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성왕비문과 수성왕성및 서부전선 (수년전에 수성왕비문이 소개되었다.)
비문을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이때 영동백수사리현도(寧東百殊司吏玄菟)라고 칭한 것이니, 현도군의 지배자라는 뜻이다. 고구려 도성을 세웠다는 것이다. (功建國都 玄菟郡)
수성왕성의 규모는 한변이 대략 4km정도다. 중심축의 도로는 7km에 가깝다. 동남쪽 차하얼산은 차대왕(수성왕)과 관련되는 것으로 고려된다. 이후 산상왕은 환도성(법고시 한대산)을 지어 옮겨갔다. 이 성으로 고려되는데, 천헌성이 본래 소맥(소수맥)에서 태어났고, 당시 당나라가 연남생에게 현도군개국공 이라고 책봉했기 때문이다. 즉 소수맥구려는 이 국내고도성이었던 수성왕국도를 의미하는 것으로 고려된다. 서개마의 동쪽에 고개모가 있어야 할 것이며 요동성이었던 청하문에서 동북으로 방향을 잡으면 부신시 동북 교외에 있는 해주영과 사해를 만난다. 해주영이 고개모성, 사해향이 고개모신성으로 고려된다. 개와 해는 칸과 한처럼 혼용되거나 바뀔 수 있다.
다음으로 고구려 서북부전선의 핵은 신성이었다. 토벌군을 이끌고 휘주徽州(=부신시阜新市 구묘향舊廟鄕) 동쪽에서 금나라 군대를 만났는데, 미처 진을 치기도 전에 궤멸되었다. 연왕은 휘하 오백기로 장백, 어무로 물러났고 이는 의무려산 아래다. 금나라 여진족은 신주를 약탈하고 돌아서서 성주成州(=부신시 홍모자향紅帽子鄕), 의주懿州(=탑영자고성塔影子古城), 호주豪州(=서남와고성西南窪古城), 위주衛州 등 항복한 4주를 약탈했다.
현재 구하(구河)가 흐르는데 신성은 본래 고구려 구차홀(仇次忽)이었다고 했고, 개모성의 개물은 한자어로 구하(狗河)로 바뀔 수 있다.
신성 남쪽에 훌륭한 고성이 있다. 개모성은 본래 정읍병열(井邑倂列)이라하였으니 쌍읍인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지명은 서애(西涯), 동애(東涯)이다. 두 성의 동서 길이를 합치면 5km를 넘는다.
발해는 본래 개모성을 진주(辰州)라고 고쳤는데 요나라가 이를 요동반도로 옮겼다. 고구려인은 일치단결하여 유비무환의 성을 쌓고 수나라나 당나라의 수십회 침입을 막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연개소문 이후에 독재의 후유증으로 동족이 적군의 향도가 되고, 우방이던 말갈, 거란의 연합을 잃으니 고구려는 더 버티지 못햇다. 바라보는 작금의 현실이 먼저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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