이조 참판 겸 세자빈객을 제수하고
조정으로 불러 '짐을 도우라'는 분부를 하셨다.
이럭저럭 박처사와 상약한 일이 다가왔으므로 시백을 데리고 금강산에 이르러 박처사 집을 찾아 아들의 혼례를 올리고, 박처사와 함께 술잔을 나누며 즐거워하는데 신랑 시백이 신방에서 뛰어나왔다.
"아니 너는 왜 신방에서 뛰어나왔느냐? 그런 경거망동으로 나를 욕되게 하려느냐?"
"소자가 들어갔을 때는 신부가 없더니, 나중에 들어왔는데 마치 무서운 천신의 끔찍한 괴물 같은 여자라
경악하였습니다. 그런데 몸에서 더러운 냄새까지 진동하여 토할 것만 같아서 급히 나왔습니다."
이판서는 깜작 놀랐으나 아들의 경솔하고 무례함을 책망했다.
시백은 부친의 명이 엄격한지라 다시 신방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신부를 다시 보기가 싫어서 닭 울기가 무섭게 외당으로 달려나와서 우울하게 날을 보내었다.
하루는 박소저가 시부모께 문안하고 절한 뒤에 엎드려서 이판서에게 아뢰었다.
"내일 아침에 노복을 종로 여각에 보내어, 거기서 매매되는 수십 필의 말 중에서 제일 못난 비루먹은
말의 값을 물으면 일곱 냥을 달라고 할 것이니 못 들은 체하고 삼백 냥을 주고 사오라 하십시오."
"아니 네 말이 이상하지 않느냐?"
"그 곡절은 후일에 알게 되실 것입니다."
이판서는 자부의 비범한 재주를 믿기 때문에 응낙하였다.
노복이 일곱 냥에 정해 놓고 말 거간꾼과 남은 돈을 나누어 먹기로 하고 비루 먹은 말을 끌고 돌아왔다.
박소저가 한참 보다가 말했다.
"저 말을 도로 갖다 주라고 하십시오."
"네 말대로 삼백 냥을 주고 사온 말인데 왜 다시 퇴하라는 거냐?"
"이 말은 삼백 냥 가치의 말인데 그 값을 덜 주고 사왔으니 무슨 쓸모가 있겠습니까?"
이판서가 놀라서 노복을 족치니 노복이 빌면서 사죄하고 다시 말 여각으로 가서 삼백 냥을 다 주고 말을
끌고 돌아왔다. 박소저는 이판서에게 말 기르는 법을 아뢰었다.
"이 말은 하루에 깨 한 되와 백미 오홉씩 죽으로 쑤어서 3년 동안 먹이되,
이 초당 뜰에 풀어놓고 밤에도 찬이슬을 맞게 하십시오. 그러면 3년 후에 긴하게 쓸 일이 있습니다."
박소저 계획대로 후원에서 3년 동안 놓아 먹였다. 하루는 박소저가 이판서에게 여쭈었다.
"내일 명나라칙사가 남대문으로 들어롤 것입니다.
믿을 만한 노자에게 분부하여 우리 말을 끌고 가서 기다렸다가 칙사가 값을 묻거든 삼만 팔천 냥에 팔아
오라 하십시오."
과연 병나라 칙사 장수는 말을 삼만 팔천 냥에 사갔다. 이 말은 천리마였던 것이다.
이 무렵에 나라에서는 과거를 시행하여 인재를 전국에서 뽑게 되니,
이시백이 과거에 응할 준비를 하고 내일이면 대궐 안 과장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 날 이시백은 박소저의 시녀 계화가 전해 주는 박소저의 연적을 받아 가지고 들어가서 장원에 급제하니,
그 표연한 풍채는 만인총중에 뛰어나 있었으며 그 거동은 진세의 선랑이었다.
모든 재상이 이득춘을 향하여 분분히 치하하매 공이 여러 손을 이끌어 술을 내어 즐기더니,
날이 저물어 파연곡을 아뢰매 모든 손이 각각 집으로 돌아가니,
이 아들을 거느려 내당으로 들어와 석반을 마치고 촛불로 낮을 이어 즐기나,
박소저가 외모 불미하므로 손을 보기 부끄러워하여 깊이 들어 있음을 서운히 여겨 심히 즐겨 아니 하니,
부인이 말하기를,
"오늘 아들의 과거 본 경사는 평생에 두 번 보지 못할 경사이거늘 상공의 낯빛이 좋지 아니하심은
필연 추악한 박씨, 좌석에 없음을 서운히 여기심이니, 어찌 우습지 않으리까?"
이 말에 노한 이판서는 정색하고 말했다.
"부인은 아무리 지식이 없다 한들, 다만 용모만 보고 속에 품은 재주를 생각지 아니하느뇨?
자부의 도학은 그 신통함이 옛날 제갈무후의 부인 황씨를 누를 것이요, 덕행의 뛰어남은 태사에 비할 것이니, 우리 가문에 과분한 며느리어늘, 부인 말이 우습지 않으리요?"
말을 마치매 부인의 안색이 심히 좋지 않았다.
이 때 계화는 이시백의 장원 급제함을 듣고, 소저를 향하여 기쁨을 치하하고 또 탄식하여 말했다.
"소저께서 시댁에 오신 후로 상공의 자취 이 곳에 한 번도 보이지 아니하고,
우리 소저의 어진 덕이 대부인의 박대하심을 당하사, 적막한 후원에 홀로 주야 거처하사,
집안의 크고 작은 일에 참여하지 못하시고, 잔치에도 나가시지 못하시며 수심으로 세월을 보내시니,
소비 같은 소견으로도 신세를 위하여 슬픔을 이기지 못하리로소이다."
그러나 소저는 태연히 웃고 대답했다.
