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제시대 탄압받던 조상님들...(펌)
한독수교 125주년 맞이 하여 100 년 전 한국과 독일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사진전이 열린 적 있습니다.
독일대사관 주최로......여기서 전시된 사진 몇 개를 아래에 올려볼까 합니다.
님들은 아래의 사진을 볼 때만 그들을 때려죽이고 싶진 않은 건가요?
그리고 이내 금새 잊어버리게 되고요...
우리가 어릴때부터 우리 역사를 좀 자세하게 배워야 하는데라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거사에 성공한 애국자와 총이나 폭탄으로 성공한 역사만 강조한 나머지,
선구자적 계몽가나 항일독립운동의 정신적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분들에 대해서는 소홀합니다.
또 애국만 있을 뿐,반민족 친일은 기술한 게 을사 5적신이 전부이죠.
또한 일제의 만행과 학살에 대해서도 별로고요
.이는 곧 사진이 중요한데 어찌된 영문인지 국사교과서에도 실리지 않고 있죠.
현재 일본내에 과거사에 대해 극히 소수지만 지식인과 당시 만행에 가담했던
도덕적 양심을 가진 자만이 드물게 사실을 말할 뿐입니다.
그러나 그들 목소리는 다른 주장에 묻혀 모기소리만도 못합니다.
얼마전 피렌체성당에 낙서한 일본 여대생이 비싼돈 들여서 다시 그곳에까지가 사죄한 일이 있었죠?
저는 이런 생각을 해보게되는군요.일본 내의 극소수 양심적이란 사람들의 주장도 어찌보면,
전혀 그런 것이 없다면 스스로 선진국에 걸맞지 않다고 판단한 머리좋은 자들이
'과거사 반성 주장하는 사람이라도 하나는 있어야 그럴 듯 하지 않겠는가'라고 계산해서
그나마 그런 주장이라도 펴는 것이 아닌가 하는......
독도영유권 주장 파문으로 우린 일본의 실체를 제대로 보는지도 몰라요.
저는 이 같은 억지주장에 중요한 하나를 발견합니다.
그건,과거사문제에 대해선 일본 내의 극소수 양심적 지식인이라도 다른 주장이 있지만
독도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그들도 일본우익과 일치를 보인다는 거죠.
일본 내에서는 이같이 영토와 관련된 사안에서는 좌우 이념도,양심도 , 지성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일본 내에서 영토문제에 대해서 다른 말을 한다는 것은 금시초문이고 전대미문이고
이는 앞으로도 전무후무 할 것이란 것은 명약관화한 것입니다.
그들이 중국과 러시아와 영토 분쟁을 할 때 일본내에서 지성인,양심가의 다른 목소리가 있었다는
말은 듣도 보도 못했죠.
독도영유권 주장에 한목소리가 나오는 일본을 보면서 울분을 토하면서도 소름이 돋는 섬찟한
두려움이밀려오는 까닭이 이것이죠.
상황이 이런데도 일본 극우단체나 日 우경세력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우리나라의 보수우익은,
핫이슈인 독도 도발이나 미국과 日 언론의 우리 국가원수에 대한 '부시 애완견이나 미국의 푸들'이란
조롱과 '지금은 곤란,기다려달라'는 오보에 우익으로서의 그들 나라에 직접적이고 자주적 반박은 없고,
여전히 진정어린 고민보다 역시나 차가운 가슴과 뜨거운 머리로 전투복입고 종로(일 대사관)에서
웃통 벗고,영토니 영유권과 하등 관계도 없는 별개의 개대중 슨상님(?)의 어업협정이나 들먹이고,
급기야는 난데없이 '대마도는 한국 땅'이라하자는 둥 촛불로 실추된 이미지를 만회하려는 듯
경쟁적으로 '애국포퍼먼스'로 집단 딸딸이를 쳐대며 그들만의 만족을 하고있고,
다음이든 네이버든 까페에도 친일까페가 버젓이 회원이 늘고 있는데 까페의 게시글 대부분이
훈민정음을 비방하고,스스로 조센징이란 말을 수 없이 올리고,숭례문이 불탄 것을 두고는 우상이
없어져서 다행이라는 글들이 넘치고......
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죠.
그것을 못참고 발끈하여 혹시라도 '우리 선조들이 당했던 것처럼 친일파 새끼들도 잔인하게 죽여버렸으면
좋겠다'고 하는 것은 그 까페에선 매를 버는 것이죠.
일본과의 관계에 있어 현재의 관계를 인식하고 상호 전략적 우호관계를 이루는 것에 반대할 국민은 없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를 정확히 인식해 과거의 우리 조상에 대한 일본의 잔혹하고 극악무도한 만행은 모르고 있죠.
일제 강점기 때의 역사교육만 보더라도 자세한 얘기도 잘 기술하지 않아서 따로 '지루한 근대사'책을 전문서점에서 사 보는 의욕을 발휘해 공부하던 시대를 살아왔고 지금도 별반 차이는 없습니다.
