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국가민속문화재

국가민속문화재 제184호 안동 오류헌 고택

오늘의 쉼터 2008. 5. 6. 19:39



종     목

국가민속문화재 제184호

명     칭

안동 오류헌 고택 (安東 五柳軒 古宅)

분     류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 주거건축 / 가옥

수량/면적

2필지/4,096㎡

지 정 일 1984.01.14
소 재 지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기르마제길 18-15 (임하리)

시     대조선시대
소 유 자김상돈 
관 리 자

김우택 

일반설명


지례리 천곡의 서북쪽에서 뻗어내린 산세에 의지하여 반변천이 바라보이는 곳에 동남향으로 자리잡은 조선 후기의 주택이다. 조선 숙종 때 대사성을 지낸 지촌의 셋째 아들 김원중이 천곡에 분가할 때 지은 것이다. 안채는 1700년대에 지은 것으로 보이며, 사랑채는 1920년에 크게 고쳐지은 것이다. 임하댐 건설로 인하여 1990년 지금의 위치로 옮겨지었다.

안채와 사랑채·대문간채 등이 튼 'ㅁ'자모양을 이루고 있다. 안채 오른쪽에 방앗간채가 있고 사랑마당 왼쪽 한켠에는 외양간을 두었으며, 담밖 뒷쪽 낮은 언덕에 사당을 마련하였다. 흙담을 사각형으로 쌓아 건물들을 둘러싸게 하였고 동남쪽으로 솟을 대문을 내었다.

안채 부엌의 구들골을 청소할 수 있도록 한 구조, 사랑채에 줄을 당겨서 오르내리도록 한 승강식 감실, 물이 새지 않을 정도로 조밀하게 짠 마루 등이 이 집의 특징이다. 또한 사랑마당·안마당 ·뒷마당 등 마당을 성격에 따라 건물과 담장으로 구분하여, 조선 시대 주택의 내외 생활공간 구분을 명확히 하고 있다.

여러 가지 구조적 특징을 가진 주택으로 조선 시대 일반 주택연구에 중요한 아름다운 가옥이다.

지정 당시에는 '지례동 오류헌(知禮洞 五柳軒)'이었으나, 소유자(김원택)의 명칭변경 요청과 문화재의 소재지를 명확하기 위해 '안동 오류헌(安東 五柳軒)'으로 명칭 변경(2009. 6.16)을 하였다.

※ 위 문화재는 일반적으로 관람이 가능하나, 소유주 등의 개인적 사정으로 관람이 제한될 수도 있습니다..


전문설명


조선 숙종조(肅宗朝)에 대사성(大司成)을 지낸 지촌선생(芝村先生)의 세째인 증(贈) 좌승지(左承旨) 김원중(金遠重)(호 목와(木窩))이 천곡(川曲)에 분가하여 현재까지 13대에 이르렀다. 현재의 안채는 분가시(1700년대)의 건물로 추정되나 사랑채는 현소유자 김원택(金源宅)의 조부가 1920년에 크게 개축한 것이다.

본 가옥은 지례동(知禮洞) 천곡에 있으며 서북쪽에서 뻗어내린 산세를 의지하여 동남에서 서북간으로 흘러가는 반변천(半邊川)을 거슬러 바라보는 동남향으로 택옥(宅屋)을 앉혔다. 서쪽으로 경사져 올라간 대지 주위에는 방형(方形)으로 토담을 쌓고 동남향한 5칸 행랑채의 중앙에 솟을대문을 내어 정면을 삼았다. 거택(居宅)은 T자형 안채와 ⊥자형 사랑채 및 중문간(中門間)채가 튼ㅁ자를 이루고 있으며 사랑마당 좌측에 외양간을, 안채의 우측에 방앗간을 설치하였고 담밖 뒤쪽 언덕에 제청(祭廳)(사당)을 배치하였다.

안채의 중심은 마당쪽으로 개방된 정면 3칸의 대청이 있고, 대청의 좌측에 접하여 2칸통 온돌방(溫突房)과 2칸 부엌의 도합 4칸이 마당쪽으로 내려뻗어 ㅁ형을 이루었으며 대청의 우단(右端)에 상방(上房) 1칸이 꾸며져 있다. 대청의 보간은 1칸으로 폭이 좁은편이며 자연석 초석 위에 방주(方柱)를 세웠고 상부가구는 삼량가(三樑架)로 각대공(角臺工) 위에 마루대를 올렸다. 안방부엌의 부뚜막 윗벽에는 벽돌크기의 네모난 구멍을 5개소 내어서 구들골이 막혔을 때 뚫을 수 있게 하였는데 평소에는 벽돌로 막아놓았고, 재나 그을음은 웃목의 구들골 측면에서 끌어낼 수 있게 청소구를 설치하였다. 사랑채의 사랑마루는 정면 2칸으로 전면에 4분합문을 달아서 마루방으로 꾸몄으며 좌측에는 정면 2칸의 사랑방을, 우측에는 1칸의 감실방이 배치되어 있다. 사랑채의 전면에는 툇마루를 설치하였는데 감실방의 앞쪽만 한단 더 높이고 헌함을 돌려서 누(樓)마루처럼 꾸몄다. 마루방의 상부는 오량가(五梁架)로 종보위에 원형 판대공(板臺工)을 세우고 종도리(宗道里)를 올렸다. 사랑방 뒷편에는 부속 마루방과 내정(內庭)으로 통하는 샛마루를 두었고 사랑마루방 뒤에는 샛방과 책방을 설치하였다. 감실방의 뒷칸에 설치한 감실은 줄을 당겨서 상하로 승강(乘降)이 가능한 구조로 만들어놓아 흥미롭다. 샛마루와 샛방위 뒤편에는 못방과 고방을 직각으로 돌출시켜서 안마당을 향하여 배치하고 출입케 하였다. 사랑방의 좌측에 접하여 지붕이 한단 낮은 중문간채가 一자로 연결되었는데 중문간 1칸, 아랫방 2칸, 아랫마루방 1칸의 순으로 배열되었다. 행랑채는 5칸의 어간(御間)을 솟을 박공지붕으로 올리고 중턱대문을 달았으며 좌우에는 방과 고방을 각 1칸씩 대칭으로 배치하였고 외벽(外壁)은 검은색이 나는 냇돌을 방화벽(防火壁)처럼 백회(白灰)로 곱게 쌓아 올렸다.

본 건물은 사랑마당, 안마당, 뒷마당 등 마당의 성격에 따른 구분이 건물과 담장으로 명확하게 되어 있어서 조선시대 주택의 내외 생활영역의 구분을 위한 공간분리 전통을 잘 이행하고 있는 예라 하겠다. 그리고 구들골을 청소할 수 있는 구조와 승강식 감실 등 흥미있는 구조를 보이고 있으며, 사랑채의 섬세하고 우아한 시공기법도 주목할만 하다.


행랑채에서 바라본 사랑채와 중문간채

안대청에서 내다본 안마당과 사랑채 및 중문간채

중문간에서 본 안채

사랑채 사랑마루방 내부

사랑채 툇마루에서 본 행랑채

지례동오류헌전경

지례동오류헌

사랑마당과행랑채

솟을대문

후면(안채~사랑채)

사랑채

솟을대문

현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