"사람의 팔자는 다 하늘이 정하신 바라, 인력으로 고치지 못하거니와, 자고로 박명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니, 어찌 홀로 나뿐이리요? 분수를 지켜 천명을 기다림이 옳으니, 아녀자 되어 어찌 가부의 정을 생각하리요?
너는 고이한 말을 다시 말라. 바깥 사람들이 들으면 나의 행실을 천히 여기리라."
계화는 소저의 넓은 마음과 어진 말에 못내 탄복하였다.
이 때 박소저가 시가에 온 지 이미 삼 년이 되었다.
하루는 시부모께 문안올리고 다시 옷깃을 여미고 여쭈었다.
"소부, 존문에 온 지 삼 년으로, 본가 소식이 묘연하매 부모의 안부를 알고자 잠깐 다녀오려 하오니,
대인은 허락하심을 바라나이다.
하거늘 공이 듣고 크게 놀라 말했다."이곳에서 금강산이 오백여 리요, 길 또한 험하거늘, 네 어찌 가려 하느냐? 장성한 남자도 출입하기
어렵거든 하물며 여자의 몸으로랴! 이런 망령된 생각은 행여 하지 말라."
"소부도 그러한 줄 아오나 이번에는 꼭 다녀오고자 하오니, 과히 염려하지 마소서."
공이 소저의 남다른 점을 아는지라 이에 허락하며 말했다.
"부득불 한번 다녀오고자 하거든 내일 근친할 제구와 인마를 차려 줄 것이니 속히 다녀오라."
"소부, 수삼(數三)일 동안에 다녀올 도리가 있사오니, 인마와 제구가 쓸데가 없나이다."
공이 소저의 재주를 짐작하나 이렇듯 신속히 다녀올 도리가 있음은 몰랐는지라,
이 말을 듣고 더욱 신기하에 생각하여 흔연히 허락하거늘 소저는 시부모께 재배 하직하고 후당에 돌아와
계화를 불러 조용히 분부하기를,
"내 친가에 잠깐 다녀오리니, 너는 내 행색을 바깥 사람들에게 말하지 말라."
하고, 뜰에 내려 두어 걸음 걷다가 몸을 나려 구름에 오라 삽시간에 금강산 비취동에 다다라 부모께 재배하고 문안을 드리니, 박처사는 이에 딸의 손을 잡고 말했다.
"너를 시가에 보낸 지 3년에 너의 박명을 슬퍼하엿으나,
이는 하늘에 매인 바로 인력으로 움직이지 못할 바이어니와, 이제는 너의 액운이 다하고 복록이 무한할지라. 이 달 15일에 내 올라가리니, 너는 잠깐 머무르다 먼저 가라."
소저는 부모 슬하에서 몇 해의 회포를 풀며 며칠 동안 머무르더니, 처사 부부 재촉이 성화 같았다.
"너의 시댁에서 기다리실 테니, 빨리 돌아가 시부모께 뵈어라."
소저는 마지못하여 부모를 하직하고 다시 구름에 멍에하여 잠깐에 후당에 돌아오니,
계화, 바삐 소저를 맞아, 신속히 다녀옴을 반가워했다.
소저는 곧 의복을 갖추고 시부모께 나아가 문안드리고, 다시 꿇어 공께 여쭈오되,
"소부 올 때에 가친의 말씀이, 이 달 15일에 갈 것이니 너의 시부께 아뢰라 하더이다."
공이 흔연히 고개를 끄덕이고, 사람을 시켜 술과 안주를 갖추고 처사 오기를 기다렸다.
과연 15일에 이르러 달빛 맑고 바람 맑은데, 홀연 반공으로부터 학의 소리나며, 처사가 구름을 타고 내려오거늘, 공히 황급히 뜰에 내려 처사를 맞아 방에 들어와 예를 마치고 좌정하매,
공자 또한 의관을 갖추고 처사를 향하여 절을 하고 문안을 드리니 공자의 뛰어난 풍채 일대의 영웅 호걸이라 처사는 황홀하고 귀중히 여겨, 공자의 손을 잡고 이판서를 향하여 말했다.
"영랑이 거룩한 재주로 높은 벼슬에 올라 장원 급제하여 옥앙에 참여하니 이런 경사가 또 없음을 아오나,
이 시골 사람의 천성이 졸렬하여 공께 치하를 드리지 못하였더니, 금년은 여아의 액운이 다 하여
지금 저의 흉한 용모와 누추한 바탕을 벗을 때가 되었으므로, 존문에 나와 사위의 과거한 경사를 치하하고,
아울러 여아를 보고자 왔나이다."
공이 처사의 말에 무슨 뜻인가 들어 있음을 짐작하고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주객이 술을 나누며 밤이 깊음을 깨닫지 못하더니, 문득 닭의 소리 요란하매 처사 비로소 소저의 침소에 들어가니 소저 급히 마루에서 내려 부친을 맞아 절을 올리고 문안하니,
처사는 흔연히 딸의 손을 잡고 마루로 올라 남향하여 소저를 앉히고 웃으며 말했다.
"금년으로 너의 액운이 다 하였도다."
하고, 주문을 외며 소매를 들어 소저의 얼굴을 가리키니,
그 흉하던 얼굴의 허물이 일시에 벗어지고 옥같이 고운 얼굴이 드러나거늘, 처사는 쾌히 웃고 말했다.
"내 이 허물을 가져가고자 하나, 남의 의혹을 없앨 길이 없으리니 시부께 말씀하여 궤를 얻어다
이를 넣어 시모와 가장에게 보여 의심을 풀게 하라.
오늘 이별하면 이후 70년이 지나야 부녀가 다시 만나리라."
하고 밖으로 나가 이판서에게 이별을 고하며 당부했다.
