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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玉門池 "女根谷"

오늘의 쉼터 2009. 4. 12. 10:44

경주  玉門池  "女根谷"

 

*소재지 : 경주 건천읍 신평2리

전국에 깔린 女根이 바위나 계곡폭포 정도라면 경주 "女根谷"은 산이 통째로 광능적인 女根 모습을 하고 있다.

대구에서 고속도로를 달려 경주 건천 이화터널을 지나면 오른쪽 신평2리 원신마을 앞 富山 골짜기 산이

女根山 "女根谷"이다.

 

한껏 벌어진 허벅지와 가운데 봉긋 솟아오른 봉우리는 영락없는 女根이다. 女根谷의 국부는 몹시 습한데,

그곳에는 직경 1미터 크기의 샘이 있다. 만약 "이 샘을 작대기로 쑤시거나 파해치면 이 마을 처녀들이

바람이 나기 때문"에 마을 분들에겐 절대적 금기로 되어 있지만  이상하게도 현재 이 샘은 마을 상수도의

수원지라니

결국 마을 사람들이 여자의 음수를 먹고 있다고 생각하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옛부터 性器 모양의 地形은 明堂 또는 凶地로 傳해 왔다.

山勢가 다리를 벌린 形勢라면 凶한 곳이며, 대체로 정숙하게 오무린 形勢가 좋다고 한다.

그래서 凶한 곳은 여자들의 바람기가 거세고, 남자들은 양기가 위축된다고 믿어 秘補를 사용하였다.

 

이곳 富山 골짜기의 女根도 그 기세가 대단하여 예전엔 앞산에 南根石을 만들어 女根谷과 마주보게

하였는데, 그 옛날 어느분께서 그만 돌출한 부분이 흉하다고 막대기로 쳐 앞산은 넘어지고 말았는데,

 지금의 철로와 고속도로 사이에 길게 누운 낮은 언덕이 그때 잘린 앞산의 性器라고 전한다.

이러한 가슴 아픈 傳說로 女根谷은 선덕여왕때 백제군 5백여 명이 죽음을 당하였고,

무열왕 때 이곳은 백제군에게 함락되어 신라군사가 죽음을 당하기도 했다.

이 傳說의 女根谷은 오늘도 수줍음도 없이  당당히 그 姿態를 숨김없이 발휘하고 있으니.

 

 이 골짜기는 신라 27대 선덕여왕의 설화와 관계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三國遺史에는 신라 선덕왕 때 영묘사 옥문지(玉門池)에 겨울인데도 개구리가 모여 몇일동안 울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女根谷"을 수색해, 매복하고 있던 백제군 500명을 섬멸했다는 기록이 있다.

섬멸작전 후 선덕왕은 "玉門이란 여자의 생식기인데,

남자의 생식기는 여자의 생식기에 들어가면 반드시 죽게 돼 있다."고 말해

 백제군 섬멸을 예견했다고 하는 전설이 있다.

 

女根谷은 富山 골짜기에 불쑥 나온 작은 산이다.

대음순 부분은 전체 모양을 둥글게 싼 부분이며 푸른 소나무 숲을 이루고, 소음순 부분은 잡목숲을 이루고 있다.

이 女根谷의 전체적인 형상을 자세히 보려면 고속도로변이나 국도에서 보아야한다. 

 

문제의 발단이 된 '三國遺史'의 '女根谷'에 관한 기록부터 다시 한번 살펴보자. 

 

 

"어느 겨울날, 都城 인근에 있는 영묘사(靈廟寺) 玉門池에 난데없이 개구리들이 모여 울어댔다.

女王은 즉시 두명의 각간(角干)에게 2천명의 군사를 주어,

서쪽 富山 아래 "女根谷"에 매복해 있던 백제군사 500명을 섬멸케 하였다.

신하들이 그 지혜를 궁금해 하자 女王은 이르기를 '성난 개구리는 兵士의 상(像)이요, 玉門은 곧 女根이다.

여자는 음(陰)이고 그 빛은 흰데, 흰색은 곧 서쪽을 뜻한다.

그러므로 서쪽의 "女根谷"에 적이 있음을 알았고,

또 男根이 女根에 들어가면 반드시 죽기 때문에 적을 쉽게 잡을 줄 알았다'고 말했다니"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 신라의 전통적인 사상 속에 陰陽五行 思想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女王의 陰陽思想을 통해 앞날을 예견했다는 사실도 興味 있는 이야기다.

世上萬事 陰陽의 調和이다.

이 調和가 平坦圓滿할 때 세상사가 순조로운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