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국가민속문화재

국가민속문화재 제193호 부여 군수리 고택

오늘의 쉼터 2008. 5. 7. 09:06



종     목

국가민속문화재 제193호

명     칭

부여 군수리 고택 (扶餘 軍守里 古宅)

분     류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 주거건축 / 가옥

수량/면적

1곽(3필지/852㎡)

지 정 일 1984.12.24
소 재 지

충남 부여군 부여읍 신기정로94번길 17-8 (군수리)

시     대조선시대
소 유 자장옥순 
관 리 자

장옥순 

일반설명

군수리 사지 옆 평야마을에 동향으로 세운 초가이다. 안채와 헛간채, 그리고 최근에 지은 헛간채가 있다. 안채는 건축양식으로 보아 18세기 후반에 지은 것으로 보이며, 헛간채는 1938년에 지었다는 기록이 발견되었다.

앞면 4칸·옆면 2칸 규모의 안채는 안마당을 앞에 두고 '一'자형으로 배치되어 있는데, 큰방과 작은방·부엌으로 구성되어 있다. 안채 왼쪽 뒤로 헛간채가 있는데, 방과 광·잿간·헛간으로 구성된 일반적인 형태이다. 부엌에는 조왕신을 모시는 가정신앙이 살아 있다. 마당과 뒤안 등에는 군수리사지에서 출토된 것으로 보이는 석물들이 많이 흩어져 있다.

대체로 지을 당시의 모습을 많이 잃었지만 안채가 초가로는 격이 높은 민가이다.

※ 위 문화재는 일반적으로 관람이 가능하나, 소유주 등의 개인적 사정으로 관람이 제한될 수도 있습니다.

전문설명


평야 마을에 위치한 이 집은 초가인 안채와 헛간채 두채와 안마당 왼쪽에는 헛간채가 한채 있다.

안채는 안마당을 앞에 두고 정동향(正東向)하여 있고 헛간에는 왼쪽 뒤로 비껴서 같은 방향으로 배치되었다. 안채는 세부기법으로 미루어 18세기 말 건축으로 보이며 헛간채는 1938년에 축조되었다.(상량문(上樑文)은 세재무인(“ 歲在戊寅)…유좌묘향(酉坐卯向)…” 이란 기록이 있다.).

안채는 4칸(間) 전후퇴집이지만 원래는 부엌칸 없는 3칸 전후퇴집으로서 아마도 어떤 집의 사랑채로 쓰였을 것이다. 간살이는 앞퇴에 우물마루를 깔고 왼쪽에 작은방을 두며 다음은 복판에 칸반(間半) 크기의 큰방이 배치되었다. 나머지 반칸(半間)은 부뚜막이 시설되며 상부는 큰방에서 이용하는 벽장이 마련되었다. 뒷퇴 복판은 우물마루가 놓이고 오른쪽은 큰방에서 이용하는 골방이다. 집의 오른쪽에는 다시 칸반을 달아내서 부엌으로 쓴다.

구조는 2고주5량이며 납도리인데 단면이 모를 굴린 네모꼴이다. 보의 단면 역시 네모꼴인데 퇴보는 기둥몸에 산지로 맞춤하였다. 대공은 동자주로 처리되었다. 측면 지붕틀은 우미량(충량)을 대들보에 걸치고 우미량 굽은 등에 중도리를 받은 외기를 올려 놓으며 종도리 끝머리를 외기 위에 올리는 방식을 채택했다. 댓돌은 막돌 허튼층 쌓기 세벌대 높이이고 주초(柱礎)는 덤벙주초이며 네모기둥이다. 지붕은 우진각 초가집인데 추녀 끝에는 사래를 올려서 추녀 끝을 치켜올렸다. 문틀은 벽선(문설주)은 문짝처럼 연귀로 맞추고 쌍사를 넣어 장식했다. 쌍사는 상방에도 새겨넣었는데 이것은 샛벽이 덮히도록 하였다. 문지방 아래는 머름을 두껍게 넣었는 바 이는 민가에 있어 고식기법(古式技法)이다.

헛간채는 3칸전퇴집이며 왼쪽에 아랫방, 가운데에 광, 오른쪽은 다시 중간을 반으로 막아서 앞은 헛간, 뒤는 잿간인데 세부기법은 민가의 일반적 형태이다. 부엌에는 조왕신을 모시는 가정신앙이 살아 있으며 뒤안과 마당 등에는 군수리(軍守里) 사지 출토로 여겨지는 석불이 많이 놓여 있다.




가옥 전경

안채

안채 앞 툇마루

광채

헛간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