"이후 혹 어려운 일이 있거든 자부에게 물으소서."
뜰에 내려 두어 걸음 걷더니, 간 곳이 없었다.
이튿날 계화가 이판서 앞으로 와서 소저의 신기한 소식을 전했다.
"어제 처사께서 다녀가신 후로 우리 소저께서 얼굴의 허물을 벗고 절색의 부인이 되었기에
이런 신기한 술법에 놀라서 대감께 아뢰옵니다."
이판서가 기뻐하면서 후원의 초당으로 달려가 보니 그처럼 흉하던 며느리가 절세의 미소저로 변하여 있었다.
"제가 전생의 죄가 크므로 얼굴에 흉한 허물을 쓰고 세상에 태어나서 수십 년의 액운을 채웠기로 하늘이 가친께 명하여 본형을 회복하여 주셨으니 의심치 마십시오."
시부모는 반신반의하며 벗은 허물을 본 다음 확신하며 신기하게 여겼다.
이 때 왕은 이시백의 재덕을 사랑하고 벼슬을 돋우어 병조 판서를 제수하시니
시백이 천은을 사례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부친을 뵈옵자 부친이 꾸짖었다.
"너는 지난 일을 생각지 못하느냐? 지금 무슨 면목으로 아내를 보겠느냐?
네 위인이 그렇게 어리석으니 국가의 중임을 어떻게 감당하겠느냐?"
이시백과 박소저가 부부 화동한 지 수삭이 못 되어 몸에 태기가 있더니
마침내 십 삭이 되어 소저가 쌍둥이 아들 형제를 순산하였다.
이 때 왕은 병조 판서 이시백에게 평안 감사를 제수하셨다가 또다시 조정으로 불러서
곧 상경 벼슬을 내리셨다.
그런데 명나라의 조정이 요란하여 가달 등의 외적이 변경을 침노하매 왕이 심려하시고
이시백으로 상사를 삼으시고 적당한 인물을 군관으로 삼아서 원군발정을 하라고 분부하시었다.
시백은 여러 장수 가운데서 임경업을 정하여 왕께 추천하였다.
북방의 호국에 이르니 호왕이 보고 임경업을 사위 삼기를 원하며 은근히 탄식하였다.
"내가 조선을 쳐 항복받고자 하던 차,
뜻밖에 가달의 침범으로 조선에 임경업의 덕을 봄으로써 조선에 뛰어난 명장이 있음을 보고
그만큼 조선의 위세가 장엄함을 알았으니, 앞으로 조선을 깔보고 범하지 못하겠도다."
옆에서 이런 호왕의 말을 들은 공주가 뜻밖의 말을 했다.
"부왕마마는 염려 마십시오. 제가 조선에 나아가서 이시백과 임경업을 없애 버리고 오겠습니다."
호왕이 기뻐하면서 공주로 하여금 자기의 조선 침략의 숙원이 이루어지기를 은근히 바랐다.
공주는 장담하고 조선을 향하여 길을 떠나 조선 남자의 행색으로 한성에 잠입하였다.
박소저, 하루는 시부모께 저녁 문안을 드리고 침실에 들더니, 시백이 밤이 깊어 들어오거늘,
소저는 판서 이시백을 맞아 좌정하였다.
판서가 아들을 무릎에 앉히고 소저와 더불어 이야기를 하였다.
드디어 밤이 이슥하자 소저가 정색을 하고 말했다.
"내일 날이 어둑하여, 강원도 원주 기생 설중매라 일컬으며 상공의 서헌으로 올 이 있으니
그 아름다움을 탐내어 가까이하시면 큰 화를 당하실 것인즉, 그 계집더러 여차여차 이르시고
내실로 들여보내시면, 첩이 마땅히 여차하리니, 상공은 첩의 말을 허수히 듣지 마소서."
시백이 웃으며 말했다.
"부인의 말씀이 우습도다. 장부가 어찌 한 조그만 계집의 손에 몸을 바치리요?"
"상공이 첩의 말을 믿지 아니하거든, 그 계집을 후원으로 들여보내시고 상공이 그 뒤를 쫓아 들어오사,
그 계집이 말하는 것을 살펴보면 사실을 아시리다."
판서 시백이 응낙하고 명일, 부모께 문안하고 조정에 들어가 공사를 보고 날이 늦은 후에 돌아오니
손들이 모였거늘, 이에 술을 내다 즐기다가 날이 저물어 손이 각각 돌아가거늘,
판서는 저녁을 마치고 서헌에 한가로이 앉아 있었다.
과연 밤이 깊은 후에 한 여자, 문을 열고 들어와 재배하거늘, 판서가 눈을 들어 보니
나이 20세쯤 되었는데 그 얼굴이 백옥 같아 천하의 미인이라 놀라 물었다.
"너는 누구인가?"
그 여자가 대답했다.
"소녀는 원주 사는 설중매이온데, 상공의 위풍이 시골에까지 유명하기고 한번 뵙고자 하여
험한 길을 왔사오니, 어여삐 여기심를 바라나이다."
판서가 말하기를,
"너의 말이 기특하나, 여기는 손들의 출입이 잦으니, 후원 부인 있는 곳에 들어가 있으면,
손들이 다 흩어진 후에 너를 부르리라."하고,
시녀를 불러 후원으로 인도하게 하였다.