특목고에서는 아예 국,영,수,과학 4 개과목 이외에는 중등과정의 다른 교과 성적을 보지 않습니다.
이는 그대로 신흥 명문고라는 명성을 얻어가는 자립형사립고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대외적인 것은 많이 배우고 힘있는 분들이 잘 이끌어 주시리라 믿고 내부적으로 어찌해야 옳은가
생각해 봅니다.
일제 강점기 시대를 들추는게 뭐그리 부끄러운 것인가요?
일본은 과거사에 대해 사죄란 표현을 쓰는 대신에 유감표명을 할 뿐인데요.
'일본인들은 모두 나쁘다'이렇게 생각하는건 아닙니다.
사람은 잘못을 하면 그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고...또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것이 예측 가능해야지요.
저는 그들의 그렇지 못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정말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용서했다'로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를 논하려면 적어도 일본을 짊어질 젊은세대에게 과거에 대한 정확한 교육만큼 중요한 것이 있을까요?
오랜 기간을 두고 적시하지도 않고 그나마 일본교과서에 등재한 것 마져도 조금씩 조금씩 그들의 군국주의의
이념에 부합되도록 고쳐나가는 것을 보고 그 것에 분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과거사에 대한 사죄는 그것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죠.
일본 총리나 정부측의 통절한 사죄는 필요없습니다.
필요한 것은 일본의 자라나는 또 태어나는 세대에 대한 교육,그것의 연장선인 일본 교과서의 사실적인 기술이
필요한 것이죠.
님들이 일본 여행을 다녀와서 일본을 좋아하게되고,요미우리 자이언츠를 좋아하고 기무라타쿠야나 오구리슌
열성적 팬이되고, 나가부치 쯔요시 노래를 따라부르고,렉서스 매니아가 되고,쓰끼야끼와 쯔께모노를 즐겨먹는 것을 비난하는 것이 아닙니다.
절대로...일본의 전후세대인 젊은이들이 아래의 사진을 본적이나 있을까요?
바로 이 사진들이 그들의 조상들이 찍은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에 그들과 우리가 동시에 이 사진을 본다면,
이 사진을 본 우리와 그 들의 반응은 어떨지 사뭇 궁굼하군요.
그들이 이런 사진을 보며 우쭐대고 자랑스러워하지는 못할 겁니다......
그래서 교육과 교과서가 중요한 것이겠죠...
내가 그들의 과거사에 대한 사죄는 필요없다며 일본의 올바른 역사교육과 그것을 담보하는 과거사에 솔직한
일본 교과서를 통해 그들 참회의 진정성을 보려한다는 게 너무도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내부적으로는 우리 스스로 우리의 과거에 대한 반민족 친일행위가 민족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으며,
일본의 잔학한 만행을 구체적으로 적시하려는 노력 등...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역사의 명암을 모두 알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독립군가는 한이 서린 슬픈 노래라는 것을 모두가 느껴야합니다.
한독수교 125주년 기념 100년 전 한국과 독일의 문화 전시 中
'한국사진100년'전시회(주최 : 주한독일대사관)
100년전 오리지날 유리원판 한국과 독일 관련 전시회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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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돈의문(서대문).1914일본이 강제철거
▲1910년 조선총독부(중앙청)로 가리기 前 근정전의 일장기
▲1941년4월19일 형장으로 끌려가는 조선의용대 포로
▲1941년 3월 전투사항을 교육훈련 받는 독립단원들
▲1943년 일본육군22부대소속 지도단의 백두산 지질조사
▲간도국민회 항일투사를 심문하는 일본군
▲국사 교과서에는 얌전한 사진들만 등재 수록
▲국사교과서에 실리지 않았던 윤봉길의사 거사직후 모습
▲근심어린 조선인위안부
▲끔찍한장난.항일투쟁을하다 처형된 시신에 담배까지 물린 일본군(일 육군 보병 37여단)
▲독립군 습격 받은 후 독립군을 도왔다는 이유로 한 마을을 아예 없애기까지
▲독립군에 정보제공한 조선인 총검처형
▲독립운동 가담에 경각심을 주기위한 독립군가담가 효수(평북선천)
▲독립운동 연루조선인을 강제 노역후 벌목사업이 끝나자 모조리 학살
▲동도독립군서 대원에 대한 보복 작두처형
▲명성황후가 시해된 옥호루(뉴욕해럴드기자)
▲백두산에서 일본육군 조사단의 대동아기원제1943
▲서기 1900년 경회루 전경
▲소속불명의 독립군을 양민앞에서 공개처형
▲안중근의사의사 저격과 일왕으로부터 1등공신인정품위받은 이등박문(1909년)
▲압록강 상류에서 일본육군 트럭이동
▲완공후의 중앙청(조선총독부)
한국에서는 8·15광복 후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의 옛 조선총독부 건물이 주한미군사령부에 의해 군정청으로 사용되면서
처음으로 중앙청(capitol hall)이라 불리게 되었다.
