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 목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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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칭 | 전주객사 (全州客舍) |
분 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궁궐·관아/ 제단 |
수량/면적 | 1동 |
지 정 일 | 1971.12.02~1975.03.31 |
소 재 지 | 전북 전주시 완산구 중앙동3가 1번지 |
시 대 | 조선시대 |
소 유 자 | 전주시 |
관 리 자 | 전주시 |
설명
객사(客舍)는 고려(高麗)·조선시대(朝鮮時代)에 고을에 설치했던 객관(客館)으로 출장(出張)을 나온 관원(官員)이나 외국사신(外國使臣)의 숙소(宿所)로도 사용하였다. 조선시대에 와서 주전(主殿)(본관(本館))에 전패(殿牌)를 안치(安置)하고 국왕(國王)에게 배례(拜禮)를 올렸으며, 국가 경조시(慶弔時)에는 민관(民官)이 합동(合同)으로 의식(儀式)을 거행(擧行)하거나 외객(外客)을 접대(接待)할 때는 연회장(宴會場)으로 사용되었다. 전주객사(全州客舍)는 전주사고(全州史庫)를 지은 뒤 남은 재료(材料)로 조선 성종(成宗) 2년 (1471)에 서익헌(西翼軒)을 개축(改築)한 기록(記錄)으로 미루어 그 이전에 건립(建立)되었음을 알 수 있다. 원래는 주관(主館)과 동(東)·서익헌(西翼軒)·맹청(盲聽)·무신사(武神祠) 등 많은 건물이 있었으나 지금은 주관(主館)과 서익헌(西翼軒)과 수직사(守直舍)만 남아 있다. 주관의 현판(懸板)에 쓴 '풍패지관(楓牌之館)'은 전주(全州)객사를 일컫는 말로서 전주가 조선왕조(朝鮮王朝)의 발원지(發源地)라는 뜻이다. 현재 초석(礎石)만 남아 있는 동익헌은 서익헌과 규모가 같으나 도로확장으로 인해 1칸이 부족하다. 객사의 정문은 주관을 정면하여 내삼문(內三門)˙중삼문(中三門)˙외삼문(外三門)이 있었으나 원래의 내삼문 안쪽으로 경역(境域)이 축소(縮小)되어 있다.
◆ 보물 제583호로 승격지정됨에 따라 1975년3월31일 해제 전주객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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