이해와 감상1 필사본과 활자본이 30여종이나 전하는 '박씨전'은 조선 후기에 매우 인기있는 한글 소설로, 이 작품은 역사 군담에 속하는 작품이기는 하지만 '임진록'이나 '임경업전'과는 다른 양상을 보여 준다. '박씨전'은 역사상 실존 인물이었던 이시백의 부인, 박씨라는 가공 인물의 이인(異人)적인 행위를 통해 병자호란의 참상과 패배를 설욕하고 있는 작품으로 특이한 것은 박씨라는 여자가 남성보다 뛰어난 능력으로서 국가 전란에 과감하게 맞서 승리한 것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 작품은 조선 후기 일부 여성 사회에서 일기 시작했던 여성들의 남성 사회에 대한 도전의식과 함께 이민족으로부터의 패배를 극복하기 위한 정신적인 승리 의식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보다 자세하게 말하면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을 읽기 위해서는 그 역사적 사건에 대한 예비적 지식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병자호란은 조선 인조 14년에 청(淸)이 침입하여 군신의 예를 강요한 치욕적 사건이다. 인조(仁祖)는 삼전도(三田渡)에서 굴욕적인 항복의 예를 갖추었는데, 현실에서의 패배를 문학적으로 보상받고자 하는 심리가 박씨전이나 임경업전으로 나타났다. '박씨전'은 전반부의 가정내의 갈등과 후반부의 사회적 갈등으로 나눌 수 있다. 전반부의 갈등에서, 박씨는 자신의 추한 용모 때문에 생기는 시련을 탁월한 능력으로 극복한다. 후반부에서는 무력한 남성들과 정면 대결해서 승리하며, 자신의 탁월한 능력으로 호장에게 복수를 하여, 실제 전쟁에서 진 패배감을 정신적인 승리로 보상한다. '박씨전'은 자유롭지 못했던 당시의 여성들에게 정신적인 위안을 주었다. 역사상의 실제인 병자호란과 실제 인물 이시백을 등장시켜 현실감을 주고, 유능한 여성 박씨의 변신과 도술을 통해 무능한 위정자들과 남성들의 은근히 비판하여 여성 독자들을 흐뭇하게 한 점은 여성의 지위 향상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심화 자료 '박씨전'의 주제 의식 이 작품의 시대적 배격이 되고 있는 병자호란은 조선 역사상 유례 없는 치욕적사건으로, 정치적·경제적으로 큰 손해를 끼쳤으며 민중들에게 극심한 고통을 주었다. 이 소설은 현실적인 패배와 고통을 상상 속에서 복수하고자 하는 민중들의 심리적 욕구가 반영된 작품이다. 또 한, 이 소설의 특이한 점은 남성보다도 여성인 박씨를 주인공으로 하고, 박씨가 초인간적인 능력을 가진 비범한 인물인데 비하여 남성인 시백은 평범한 인물로 표현되어, 여성이 남성보다 우위에 있다는 점이다. 이는 가부장제도하의 삼종지의에 억압되어 살아야 했고 봉건적인 가족 제도에서 정신적으로 해방되고자 했던 여성들의 욕구와, 여성도 남성 못지 않게 우수한 능력을 갖추어 국난을 타개할 수 있다는 의식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박씨전'의 여성문학적 성격
이 작품은 조선 숙종 때의 소설로 '박씨부인전'이라고도 한다. 작자와 연대는 미상이며 인조 때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실재 인물이었던 이시백과 그의 아내 박 씨라는 가공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여 여러 가지 이야기를 엮은 서사 문학이다. 이 소설은 여러 가지 면에서 자주성이 매우 강한 작품으로, 우리나라를 주무대로 사건이 전개되면서 주인공 이시백을 비롯하여 인조 대왕, 임경업, 호장(胡將) 용골대 등 역사적인 실재 인물들을 등장시킨 것부터가 특이하다. 더욱이 이 작품은 남존 여비 시대에 여성을 주인공으로 설정한 것이어서 오늘날 높이 평가받고 있다. 신선의 딸인 박 씨와 시비(侍婢) 계화(桂花), 만 리를 훤히 내다본다는 호왕후(胡王后) 마 씨(馬氏)와 여자객(女刺客) 기홍대(奇紅大) 등 이 작품에서는 가히 여인 천하라 할 만큼 여성들이 남성보다 우위에 있다. 이처럼 여성을 주인공으로 설정하여 눈부신 활약상을 보여 주는 '박씨전'이 필사본으로 전승되면서 독자층에 깊이 파고 들어 오랜 세월이 흐른 오늘날까지도 그 빛을 잃지 않는 것은, 이 작품의 탁월성과 함께 그 애독자의 대부분이 부녀자 층이었다는 데 있다. (출처 : 한계전 외 4인 공저 '문학교과서) 변신모티프 이 작품은 사건 진행의 구조상, 추녀 박씨가 탈을 벗기까지의 이야기가 전개되는 전반부와,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영웅적으로 활약하는 이야기를 그린 후반부로 나눌 수 있다. 전반부와후반부를 매개하는 사건상의 전환점으로 제시된 것이 박 씨의 변신 모티프이다. 박 씨의 변신은 비범한 부덕과 부공을 보여줌은 물론, 신묘한 도술로써 징벌 의식적인 전생의 죄를 벗고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며 여성의 우수한 능력을 보여주는 계기로 작용한다 '박씨전'에 대하여 이 작품은 조선 숙종 때의 소설로서 일명 '박씨부인전'이라고 한다. 작자와 연대는 미상이며 인조때 있었던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실재 인물이었던 이시백과 그 아내 박씨라는 가공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아 여러 가지 이야기를 엮은 서사 문학이다. 