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선전
김신선의 이름은 홍기다. 나이 열 여섯 살 때에 장가들어서, 한 번 관계하여 아들을 낳았다.
그런 뒤에 다시는 아내를 가까이 하지 않았다.
곡식을 물리치고 벽만 바라보고 앉았더니, 두어 해 만에 몸이 별안간 가벼워졌다.
국내의 이름난 산들을 두루 찾아 노닐면서, 늘 한숨에 수백 리를 달리고는 해가 이르고 늦음을 따졌다.
다섯 해 만에 신을 한 번 바꿔 신었으며, 험한 곳을 만나면 걸음이 더 빨라졌다.
그가 언젠가 말하기를 옷을 걷고 물을 건너거나 달리는 배를 타면, 내 걸음이 오히려 늦어진다.
하였다. 그는 밥을 먹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가 찾아오는 것을 싫어하지 않았다.
겨울에도 솜옷을 입지 않고 여름에도 부채질하지 않았으므로, 사람들은 그를 '신선'이라고 불렀다.
내가 예전에 우울증이 있었다. 그때 마침 '김선생의 방기(方技)가 가끔 기이한 효과를 내기도 한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래서 그를 더욱 만나고 싶어했다.
윤생과 신생을 시켜서 남들 몰래 서울 안에서 그를 찾았지만, 열흘이 지나도 찾지를 못했다.
윤생이 이렇게 말하였다.
"지난번에 '김홍기의 집이 서학동에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기에 지금 가 보았더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사촌 형제들 집에다 자기 처자식만 부쳐 두었더군요.
그래서 그의 아들에게 물어 보았더니, 이렇게 대답하더군요.
`우리 아버지는 한 해에 서너 번 다녀가시곤 하지요. 아버지 친구 한 분이 체부동에 사시는데,
그는 술 좋아하고 노래도 잘 부르는 김봉사라고 한다오.
누각동에 사는 김 첨지는 바둑 두기를 좋아하고, 그 뒷집 이만호는 거문고 뜯기를 좋아하지요.
삼청동 이만호는 손님 치르기를 좋아하고, 미원도 서초관이나 모교 장첨사 그리고 사복천에 사는 병지승도
모두들 손님 치르기와 술 마시기를 좋아합니다.
이문(里門) 안 조봉사도 역시 아버지 친구라는데 그 집엔 이름난 꽃들을 많이 심었고, 계동 유판관댁에는
기이한 책들과 오랜 된 칼이 있었지요.
아버지가 늘 그 집들을 찾아다녔으니, 당신이 꼭 만나려거든 그 몇 집들을 찾아보시오.
'그래서 그 집들을 두루 다녀 보았지만, 어느 집에도 없었습니다.
다만 저녁나절에 한 집에 들렸더니, 주인은 거문고를 뜯고 두 손님은 잠자코 앉아 있더군요.
흰머리에다 갓도 쓰지 않았습디다.
저 혼자서 '아마 이 가운데 김홍기가 있겠지.' 생각하고 한참이나 서 있었습니다.
거문고 가락이 끝나길래 앞으로 나아가서, '어느 어른이 김선생이신지요?'하고 물었습니다.
주인이 거문고를 놓고는 '이 자리에 김씨는 없는데 너는 누구를 찾느냐?' 하더군요.
'저는 몸을 깨끗이 하고 찾아 왔으니, 노인께서는 숨기지 마십시오.'했더니
주인이 그제야 웃으면서 `너는 김홍기를 찾는구나. 아직 오지 않았어.'하였습니다.
'그러면 언제 오나요?' 하고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해 주더군요.
'그는 일정한 주인이 없이 머물고, 일정하게 놀러 다니는 법도 없지. 여기 올 때에도 미리 기일을 알리지 않고, 떠날 때에도 약속을 남기는 법이 없어. 하루에 두세 번씩 지나 갈 때도 있지만, 오지 않을 때에는 한 해가 그냥 지나가기도 하지. 그는 주로 창동(남창동, 북창동)이나 회현방(회현동)에 있고, 또 동관. 이현(梨峴), 동현(銅峴:구리개), 자수교, 사동, 장동, 대릉, 소릉 사이에도 가끔 찾아다니며 논다고 하더군.
그러나 그 주인들의 이름은 모두 알 수가 없어. 창동의 주인만은 내가 잘 아니, 거기로 가서 물어 보게나.'
곧 창동으로 가서 그 집을 찾아가 물었더니, 거기서는 이렇게 대답합디다.
'그이가 오지 않은 지 벌써 여러 달이 되었소. 장창교에 살고 있는 임동지가 술 마시기를 좋아해서 날마다
김씨와 더불어 내기를 한다던데, 지금까지도 임동지의 집에 있는지 모르겠소.'
그래서 그 집까지 찾아갔더니, 임동지는 여든이 넘어서 귀가 몹시 어둡더군요.
그가 말하길. '에이구, 어젯밤에 잔뜩 마시고 아침나절 취흥에 겨워 강릉으로 돌아갔다우.' 하길래 멍하니
한참 있다가 '김씨가 보통 사람과 다른 점이 있습니까?'하고 물었지요.
임동지가 '한낱 보통 사람인데 유달리 밥을 먹지 않더군.'하기에 '얼굴 모습은 어떤가요?' 물었지요.
'키는 일곱 자가 넘고, 여윈 얼굴에 수염이 난 데다, 눈동자는 푸르고, 귀는 길면서도 누렇더군.' 하기에, '술은 얼마나 마시는가요?'
물었지요. '그는 한잔만 마셔도 취하지만, 한 말을 마셔도 더 취하지는 않아. 그가 언젠가 취한 채로 길바닥에 누웠었는데, 아전이 보고서 이레 동안 잡아 두었었지. 그래도 술이 깨지 않자, 결국 놓아주더군.' 하더군요. '그의 말솜씨는 어떤가요?'
물었더니 '남들이 말할 때에는 문득 앉아서 졸다가도, 이야기가 끝나면 웃음을 그치지 않더군.' 합디다.
'몸가짐은 어떤가요?' 물었더니,
'참선하는 것처럼 고요하고, 수절하는 과부처럼 조심하더군.'하였습니다."
나는 일찍이 윤생이 힘들여 찾지 않았다고 의심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신생도 수십 집을 찾아보았는데, 모두 만나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