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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성 깊은 며느리

오늘의 쉼터 2009. 1. 26. 19:52

 


감동이 있는 한가위 설화/ 효성 깊은 며느리

옛날 충남 공주 땅 팔봉산 자락에 효심이 지극한 청상과부가 병든 시아버지와 단둘이 살았다. 
본래 밭고랑 하나 없이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다 그나마 시집 온지 삼 년 만에 들일을 나갔던 
서방이 벼락을 맞아 죽는 바람에 졸지에 늙고 기력 없는 시아버지만 떠 안고 말았다.
말 잘하기 좋아하는 동네사람들이 과연 몇 해나 버틸 거냐고 허구한날 수군거렸지만 청상과부
의 효성은 벌써 일곱 해를 하루같이 변할 줄 몰랐다. 
시아버지의 병구완은 변함 없이 지극 정성이었으며 봄이면 날품팔이, 여름이면 산나물과 약초
를 캐다 팔아 힘든 생계를 이어갔다.
"아가야, 이제 그만 친정으로 돌아가거라. 그만큼 고생했으면 됐다. 
이제 좋은 상처자리라도 만나 배나 곯지 않고 살아야 하지 않겠니? 
세상천지에 널 탓하고 나무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제 그만 돌아가거라!”  
병든 시아비는 틈만 나면 며느리의 손을 잡고 통사정을 하며 울었다.
“아버님, 제 집이 여기인데 왜 저를 자꾸만 내치시려 하십니까? 저는 아무 데도 안 갑니다.
살아도 이 집 며느리요, 죽어도 이 집 귀신인 제가 가기는 어딜 간단 말입니까.. 
제발 그런 말씀 마시고 어서 몸이나 쾌차하십시오. 아버님!”
몹시 흉년이 든 어느 해 가을, 추석 명절이 돌아왔다. 
그나마 받은 품삯을 시아버지 약값으로 다 쓰고 보니 정작 차례를 지낼 일이 걱정이 되었다.
이틀 후면 한가위인데 아무리 궁리를 해 보아도 묘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빈상에 냉수만 올리고 제사를 지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돌아가신 분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병든 시아버지의 낙심을 차마 눈뜨고는 볼 수 없는 일이었다.
다음날 이른 아침 며느리는 방문 앞에서 시아버지에게 인사를 올렸다.
“아버님, 저 읍에 좀 다녀오겠습니다!”
며느리가 쪽마루를 내려서는데 시아버지는 그날따라 안간힘을 써가며 문구멍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사립문을 나서는 며느리의 가련한 모습을 보면서 시아비는 피를 토하며 
울고 있었다.
며느리는 정처 없이 어딘가를 향해 걸었다. 
땀은 비 오듯 쏟아지고 두 다리는 돌덩이를 매단 듯 천근만근으로 무겁기만 했다. 
걷다 힘이 부치면 냇가 미루나무 아래서 쉬고 추수가 끝난 들녘에서 벼이삭을 주우며 걸었다.
하늘을 쳐다보니 더없이 야속하기 만한 서방의 얼굴이 어른거려 쉴새없이 눈물만 쏟아졌다. 
걷고또 걷고, 얼마나 걸었는지 어느새 해는 한나절이 지나고 서쪽 하늘이 봉선화 꽃잎을 흩뿌
린 것처럼 군데군데 물들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큰 재를 넘으니 마침내 오매불망 그리던 친정마을이 눈앞에 펼쳐졌다.
“아버지 어머니...”
딸은 실로 몇 해만에 보았을 친정을 내려다보며 큰절을 올렸다. 
그리고는 날이 어둡기만을 기다리며 그토록 서럽게 울었다.
얼마 후 딸은 친정 집 광속에서 제법 묵직한 자루 하나를 들고 나와 미친 듯이 재를 넘고 있었
다.
“되었다. 이만하면 되었다!”
딸은 뒤도 돌아볼 새 없이 정신 없이 오던 길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가뭄이 들었다지만 요행히도 친정 집은 아직까지 보릿가루며 보리기울이 넉넉한지라 
이고 갈 만큼은 퍼담았다.
그녀가 그렇게 곡식자루를 이고 뒷동산을 넘고 있을 때 말없이 툇마루에 서서 물끄러미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친정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딸의 모습이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뒷동산을 바라보며 울고 또 울었다.
“아이고 불쌍한 것, 어찌 이다지도 박복하더란 말이냐, 오죽이나 살기가 힘들었으면 이 한가
위에 친정 울타리를 다 넘었겠느냐, 아이고 불쌍한 내 딸아!”
며느리는 새벽녘이 다 돼서야 온 몸이 땀에 절어 돌아왔다.
그 머나먼 곳을 다녀왔지만 그녀는 집을 나설 때와는 달리 하나도 피로한 기색이 없었다.
한가윗날 아침에 산나물 반찬에 밀가루 전을 부쳐 흰쌀밥을 올리고 조상은 물론이요, 시어머
니와 서방님께 제를 올릴 수 있다고 생각을 하니 고단함은 눈 녹듯이 사라지고 한없이 마음이 
설레었다.
그리고 추석이 지나 며칠이 되면서 참으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어느 날 이른 새벽에 사립문 밖에서 소란한 기척이 들려 밖을 나가보니 서너 말이 됨직한 좁쌀 
자루가 놓여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이 흉년에, 누가 이 귀한 낱알을 두고 갔을까.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보아도 짐작이 갈만한 구석이 없었다.
아무리 궁색한 살림살이지만 남의 곡식을 덥석 축낼 수가 없어 며칠을 새벽잠을 설치며 전전긍긍
하는데, 어느 날 또다시 문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몇 날 몇 일을 기다렸던 터라 며느리는 죽을힘을 다해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사이, 등에 지게를 걸머진 남자가 번개같이 담을 돌아 논둑 길을 내려서고 있었다.
“보셔요, 잠시만 저를 보셔요!”
어느새 남자의 등뒤까지 따라간 며느리는 그만 낚아채던 남자의 팔을 놓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아버지!"
멋쩍은 듯 웃으며 돌아선 이는 다름 아닌 친정 아버지였다.
“이것아 집에 왔으면 어미나 보고 갈 일이지.....고구마다, 
 허기질 땐 꽤나 양식이 되고... 정 힘들면 대낮에 다녀가거라. 
 네 어미에게는 아직 말을 안 했다!”
아버지.. 절 보셨으면 왜 한 번 불러주지 않으셨어요!
딸은 서럽게 목놓아 울고 있었다.
들어가거라, 어서.
동네사람 볼까 무섭다. 어서!
돌아서는 아버지의 볼에서도 어느새 하염없는 눈물이 굴러 떨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