이 '박씨전'은 여러 면에서 자주성이 매우 강한 작품으로, 우리 나라를 주무대로 사건이 전개되면서 남주인공 이시백을 비롯하여 인조 대왕, 임경업, 호장, 용골대 등 역사적 실재 인물을 등장시킨 것부터가 특이하다. 더욱이 이 작품은 남존 여비 시대에 여성을 주인공으로 설정한 드문 것이어서 오늘날 높이 평가받아 마땅하다. 신선의 딸인 박씨와 시비 계화, 만리를 훤히 본다는 호왕후 마씨와 여자객 기홍대 등이 이 작품에서는 가히 여인 천하라 할 만큼 여성들이 남성보다 우위에 있다. 이처럼 여성을 주인공으로 설정하여 눈부신 활약상을 보여주는 '박씨전' 이 필사본으로 전승되면서 독자층에 깊이 파고 들어 오랜 세월이 흐른 오늘날 까지도 그 빛을 잃지 않는 것은 이 작품의 탁월성과 함께 그 애독자의 대부분이 부녀층이었다는 점이다. 내용은 인조대왕 때의 서울의 노재상·이득춘이 늘그막에 아들을 낳아 시백이라 하였다. 시백의 나이 16세에 금강산 박처사의 딸과 결혼하였는데 박씨는 그 모습이 흉칙하여 시아버지만이 극진히 위해준 뿐 남편은 물론 온 집안의 조롱과 천대의 대상이 되었다. 박씨는 할 수 없이 후원에 피화당을 짓고 시비 계화와 고독하게 지냈다. 그러나 원래 슬기롭고 도술이 탁월한 박씨는 하룻밤에 시아버지의 조복을 짓고, 비루먹은 말을 천리마로 키워 가세를 일으키고, 시백을 장원 급제시키는 등 놀라운 재주를 보이지만 남편의 구박과 천대는 여전하였다. 그러나 결혼한 지 3년 만에 박씨가 허물을 벗어 하룻밤 사이에 절세 미인이 되고, 남편의 사랑을 독차지하게 되자 일가는 화락하게 된다. 호왕이 여자 자객 기홍대를 우리 나라에 잠입시켜 우의정 이시백과 의주 부윤 임경업 등을 죽이려는 것을 박씨가 미리 알고 퇴치한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남편을 졸라 국왕에게 방비택을 진언케 했으나, 그것이 좌절되자 서울에 침입한 호국 장졸을 무수히 죽여 대공을 세운다. 3차에 걸친 도술전에서도 승리하고 전쟁이 끝나자 국왕은 박씨에게 절충부인을 봉하고 많은 상금을 내린다. 박씨 부부는 2남매를 두고 나이 90이 되도록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이다. 한국판 잔다르크 박씨전 보기에도 끔찍스러운 외모를 지닌 여자가 어느 날 갑자기 허물을 벗더니 아름다운 요조숙녀로 변신하고, 뿐만 아니라 공중에 바람을 일으키고, 나뭇가지를 떨게 만들고 천둥과 번개를 치며, 힘깨나 쓰는 장정들을 단숨에 척척 날려 버리는 미모와 지략과 힘을 겸비한 게다가 도술도 부리는 힘도 엄청난 괴력의 여자가 바로 박씨다. 우리 고전작품에 이렇게 환상적인 매력들을 다 가진 천사처럼 고운 인물이 또 어디 있을까? 고전작품 속에 드러나는 여성주인공은 대부분 착하고 선량한 마음씨를 가진 인물이 대부분이다. 대표적인 인물인 '춘향', '심청', '장화홍련' 대부분은 당대 유교적 가치관을 잘 지켜나가며 순응적인 삶을 사는 인물이다. 반면 '박씨전'의 '박씨'는 매우 진취적인 사고를 가지고 자신과 나라의 운명을 개척해 가는 한국판 '잔다르크'와 같은 인물이다. 이런 영웅적인 여성인물이 소설작품에 등장하게 된 배경은 물론 인진왜란 후, 영웅적인 인물을 고대하던 당대 사회의 요구 때문이기도 하지만, 조선의 '남존여비'라는 오랜 관습이 이미 퇴색되어 가고 있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 남성보다 더 우월한 여성, 남자로부터 보호받는 여자가 아니라, 오히려 남자를 보호하는 여자를 통해 그 동안 억눌렸던 여성들을 대리 만족시키는 효과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며, 이런 여러 가지 점들을 통해 볼 때 이 소설의 작자는 여성이 아니었는지 추측해 볼 수도 있겠지만, 입증할 수는 없다. 우리의 고전 소설이 대부분 그렇듯이 '박씨전'의 작자를 알 수 없지만, 그 창작 시기는 대체로 현종·숙종조 무렵, 곧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초 사이로 추정되고 있으며, 이 소설의 독특한 점은 여성에게 강인함을 부여한 점이다. 즉 여주인공 박씨가 여러 가지 도술을 부려 오랑캐 병사들을 곤경에 빠뜨린다. 박씨는 비록 연약한 여성의 몸이었지만 가정과 나라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전술한 바와 같이 바로 잔다르크적 냄새가 풍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자는 박씨를 통해 호란 때 나라를 지키지 못한 남성들을 간접적으로 질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박씨전의 성격 등장 인물 가운데서, 이시백, 임경업, 용골대, 용울대는 역사적 인물이고, 호왕의 침입이나 인조의 항복 등은 역사적 사실이다. 역사적 사실을 작자의 주제 의식에 따라 허구로 재구성, 패배감에 젖은 민족에게 정신적인 승리를 안겨 주고자 한 것이 창작 의도이다. 여성을 영웅으로 설정, 남편 이시백을 박씨의 조종을 받게 꾸민 점, 도술을 부려 계화라는 시비를 시켜 적장과 싸우게 한 점이 특이하다. 임경업전(林慶業傳) 박씨전 과 자매편적 성격을 가지는 작품으로 작자나 창작 연대는 미상이다. 