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국가민속문화재

국가민속문화재 제192호 부여 여흥민씨 고택

오늘의 쉼터 2008. 5. 7. 08:42



종     목

국가민속문화재 제192호

명     칭

부여 여흥민씨 고택 (扶餘 驪興閔氏 古宅)

분     류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 주거건축 / 가옥

수량/면적

1곽(6필지/ 지정구역 3,203㎡, 보호구역 3,057㎡)

지 정 일 1984.12.24
소 재 지

충남 부여군 부여읍 왕중로 87 (중정리)

시     대조선시대
소 유 자부여군 
관 리 자

부여군 

일반설명

나지막한 뒷산을 배경으로 넓직한 터에 남향으로 자리잡은 조선 후기의 주택이다. 사랑채 기와에 ‘숭정 87년’(1705)이라는 기록이 있으나, 건립연대와는 관련이 없는 듯하며 전체적인 양식으로 보아 19세기 후반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 一자 모양의 대문채 뒷쪽에 안채가 있고, 안채와 대각선상에 사랑채가 배치되어 ㅁ자 모양을 이루고 있다. 그 앞쪽으로는 최근에 복원한 줄행랑채가 자리잡고 있다.

안채는 왼쪽부터 부엌·큰방·대청·작은방·안마루 순으로 구성된 8칸집으로, 오른쪽에 돌출하여 덧붙여진 안마루가 특이하다. 사랑채는 광과 중문간·부엌·사랑방·마루로 배치하였는데, 안채와 비슷한 구조기법을 보이고 있지만 안채보다 높게 지어 위엄을 나타내고 있다. 중문은 들어서면서 안채가 바로 보이지 않도록 1칸 꺾어 통하게 하였다.

전형적인 양반집의 배치를 보이고 있는 집으로 주위에 있는 오래된 나무들이 예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전문설명


노송과 느티나무가 울창한 얕으막한 뒷산을 배경으로 ㅁ형의 집이 남향하여 자리했다. 집터가 넓어 이웃집이 근접해 있지 않으며 널찍한 터에 큼직하고 나이든 나무들이 어우러져 집안 분위기를 고풍스럽게 한다.

사랑채 내림마루 끝에는 숭정(崇禎)87년(1705) 기명의 망와가 있지만 이것은 건립연대와는 무관한 듯 하며 이 집은 구조기법으로 미루어 19세기 후반 정도로 추측된다.

집의 정면에는 대문채가 있고 여기 축을 약간 서쪽으로 이동하여 같은 수평축 선에 ㅁ자 몸채가 배치되었다. 몸채는 뒤쪽이 안채가 되며 앞쪽의 동남쪽 모퉁이를 날개 달듯 크게하여 사랑채로 이용하는데 대체로 영남식 구성방법이다.

몸채의 간살이를 살펴보면 안채인 가로칸은 전후퇴를 둔 8칸집이고 사이에 낀 세로칸은 맞걸이 4칸반(間半)이다. 전면은, 사랑채에 해당하는 동쪽 3칸은 전퇴집으로 구성하고 그 서쪽은 맞걸이 5칸으로 했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전면 6칸×측면 7칸반의 ㅁ자집인데 동쪽으로만 앞뒤에서 각각 2칸이 덧붙여졌다. 평면구성은 안채 서쪽으로부터 부엌, 2칸 안방(각 칸은 개방이 가능한 미서기문으로 구분됨), 2칸 대청, 건넌방, 가로간의 맨 동쪽에 2칸 안마루가 놓였다. 안방과 대청 앞의 퇴에는 툇마루가 시설되었다. 다시 건넌방 앞은 세로로 2칸 안사랑, 2칸 부엌(앞쪽은 상부에 다락시설), 다음은 책방으로 사랑방에 연결된다. 서쪽 세로칸은 부엌으로부터 봉당, 고방, 마루방, 아랫방, 반칸(半間)의 샛문간으로 안채에 연결되었다. 앞채는 서쪽으로부터 2칸 광, 2칸 중문간, 다음은 사랑부엌으로 사랑채에 연결되며 사랑채는 2칸 사랑방과 맨 동쪽에 누마루가 시설되고 사랑방 앞에는 툇마루가 놓이며 사랑채 서남쪽 모퇴에는 볏광이 마련되었다.

구조는 2고주5량이 기본이지만 대청중앙은 1고주5량이다. 모를 굴린 납도리집이며 장혀는 받쳤다. 종도리 장혀 밑에는 다시 헛창방을 보내고 소로를 끼워 수장했으며 대공은 높은 사다리꼴 판대공이다. 댓돌은 장대석 외벌대이고 높지 않으며 초석(礎石)도 덤벙주초로서 매우 낮다. 다만 사랑채 앞만 큼직한 판석으로 댓돌을 만들어서 위엄을 표현했으며 사랑마당에서 중문간까지도 여러단의 계단을 오르도록 하였다. 기둥은 네모기둥이고 홑처마이며 지붕은 안채 서쪽과 사랑채 동쪽은 합각으로 해서 전벽돌로 무늬를 만들어 넣고 안채 동쪽은 박공지붕으로 했다. 사랑채와 안채가 연결되는 곳은 겹(솟을) 지붕으로 처리했고 나머지 두 곳은 슬그머니 모임지붕으로 만들었다.

대문채는 一자 맞걸이 6칸집으로 솟을대문을 만들고 양끝으로 박공으로 처리했다. 대문간은 동쪽 세 번째 칸에 놓이고 중문간(中門間)은 서쪽에서 동쪽 칸으로 꺾여 들어가도록 계획되었으므로 동선이 역으로 꺾이도록 의도되었다. 원장(垣墻)이 좀더 아기자기하게 만들어졌음직 하나 남아 있진 않다. 전체적으로 사대부집의 전형적인 예(例)이다.




행랑채 정면

북동쪽에서 바라본 전경

사랑채

안채 좌익사

안채 마루방

동쪽에서 바라본 사랑채와 안채 옆면

남동쪽에서 본 사랑채

가옥 전경

동쪽에서 바라본 사랑채와 안채 옆면

북동쪽에서 바라본 전경

사랑채 옆면

사랑채 전경

사랑채와 안채 입구 전경

안채 내부

안채 서익사

안채 전경1

안채 전경2

안채내부에서 바라본 옷방과 전경

행랑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