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문신 심동신(1824∼?)이 입던 금관조복 중 금관 1점이다. 금관은 조복에 갖추어 쓰던 모자로 양관(梁冠)이라고도 하는데, 량(梁)은 모자의 앞면에서 꼭대기를 지나 뒷면까지 연결되어 붙여진 금색선을 말하며, 그 수에 따라 계급이 구분된다. 이 금관은 5량관으로, 1품의 관리가 쓰던 금관이다.
금관의 모양은 원통형인데 머리둘레와 뒷면 전체에 금칠이 되어 화려하고 윗부분은 검은 비단으로 싸여 있다. 뒷면은 금칠한 나무비녀 2개를 꽂아 고정하였고 비녀의 양 끝에는 술을 감아 늘어 뜨렸다.
이 금관은 1948년 석주선씨가 심동신의 7대 손자며느리로부터 인수받았다고 하며, 1890년대를 전후한 구한말의 유품으로 추정된다.
|
울창한 나무숲으로 둘러싸인 곳에 북향으로 자리잡은 기와집으로 순조 25년(1825)에 지었다고 한다.집의 진입로에는 보호수로 지정된 은행나무 두 그루가 서있고, 바깥마당에는 무지개처럼 휘어진 소나무 줄기가 대문을 대신하고 있다.
'ㄷ'자형의 안채와 '一'자형의 중문간채가 튼 'ㅁ'자형을 이루고 그 앞에 'ㄱ'자형의 사랑채가 있어 전체적으로 '日'자형의 배치를 하였다. 안채의 왼쪽으로는 3칸의 광채가 있고, 사랑채 오른쪽 앞에는 초가로 2칸의 헛간채와 4칸의 바깥채가 있다.
안채는 5칸 겹집에 양쪽을 홑집으로 꺾어 덧붙여 'ㄷ'자 모양을 이루고 있다. 대청 앞쪽에는 후대에 시설된 듯한 유리문이 있고, 대청의 왼쪽으로 제사에 쓰였던 곳으로 보이는 2칸의 찬방이 있다. 사랑채는 앞면에 툇마루를 두었고, 모두 덧문을 달았는데 이것은 북향집이기 때문에 비바람을 막기 위하여 후대에 설치한 것으로 보인다. 안채와 사랑채를 가로막고 있는 중문간채는 중문을 들어서서 곧바로 안마당을 향해 있지 않고 꺾어들어 가도록 하였다.
특별한 정원시설은 없지만 집안 곳곳에 매화·소나무·향나무·감나무 등을 심어 아름답게 꾸몄다.
※ 위 문화재는 일반적으로 관람이 가능하나, 소유주 등의 개인적 사정으로 관람이 제한될 수도 있습니다.
전문설명 수림(樹林)에 둘러싸여 자리한 이 집의 진입로 입구에는 보호수로 지정된 아주 큰 은행나무 두그루가 서 있으며 바깥 마당에 까지 거의 들어온 곳에는 소나무 등걸이가 무지개로 휘어져 대문을 대신하는 등 아름다운 나무가 꽉 들어차 집안이 어두울 지경이다. 여기에 ㄷ자형의 안채, 一자 중문간채, ㄱ자형의 사랑채가 일자(日字)로 배치되어 아름다운 공간을 연출한다.
건물의 축은 직선으로서 거의 북향(北向)(병좌임향(丙坐壬向))하고 있는 특이한 건물이다. 건축연대는 19세기 초로 추정되며 원형변경 없이 거의 그대로 보존되었다.
안채는 ㄷ자 모양으로 몸채는 5칸(間)겹집이고 날개는 맞걸이 홑집인데 왼쪽은 3칸, 오른쪽은 4칸이다. 평면구성은 중부지방식(中部地方式)인데 몸채의 구성에 약간 특이한 점이 있다. 간살이는 왼쪽날개 앞으로부터 2칸 부엌, 2칸안방, 모칸(間)은 찻방인데 꺾어져서 좌우 2칸을 쓴다. 웃방에서 꺾어진 부분은 마루가 되고 다음은 2칸 ×2칸의 넓은 대청이며 오른쪽 모칸은 상하2칸의 건넌방이다.(또는 상방이라고도 부른다.) 그 앞날개는 2칸 아랫방, 아래부엌, 안사랑의 차례로 배치되며 집 뒤와 양 옆에는 쪽마루가 길게 놓였다. 대청 전면에는 유리문이 시설되었지만 원래는 개방되었던 듯 싶다. 여기서 찻방이란 중남부지방에서만 나타나는 특이한 용도의 방으로서 아마 제사(祭祀)에 쓰였던 곳이 아닌가 추측된다.