임경업의 행적과 무용(武勇) 등을 전기체로 엮은 작품인데, 박씨전과 마찬가지로 병자호란의 치욕에 대한 보복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보다 상세하게 말하자면,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1책. 국문목판본·활자본. 조선 인조 때의 명장 임경업의 일생을 작품화한 한글소설로서 ‘님장군전’·‘림경업전’ 등의 이칭이 있다. 박씨전(朴氏傳) 작자 · 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1권 1책. 국문필사본. 활자본으로 한성서관판 ‘ 박씨전 ’ , 대창서원판 ‘ 박씨부인전 ( 朴氏夫人傳 ) ’ 등이 있다. 필사본인 ‘ 명월부인전 ( 明月夫人傳 ) ’ 은 이 작품의 이명(異名)이다. 이 작품은 일반적으로 역사소설 · 군담소설 · 전쟁소설의 범주에 넣지만,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박씨가 여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점에서 여걸소설(女傑小說)의 범주에 넣기도 한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명나라 숭정연간 세종조(혹은 세조조)에 한양에 살고 있는 이득춘이라는 사람이 늦게 시백이라는 아들을 얻었는데 사람됨이 총명하고 비범하였다. 어느날 박처사라는 사람이 찾아와 이득춘과 더불어 신기(神技)를 겨루며 놀다가 시백을 청하여 보고는 그 자리에서 자기 딸과의 혼인을 청한다. 이득춘은 박처사의 신기가 범상하지 않음을 알고 쾌히 응낙한다. 이득춘은 정해진 날짜에 시백을 데리고 금강산으로 가서 박처사의 딸 박씨와 혼인시킨다. 시백은 첫날밤에 박씨가 천하에 박색이요 추물임을 알고 실망하여 그날 이후로는 박씨를 돌보지 않는다. 가족들도 박씨의 얼굴을 보고는 모두 비웃고 욕을 한다. 이에 박씨는 시아버지에게 후원에다 피화당(避禍堂)을 지어 달라고 청하여 그곳에 홀로 거처한다. 박씨는 이득춘이 급히 입어야 할 조복을 하룻밤 사이에 짓는 재주와, 비루 먹은 말을 싸게 사서 잘 길러 중국 사신에게 비싼 값에 팔아 재산을 늘리는 영특함을 보인다. 또 박씨는 시백이 과거를 보러 갈 때 신기한 연적을 주어 그로 하여금 장원급제하도록 한다. 시집온 지 삼년이 된 어느 날 박씨는 시아버지에게 친정에 다녀올 것을 청하여 구름을 타고서 사흘 만에 다녀온다. 이때 박처사는 딸의 액운이 다하였기에 이공의 집에 가서 도술로써 딸의 허물을 벗겨주니, 박씨는 일순간에 절세미인으로 변한다. 이에 시백을 비롯한 모든 가족들이 박씨를 사랑하게 된다. 한편 시백은 평안감사를 거쳐 병조판서에 이른 뒤, 임경업 ( 林慶業 )과 함께 남경에 사신으로 간다. 그곳에서 시백과 임경업은 가달의 난을 당한 명나라를 구한다. 그들은 귀국하여 시백은 우승상에, 임경업은 부원수에 봉해진다. 이 때 호왕(胡王)이 조선을 침공하기 앞서 임경업과 시백을 죽이려고 기룡대라는 여자를 첩자로 보내 시백에게 접근하게 한다. 박씨는 이것을 알고 기룡대의 정체를 밝히고 혼을 내어 쫓아버린다. 두 장군의 암살에 실패한 호왕은 용골대 형제에게 10만대군을 주어 조선을 치게 한다. 천기를 보고 이를 안 박씨는 시백을 통하여 왕에게 호병이 침공하였으니 방비를 하도록 청하나 간신 김자점 ( 金自點 )의 반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마침내 호병의 침공으로 사직이 위태로워지자 왕은 남한산성으로 피난하지만 결국 항복하겠다는 글을 보낸다. 많은 사람이 잡혀 죽었으나 오직 박씨의 피화당에 모인 부녀자들만은 무사하였다. 이를 안 적장 용홀대(龍忽大)가 피화당에 침입하자 박씨는 그를 죽이고, 복수하러 온 그의 동생 용골대도 크게 혼을 내준다. 용골대는 인질들을 데리고 퇴군하다가 의주에서 임경업에게 또 한번 대패한다. 왕은 박씨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서 박씨를 충렬부인에 봉한다. 〈 박씨전 〉 의 이본들은 그 시대배경과 사건진행으로 보아 세 유형으로 분류된다. 이 작품을 추녀 박씨가 탈을 벗는 이야기로 된 전반부와, 병자호란을 당하여 영웅이 활약하는 이야기로 된 후반부로 나누어 이본관계를 살펴볼 수 있다. ① 전반부와 후반부가 모두 선조 · 인조대의 사건으로 구성된 이본군이 그 하나이다. ② 전반부는 세종 · 세조대의 사건, 후반부는 인조대의 사건으로 구성된 이본군이 다른 하나이며, ③ 전반부에 해당되는 이야기만이 세종 · 세조대를 배경으로 전개되어 있는 유형이 나머지 하나의 이본군을 형성한다. 이러한 이본의 성격을 토대로 하여, 〈 박씨전 〉 은 〈 이시백전 〉 과 〈 박부인전 〉 이 부자연스럽게 결합된 작품이라는 인상을 준다는 설(說)이 있다. 혹은 전후반이 같은 작가에 의한 것이라고 볼 수 없음은 물론 후반부만도 한 사람의 솜씨라고 할 수 없는 전승적 적층성을 지닌다고 하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 박씨전 〉 의 대부분의 이본은 전후반이 연결되어 전해지고 있으므로, 그 전후반 전체를 통한 총체적 인식이 이루어져야 한다. 〈 박씨전 〉 의 시대적 배경이 되고 있는 병자호란은 조선 역사상 유례 없는 치욕적 사건으로, 정치적 · 경제적으로 큰 손해를 끼쳤으며 민중들에게 극심한 고통을 주었다. 