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대성 고구려 환도성
암산의 사이를 흙으로 메꾸어 높은 고지대 평원을 인공적으로 만들어 그 위에 수도성을 지었다. 이러한 축성법은 아직까지 알려진 바가 없었다. ‘위성으로 찾는 고구려 강역시리즈 1’에서 고구려고국이었던 졸본성(즉 창도현의 천두진의 두 산성)을 밝힌 바가 있는데, 뒤에 발해 신주였고, <요사지리지>는 이로부터 서남 200리에 고구려 환도성이 있다고 하였다.
이를 위성사진으로 찾아보니 법고시 서북쪽 교외인 자은사 뒤편으로서 현재 지명이 한대산(韓大山)이었다. 즉 환도산이다.
이곳의 성은 상상 외로 거대하였다.
동성과 서성, 북성으로 구별된다. 동성은 평지로부터 암산에 기대어 3단의 토성으로 되어 있다. 먼저 평면적으로 외성과 중성 내성의 3단을 그렸다. 하부 기단은 동남벽은 5km, 동북벽은 4km였다.
이를 동남방에서 먼저 바라보았다. 자은사 뒤로 1단의 성토대가 보인다. 1단의 성토대 위에 다시 2단의 성토대가 있다. 그 2단의 성토대 위에 조정백관이 살던 궁궐터가 보인다. 이를 동북방 관점에서 보면 높은 토대의 비탈이 뚜렷하다.
동성 중앙에 인공 수로도 보이는데 비탈면의 수로는 산비탈이 1700년간 무너지지 않게 설계한 것이다. 오른쪽은 북성, 즉 외라성인데 능원이 보인다. 동성의 정문은 동남쪽 끝이다. 옆에 서성의 정문이 이웃하고 있다. 서성 오른쪽 골에 청나라 공주묘가 만들어졌다.
서남방에서 서성을 중심으로 바라보았다. 이곳은 동성과 별개로 3단 토성이다. 꼭대기에 '바후산성'으로 잘 알려진 3000m 규모의 석축 산성이 남아있다. 이는 246년 관구검, 342년 모용황에게 유린당해서 패호(敗胡) 산성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서성은 산상왕이 지어서 태자성이 되고, 동성은 고국원왕이 세워 왕궁이 된 것이다.
환도성을 서북방에서 바라보았다. 북성이 관찰된다. 1단에는 병마영이 있었을 것으로 보이고, 2단에는 병영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3단은 전쟁 지휘소가 된다. 고국원왕이 모용황 침입 전에 지었을 것이다. 반면에 동성은 모용황 침입 후에 지었다. 판축법(흙을 한층 쌓고 땅을 다지고 다시 흙을 한층 쌓고 다지는 방식)으로 쌓았을 것이라는 추정된다. 암산의 골이 많이 패인 것으로 보이는 것은 돌과 흙을 파다가 평평한 토대를 만드는데 가져다 썼기 때문으로 보이고 그 골 자체가 방어 요새가 되며 더러는 1500년 동안 함몰된 것도 된다. 참고로 법고시는 뛰어난 청동기 문명이 만주 최초로 있던 곳으로서 단군 시대 초기 청동검이 많이 나온 곳이고, 위만이 점령했던 곳이며, 한사군 설치 시에 낙랑군이었다. 고구려에 의해 거대수도로 개발되고, 발해가 압록부로서 지켰으나, 이후 요나라는 발해인을 다 내 쫓고 거란인들의 목장을 두었고, 금, 원 시대에는 지명조차도 거의 없었으며, 명나라 때는 아예 국경 밖 변외였다. 즉 고구려 이후 현재까지 저 거대한 인공 축산 공정을 일으켰을 시기나 기록 등등이 저 고장에는 역사적으로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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