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와 역사/신라

25. 진지왕(眞智王)

오늘의 쉼터 2008. 10. 27. 21:59

 

 25. 진지왕(眞智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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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왕(眞智王)

※ 생존기간 : (?∼579)
※ 재위기간 : (576∼579)


※ 본문설명

성은 김씨(金氏). 이름은 사륜(舍輪) 혹은 금륜(金輪). 진흥왕의 둘째아들이며,

어머니는 박씨(朴氏)로 사도부인(思道夫人)이며, 왕비는 지도부인(知道夫人)이다.

진흥왕의 태자 동륜(銅輪)이 572년에 죽었기 때문에 진흥왕에 이어서 즉위하여

무열왕계(武烈王系)의 시조가 되었다.

당시의 왕위계승에 있어서는 이미 부자상속제가 확립되어 있었으므로,

진흥왕의 둘째 아들인 진지왕은 진흥왕의 적손(嫡孫),

즉 동륜태자의 아들인 백정(白淨:뒤의 진평왕)이 있었기 때문에 실제로는

왕위계승권자가 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는 아마도 진흥왕대의 대표적 인물이었던 거칠부(居柒夫)의 지원을 받아

왕위를 찬탈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추측은 진지왕이 즉위하던 해(576)에

거칠부를 상대등(上大等)에 임명하여 국정을 맡긴 사실과, 재위 4년 만에 정란황음

(政亂荒淫)을 이유로 화백회의(和白會議)의 결정에 따라 폐위되었다는 것과,

또한 독자적인 연호를 가지지 못하였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577년에 이찬(伊飡) 세종(世宗)이 서쪽 변경의 주군(州郡)으로 침입하여온 백제군을

일선군(一善郡:지금의 선산) 북쪽에서 격파하여 3,700여명을 참획하는 전과를 올리고,

 내리서성(內利西城)을 축조하여 백제의 공격에 대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내리서성으로 통하는 길은 2년 뒤에 백제가 웅현성(熊峴城:지금의 보은군내로 비정)과

송술성(松述城)을 쌓음으로써 막히고 말았다.

578년에는 중국 남조(南朝)의 진(陳)나라에 사신을 파견,

진흥왕 이래의 외교관계를 유지하였으나, 재위 4년 만에 폐위되었다.

영경사(永敬寺) 북쪽에 장사지냈다.


※ 본문참고 :

      三國史記
      三國遺事
      武烈王權의 成立과 活動(申瀅植, 韓國史論叢 2, 1977)
      新羅中古期의 對中認識(金瑛河, 民族文化硏究 15,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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