야인(野人)이라고 경멸하던 만주족에게 패배한 만큼 민중들의 분노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 소설은 현실적인 패배와 고통을 상상 속에서 복수하고자 하는 민중들의 심리적 욕구를 표현한 작품이다. 또한 〈 박씨전 〉 에서는 남성보다도 여성인 박씨를 주인공으로 하고, 박씨가 초인간적인 능력을 가진 비범한 인물로 설정되었다는 것이 특이하다. 남성인 시백은 평범한 인물로 표현하여, 여성이 남성보다 우위에 있다는 점이다. 이는 가부장제하의 삼종지의(三從之義)에 억압되어 살아야 했던 봉건적인 가족제도에서 정신적으로 해방되고자 하는 여성들의 욕구가 반영된 것이다. 또한 여성도 남성 못지 않게 우수한 능력을 갖추어 국난을 타개할 수 있다는 의식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소설은 ‘ 변신(變身) ’ 의 모티프를 가지고 있어 주목할 만하다. 변신모티프는 작품의 구성상 사건 전개의 전환점의 구실을 하고 있다. 박씨의 변신은 비범한 부덕(婦德)과 부공(婦功)은 물론, 신묘한 도술로써 여성의 우수한 능력을 보이는 계기가 된다. 또한, 변신모티프는 박씨가 전생에 지은 죄로 인하여 추한 탈을 쓰고 태어났다고 하는 징벌의식을 나타내고 있다. 징벌이 구제됨으로써 박씨는 남편을 비롯한 시집식구들과 다른 사대부 부인들의 사회에 받아들여진다. 따라서 박씨의 변신은 입사식(入社式)의 의미를 가지기도 한다. 박씨가 후원의 피화당에서 삼년 동안 홀로 기거하는 기간은 시집을 위시(爲始)한 사회의 구성원이 되기 위해서 거쳐야 할 관문에 해당한다. 이 관문을 통과함으로써 박씨는 명실상부한 아내와 며느리로서 받아들여지게 된다. ≪ 참고문헌 ≫ 朴氏傳(東國大學校韓國學硏究所編, 活字本古典小說全集 제2권, 亞細亞文化社, 1976), 古典小說-朴氏傳-(民族文化社, 1983), 朴氏夫人傳(張德順 外 校注, 韓國古典文學大系 제1권, 敎文社, 1984), 李朝戰爭小說朴氏傳硏究(申東一, 陸軍士官學校論文集 第6輯, 1968), 朴氏傳硏究(金美蘭, 우리文學硏究 3집, 1978), 朴氏傳의 形成過程(史在東, 藏庵池憲英先生古稀記念論叢, 1980), 朴氏夫人傳의 主題에 대한 一考察(玄吉彦, 韓國言語文學 20집, 형설출판사, 1981). (자료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군담 소설(軍談小說) 주인공이 전쟁을 통하여 영웅적 활약을 전개하는 이야기를 흥미의 중심으로 하는 고전소설. 작품의 소재를 어디에서 취하였는가에 따라 창작군담소설·역사군담소설·번역군담소설로 나뉜다. 창작군담소설은 작중인물이나 사건이 허구인 작품으로, 〈소대성전〉·〈장풍운전〉·〈장백전〉·〈황운전〉·〈유충렬전〉·〈조웅전〉·〈이대봉전〉·〈현수문전〉·〈남정팔난기〉·〈정수정전〉·〈홍계월전〉·〈김진옥전〉·〈곽해룡전〉·〈유문성전〉·〈권익중전〉 등 수십 종이 있는데 작자와 연대가 밝혀져 있지 않다. 대체로 한글로 쓰여졌고 필사본·방각본·구활자본의 세 가지 형태로 유통되었다. 대개 작품의 배경은 중국이고 외적의 침입과 간신의 반란을 평정하는 가공적 전쟁이 등장하며, 주인공은 명문대가에서 기자치성을 드려 출생하며 어려서 많은 고난을 겪다가 도사를 만나 도술과 무예를 배우고, 국가 위기에 등장하여 적을 물리치고 왕권을 수호하는 영웅적 활약을 전개하여 그 공로로 높은 벼슬을 받아 부귀영화를 누린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창작군담소설이 출현한 시기에 대해서는 여러 학설이 분분하나, 1794년에 쓰여진 야마다(山田士雲)의 〈상서기문 象胥記聞〉에 〈소대성전〉·〈장풍운전〉 등의 작품명이 등장하고 1736년 중국에서 간행된 〈설인귀정동전전 薛仁貴征東全傳〉의 영향이 엿보인다는 점에서 18세기 중엽 이후에 창작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창작 시기는 작품에 따라 다르며 비교적 초기에 창작된 작품은 〈소대성전〉·〈장풍운전〉 등이고, 다음으로 〈조웅전〉·〈유충렬전〉 등이 나타났으며, 그 후 군담소설이 대중의 인기를 얻게 되자 소설의 상업적 출판이 성행하면서 20세기 초까지 많은 작품이 지어진 것으로 본다. 창작군담소설은 충신과 간신의 대결로 정쟁에서 몰락했던 가문이 주인공의 영웅적 활약으로 국가에 큰공을 세우면서 부흥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비현실적인 도술전으로 전쟁의 양상이 기술되고 표면적으로는 전통적 유교윤리가 강조되면서도 이면에는 충(忠)이나 열(烈)에 대한 전통윤리로부터의 일탈이 심하다는 점에서 정치적 변혁에 관심이 많았던 평민층이 향유하던 작품으로 추정된다. 특히 후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정수정전〉·〈홍계월전〉 등의 작품은 여성 주인공이 군담의 주역으로 등장하여 남성보다 우월한 능력을 발휘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군담소설이 여성층에게까지 애독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역사군담소설로는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쓰여진 〈임진록〉과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쓰여진 〈임경업전〉·〈박씨전〉이 있다. 