이 건물은 1916년 일제가 식민통치의 위엄을 과시하고자 경복궁 근정전 앞에 세워 총독부 청사로 사용하여 왔다.
정부수립 이후 대통령 집무실을 비롯한 주요 행정부처가 자리를 잡아 중앙행정관청으로서 기능하여, 계속 중앙청으로 불리면서
권부(權府)의 상징처럼 되었다.
제3공화국에 들어서 대통령 집무실을 없애고 중앙행정부서가 종합청사·과천청사 등으로 분산되어 행정부의 중심부라는 뜻에서의
중앙청의 기능은 소멸되어 갔다.
일제 침략의 상징적 건물이기 때문에 주요 정부기관의 집무실로 사용할 수 없다는 여론에 따라 1986년 6월 23개 전시실을 갖춘
국립중앙박물관으로 개조하여 사용하였다.
1995년 8·15광복 50주년을 맞이하여 철거되었다.
출처 :encyber
▲윤봉길의사.폭탄3개 중 불발탄된 도시락과 업혀가는 일본 총영사
▲일본도로 항일연루 조선양민 학살
▲알림포스터
▲조선양민 학살후 죽음확인하기 위해 다시한번찌르는 장면
▲조선인 위안부의 자해(자살시도)
▲패망 후 조선을 떠나는 일본인들이 미군이 제공한 배에오르는 장면
▲항일독립군 습격후 조선인마을에서 증거인멸 화장
▲항일독립군에게 습격받은 일본분서.이후 조선인마을 인간사냥으로 이어져
▲항일병 가담에 경각심을 주기위한 머리전시(일본 보병37여단)
▲항일의병군 처형 후 동포들에게 머리부분 공개
▲항일투쟁 벌이다 무수히 죽어간 조선인마을 양민학살 후 화장처리
▲충정공 민영환선생.경술국치에 매천 황현선생과 같이 조선을 지키지 못한 것에 통한으로 자결함으로써 민족혼을 떨쳤다.
서울 한복판'충정로'란 거리 이름으로 민영환 열사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있다.
▲광복 후 반세기가 지난 2002년5월17일 국민의정부 들어서야 비로소 대한독립군 무명용사위령탑 제막
▲일본군의 극악무도한 만행.머리칼을 틀어올린 머리와 한복바지저고리,군복과 군화가 아닌
흰색 한복과 당시의 생활상을 엿보게하는 조선인들이 시신 주위에 몰려든 모습이 이는 일본군이
경각심 차원인지 장난삼아 한 것인지 도저히 사람이 한 짓이라고 믿기 힘든 만행이다.
▲독립군의 모태가 된 그 이전까지 활약한 의병
▲생포한 독립군을 경각심을 주기위해 동포들 앞에서 처형.독립군은 포로로 인정되지 않고 생포 후
처형하던지 강제노역 후 처형하였다.
특히 기념일을 기리는 행사의 일환으로 생포한 독립군이나 체포한연루자를 집단학살 하였다.
활발한 독립군의 항일투쟁이 잦아진 것은 전투만 벌어지면 곧바로 평북과 함북도와 연해주,만주,서간도,
북간도의 조선인에 대한 인간사냥식 마구잡이 학살과 방화 부녀자강간의 보복으로 이어져 조선독립군의
활약은 크게 제약받을 수 밖에 없어 팔로군과 중국국민군,조선광복군으로 흡수되는 양상으로 이어졌다.
조선인 양민학살은 독립군의 활동이 왕성했던 1915년~1920년대에 조만(조선.만주)국경지대에서 만행이
극에 달했을 뿐만 아니라 연해주 만주 간도에서도 잔학상이 끊이질 않았다.
훈춘사건 때만 보더라도 3 개월에 걸쳐 일본군이 간도에서 학살한 조선인 수만 3만여 명에 이르렀다.
일본군은 3.1운동 다음 해인 1920년 5월 싱징[興京]일대에서 민족의 항일투쟁을 구실로 3개 사단을
출동시켜 조선인 양민을 심문없이 무조건 잡아 일렬로 세워 총살한 후 재차 총검으로 찌르고.
이를 다시 불태우는 등 대학살을 저질렀다.
게다가 메이지천황절[明治天皇節]을 앞두고는 항일투쟁과 독립운동을 도왔다는 명목하에 천황절 축하를
명분으로 조선인들을 모으고는 황신내교회에서 조선인들을 학살하였다.
특히 일본군은 일본의 명절을 앞두고 그들 천황에게 충성하는 의미나 기념하는 뜻으로 그 즈음에 미리
잡아들인 애국지사를 기념일날 처형하는 극악무도한 짓을 자행했다.
▶출처: 계간지 '순국'紙 ※ 위 이미지들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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