구조는 몸채의 경우 3평주5량의 양통집구조와 같은데 다만 대청칸만 긴보5량으로 처리했다. 납도리집이며 장혀를 받쳤다. (중도리에는 장혀가 쓰이지 않음) 대들보 밑에는 단이를 끼웠는데 전후면 모두 직절이고 귀만 접었을 뿐이다. 보의 단면은 양변을 약간 들어가게 하여 둥그스름하고 대공은 사다리꼴 판대공이다. 날개부분은 맞걸이 3량구조이며 지붕은 박공으로 처리하였고 몸채는 합각지붕이다. 댓돌은 막돌 허튼층 쌓기 두벌대 높이이며 덤벙주초 놓고 네모기둥을 세웠다.
사랑채는 ㄴ자형으로 5칸전퇴집이다. 간살이는 오른쪽으로부터 갓사랑, 대청, 가운데방, 다음 모칸은 뒤로 꺾이지면서 상하2칸 큰사랑방으로 이루어졌으며 앞퇴에는 모두 툇마루가 놓였다. 전면에는 모두 판장문인 덧문으로 되어 있는데 아마도 북향집이기 때문에 비바람을 막기 위한 시설인 듯 보인다. 구조는 1고주5량이고 납도리집으로서 장혀를 받쳤다. 댓돌은 막돌 허튼층 쌓기이며 기단(基壇) ·축대(築臺)는 3단이고 모두 막돌 허튼층쌓기이다. 덤벙주초 위에 네모기둥을 세우고 홑처마로서 골기와 합각지붕으로 하였으나 뒷날개는 모임지붕으로 처리했다.
사이 광채는 4칸 맞걸이(맞배지붕)집으로서 왼쪽에는 3칸의 광과 오른쪽에 중문간(中門間)이 만들어졌다. 사랑채 오른쪽 변에서는 뒤로 담장을 막고 편문을 만들어서 아담한 샛마당을 마련했다.
사랑채 바른쪽 앞에는 2칸 헛간채가 있는데 고미다락을 꾸민 점이 재미있으며 맞걸이3량 초가맞배집으로 하였다. 건축연대는 올라가지 않지만 측면에 문시설을 하는 등 농촌의 시설로서는 흥미롭다.
사랑채 바른쪽에는 거리를 두고 세로로 바깥채가 돌아 앉아(서향) 배치되었고 一자 4칸전퇴집으로 이루어졌다. 안채 왼쪽에도 세로로 광채가 놓였는데 一자 맞걸이 3량집이다.
특이한 정원시설은 없지만 지형에 따라 적당히 축대를 쌓아서 전통가옥에서 흔히 보는 매화, 비자, 소나무, 향, 감나무 등이 울창하게 심어져서 집의 외부공간을 아름답게 조성하고 있다.
![](https://t1.daumcdn.net/cfile/blog/99DF834B5DE232A30C)
곳간채 중문에서 바라본 안채
![](https://t1.daumcdn.net/cfile/blog/99B66A4B5DE232A40D)
대청에서 내다본 안마당
![](https://t1.daumcdn.net/cfile/blog/99A6884B5DE232A504)
우측 익랑에서 본 대청
![](https://t1.daumcdn.net/cfile/blog/99466B4B5DE232A70F)
사랑채
![](https://t1.daumcdn.net/cfile/blog/9944CB4B5DE232A80A)
북쪽에서 바라본 가옥
![](https://t1.daumcdn.net/cfile/blog/996E014B5DE232A90E)
광채
![](https://t1.daumcdn.net/cfile/blog/99AAD24B5DE232AA04)
사랑채 전경
![](https://t1.daumcdn.net/cfile/blog/9946E5465DE232AB06)
사랑채 측면과 굴뚝
![](https://t1.daumcdn.net/cfile/blog/99D038465DE232AD03)
사랑채 툇마루
![](https://t1.daumcdn.net/cfile/blog/99FC06465DE232AE37)
사랑채
![](https://t1.daumcdn.net/cfile/blog/999F44465DE232B004)
사랑채와 중간문채
![](https://t1.daumcdn.net/cfile/blog/99CB93465DE232B108)
안채 가운데 방
![](https://t1.daumcdn.net/cfile/blog/9981AA465DE232B23E)
안채 대들보
![](https://t1.daumcdn.net/cfile/blog/996F5C465DE232B30A)
안채 대청마루1
![](https://t1.daumcdn.net/cfile/blog/9943F14D5DE232B50B)
안채 대청마루2
![](https://t1.daumcdn.net/cfile/blog/99F4ED4D5DE232B642)
안채 대청에서 바라본 앞마당
![](https://t1.daumcdn.net/cfile/blog/9943F64D5DE232B70B)
안채 부엌 내부
![](https://t1.daumcdn.net/cfile/blog/993FF64D5DE232B840)
안채 부엌과 안방
![](https://t1.daumcdn.net/cfile/blog/99D2B84D5DE232BA08)
안채 전경
![](https://t1.daumcdn.net/cfile/blog/99FB314D5DE232BB07)
정원에서 바라본 사랑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