〈임진록〉은 임진왜란의 체험을 통해 형성된 설화가 후대에 결집되어 이루어진 소설로서, 이순신(李舜臣)·권율(權慄)·사명당(四溟堂, 惟政)·김덕령(金德齡)·곽재우(郭再祐) 등 난중에 활약한 역사적 인물의 활동을 기술하고 있다. 작품의 전체적 전개는 역사적 추이를 따르고 있으나 의병장들의 일화를 중심으로 비현실적 도술에 의한 전쟁 양상을 기술하고 있다. 〈임경업전〉은 병자호란 당시 활약한 임경업 장군의 전기를 소설화한 것으로서, 역사적 사실과는 달리 임경업의 영웅성을 부각시키는 데 초점을 둔 작품이며, 〈박씨전〉은 추녀였던 이시백의 아내 박씨의 이인적 면모를 드러내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역사의 실상과는 달리 임경업은 호왕이 두려워하고 존경하는 명장으로서 호병을 물리칠 능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정이 무능하여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잃고 간신배에게 희생되는 것으로 그려지며, 박씨는 호란 당시 도술로써 적장 용홀대를 혼내준다. 역사군담소설은 주로 외적의 침략을 물리칠 수 있는 민족적 능력을 과시하여 전란을 겪으면서 피폐해진 민족적 자존심을 고취하려는 의식과, 외침을 당하여 무능을 드러낸 집권층을 규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번역군담소설은 중국소설 〈삼국지연의〉 등이 널리 애독되고 창작군담소설이 인기를 얻게 되자 중국의 연의소설 중 특히 군담이 흥미의 중심을 이루는 부분을 초역하여 독립 작품으로 간행한 것이다. 〈삼국지연의〉에서 일부를 초역하여 독립 작품으로 간행한 작품이 가장 많은데, 이러한 작품에는 〈삼국대전〉·〈적벽대전〉·〈조자룡전〉·〈화룡도실기〉·〈관운장전〉 등이 있다. 〈초한연의 楚漢演義〉를 축역한 작품으로는 〈초한전〉·〈장자방실기〉 등이 있고, 〈설인귀정동 薛仁貴征東〉을 축역한 작품으로 〈설인귀전〉·〈서정기 西征記〉가 있으며, 〈설정산정서 薛丁山征西〉를 축역한 작품으로는 〈설정산정서〉·〈번이화정서전〉 등이 있다. 그 밖에 〈봉신연의 封神演義〉를 축역한 〈강태공전〉, 〈진당연의秦唐演義〉를 초역한 〈울지경덕전〉 등이 있다. 군담소설은 대체로 주인공의 고난 극복과 영웅적인 호쾌한 활약을 보여주는 통속소설이다. 군담소설은 판소리계 소설과 함께 조선 후기에 가장 많은 독자를 확보했던 인기소설로서,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염원을 도선적 신비주의에 근거한 상상을 통하여 실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당시 일반 대중의 흥미의 성향과 상상력의 특징을 보여주는 작품군이다. ≪참고문헌≫ 군담소설의 구조와 의미(徐大錫,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1985).(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군담 소설(軍談小說)의 특징 임진 병자 양란 이후 발생하여 조선조 후기에 유행했던 한글 소설의 한 유형으로 군담, 즉 전쟁 이야기가 주된 줄거리가 되는 소설을 말한다. 허구적인 주인공과 허구적인 사건으로 꾸며 낸 창작 군담 소설 '박씨부인전', 역사에 실재한 역사적 인물의 활약상을 서술한 역사 군담 소설 '임경업전', 중국 소설을 번역 혹은 번안한 작품들 중 싸우는 이야기가 중심이 된 번역 군담 소설 '조웅전', '옥루몽' 등이 있다. 영웅 소설은 인물의 특성과 관련된 용어이나 군담 소설이라는 소재의 공통성에서 생겨난 개념이다. 군담 소설은 특히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사회 전체에 충격을 초래한 전쟁이 작품 속으로 유입된 결과, 작품의 내용까지도 싸우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게 된 작품을 지칭한다. 이러한 점은 군담 소설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고전 소설의 두드러진 경향으로 나타나게 된 것에서도 확인된다. 군담 소설에서는 대부분 플롯의 유사성이 두드러지는데, 다음과 같이 유형을 가진다. 즉, 주인공은 권문세가의 자제로서 부모의 극진한 치성으로 태어난다. 그는 난리나 간신의 참소 때문에 부모와 이별하면서 고난을 겪게 되나 도사의 구출로 비범한 능력을 습득하게 된다. 그때 국가는 전란으로 위기를 당하지만 주인공이 나타나 그의 비범한 능력으로 전란을 평정한다. 이후 그는 보상으로 높은 벼슬을 얻으며, 헤어진 가족과 재회하거나 집안을 일으키면서 부귀 영화를 누리게 되는 것이다. 군담 소설의 특징은 주인공이 전쟁을 통해 영웅적 활약을 드러내고, 그와 같은 과정을 통해서 입산하게 되는 일대기적 구성에 있다. 군담 소설의 작가들은 대부분 익명으로, 조선조 후기에 형성된 몰락 양반 또는 중인 계층으로 추측된다. 또한 소설을 인쇄하거나 대여하는 상업 집단의 발달로 보아 부녀자, 평민 등 다양한 독자층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뿐만 아니라 강담사, 전기수 등의 구연(口演) 집단이 있어서 아들에 의해 보다 확대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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