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리/풍수지리

붉은 바위에 얽힌 전설

오늘의 쉼터 2008. 5. 30. 18:14

 

 

* 붉은 바위에 얽힌 전설

필자의 고향은 전북 순창의 복흥면으로 내장산에서 백양사 가는 중간지점에 있다.

해발 400m가 넘는 분지에 있는 복흥은 내장산 입구에서 좌회전하여 갈재라고 불리는 추령을

올라가 산 정상에 이르면 평평한 곳에 일개 면이 소재하고 있다.
옛날부터 삼재불입지지(三災不入之地)로 전란, 흉년, 전염병이 들어오지 못했다고 한다.

산이 높고 험하여 마을이 외부에 노출되지 않는다.

때문에 외적이 침입하더라도 다른 곳으로 지나쳐 가버렸고, 산 위에는 수량이 풍부한 넓은 평지와

전답이 있어 밖으로부터 식량을 들여오지 않더라도 자급자족이 가능했으며, 외부와 접촉이 없다보니

돌림병인 전염병이 들어 올리가 없었다.
가까운 예로 6.25 당시 인접한 쌍치면과 회문산 일대는 빨치산 본부가 있을 만큼 치열한 격전지로

양민의 피해가 컸는데 복흥면은 큰 피해를 보지 않았다.
당시 필자의 조부님도 전남 장성에 사시다가 난을 피해 복흥으로 피난하러 들어오시었는데 전쟁이

끝나고도 복흥의 산수에 반해 그대로 자리를 잡고 사신 것이 우리 집안이 일문을 이룬 계기가 되었다.

험한 노령산맥(호남정맥)의 줄기에 있으면서도 복흥은 산세가 순하고 야트막하여 도선국사 유산록과

각종 결록에 수많은 명당이 있다고 소개되어 있다.
산세 때문인지 작은 산골 마을에 불과하지만 인물도 많이 나왔다.

최근의 인물로는 우리 나라 초대 대법원장을 지내면서 청렴결백으로 유명한 가인 김병로 선생과

국회부의장을 지낸 홍영기씨가 이 고장 출신이다.
이처럼 산세가 뛰어나다 보니 전해오는 전설도 수없이 많다.

그 중 필자 고향마을에 있는 붉은 바위에 얽힌 전설을 소개하려고 한다.
복흥면에는 세 개의 장군대좌형 혈이 있는데 갈재(추령)에 있는 갈재 장군, 대각산 아래에 있는 대각 장군,

내장산 최고봉인 신선봉 아래에 있는 대가 장군이다.
이 세 장군은 나라가 위태로울 때나 백성들이 위험에 처해 있을 때 나타나 나라를 구하고 백성을 구했다고 한다.

일제가 강제적으로 조선을 합방하고 그들의 식민지 통치를 위해 전국에 걸쳐 토지 조사를 했는데 이때

이곳에 와서 산세를 보니 큰 인물이 나와 자신들을 쫓아낼 것 같았다.
그들은 석유 탐사를 한다는 구실을 붙여 혈맥이 있을만한 곳은 모두 자른다고 잘랐는데 쉽게 혈맥은

잘라지지 않았다. 대가 장군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인은 아무래도 하천 가에 있는 바위로 된 큰산이 마음에 걸렸다.

마을 사람들이 신성시하는 바위산은 그들을 노려보고 있는 듯 위협을 주고 있었다.
일본인은 날카로운 칼로 바위의 복부에 해당하는 곳을 깊이 찔렀다.

그러자 갑자기 천둥 번개가 요란하면서 바위 중간에서 피가 흘렀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그 자리에 붉은 색이 있는데 사람들은 붉은 바위라고 불렀으며 대가 장군이 칼을 맞아

죽었다고 믿고 있다.

이것은 아마 일본의 풍수 침략으로 조선 민중들로 하여금 독립의 뜻을 저버리고 자신들에게 복종하라는

뜻에서 교묘하게 꾸며낸 이야기로 추측된다.

즉 마을 사람을 지켜주는 대가 장군이 죽었기 때문에 더 이상 조선을 이끌어갈 인물은 나오지 않을 것이니

어쩔 수 없이 일본을 섬겨야 한다는 식민지 의식을 심어주기 위해서다.
그렇지만 조선 민중들이 희망을 저버릴 민족이 아니다.

비록 대가 장군은 죽었다고 하나 갈재 장군과 대각 장군이 있기 때문에 마을을 지켜 주리라 믿고 있다.

지금은 그 일대가 온천이 난다고 개발 중인데 구암 온천이 바로 그곳이다.

또 명당을 찾는 사람들이 갈재 장군혈과 대각 장군 혈을 찾기 위해 수 없이 찾아오는 곳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