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자연환경과 대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마을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는 집으로 1900년대 초에 지은 마을지주의 집이다. 안채는 1908년에 지었고 사랑채도 당시에 지었다고 생각되며, 곳간채는 이보다 늦게 지냈다. 대문채와 헛간채는 지은지가 얼마되지 않았다.
집의 가장 안쪽에 안채가 있고 맞은편에 사랑채가 있다. 안마당 맞은 편에 비스듬이 대문간이 있으며 동쪽에 헛간채가 있다. 바깥마당에는 사랑채로 통하는 대나무 문이 있고 사랑마당과 대문간은 담으로 경계하고 있다.
안채는 ㄷ자모양으로 날개가 뒤쪽을 둘러싸고 있는데 이것은 남해안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방법이다. 서쪽부터 앞뒤로 부엌방과 부엌이 있고 뒷날개에는 뒷방이 있다. 부엌 동쪽으로 큰방과 2칸의 대청 그리고 작은방이 있다. 2칸의 대청은 중앙에 문을 달아 공간을 구분하고 있는데 뒤는 안대청, 앞은 밖대청이라 한다. 밖대청은 전면을 개방하였으며, 안대청은 폐쇄하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이러한 구분은 이 지방 부농들의 대청이용의 발달된 형태로 여겨진다.
사랑채는 전형적인 남도방식으로 대청이 한쪽에 놓인다. 서쪽에서부터 대청·사랑 윗방·아랫방이 있고, 뒤쪽에는 아랫방쪽에 골방, 윗방쪽에 2단으로 된 물건을 넣어두는 작은방이 있다. 대청과 방 사이에 문을 달아 오히려 중부지방보다 폐쇄적이며, 아랫방 동쪽은 부엌을 겸한 대문간이나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다. 곳간채는 북쪽 1칸은 따로 구분하고 나머지는 통하도록 하였으며 대문채는 가운데가 대문간이며, 서쪽에 문간방, 동쪽에 헛간으로 이루어져있다.
특히 안마당 동쪽에 지어진 돼지우리는 건축연대는 오래되지 않았으나 구조기법이 전통적 방법을 따르고 있다. 주변의 대나무 숲도 그윽한 분위기를 풍겨주지만 사랑채 앞의 정원시설과 뒤안의 중간짜임도 매력적이다.
전문설명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대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마을 깊숙이 박혀있는데도 외딴집처럼 느껴지는 좋은 위치에 자리한다.
이런 분위기에 맞춰 공간에 알맞은 정원수(庭園樹)들이 곳곳마다 심어졌다.
안채는 1908년에 지어졌으며 사랑채도 당시에 건축되었다고 생각되지만 광채는 이보다 약간 늦은듯 싶으며 대문채와 그 옆의 헛간채는 지은지가 얼마되지 않았다.
대나무숲이 우거진 집터 뒤쪽에 안채가 동남향하여 앉고 그 맞은편에 서쪽으로 비껴서 사랑채가 배치되었다. 사랑채 뒤와 안채 서쪽은 부엌 부대공간인 뒤뜰이 설정되고 그 서쪽에 광채가 동향하여 앉았다. 안채 앞은 크지 않은 안마당이 마련되고 그 맞은편에 안채와 30°비뚤어지게 비스듬히 대문간이 놓였으며 그 동쪽에는 헛간채가 나란히 배치되었다. 대문간 앞은 조그만 바깥마당인데 서쪽에 사랑채로 통하는 대나무 사립문이 시설되었다. 바깥마당 앞은 대문간과 직각으로 진입로가 구성되고 탱자나무 울타리가 남도(南道)의 멋을 풍긴다. 사랑채 앞은 사랑마당인데 정원으로 꾸며졌다. 대문간과의 사이는 토담으로 경계했지만 나머지는 수목으로 차폐되었다. 안채 뒤는 양쪽 끝에서 뒤로 담장을 쳐서 동선을 차단하고 뒤안공간을 만들었다.
안채는 ㄷ자 모양인데 날개를 앞으로 내밀지 않고 뒤안을 둘러쌌다. 이것은 남해안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방법으로 다른 지방에서는 그 유래가 드물다. 가로칸은 5칸(間) 좌우퇴를 가진 겹집으로서 뒤의 반은 1칸 길이로, 앞의 반은 다시 4반에 기둥을 박아 전퇴를 두는 방식이다. 뒤의 날개는 각각 1칸씩 내미는데 서쪽 날개만 안으로 퇴를 두었다.
간살이는 서쪽으로부터 앞쪽에 도리간 1.5칸의 부엌방, 그 뒤는 같은 크기의 부엌, 뒷날개는 같은 크기의 뒷방인데 뒤로 헛기둥을 세워 반침이 증축되었다. 부엌 동쪽은 보간 1.5칸의 큰방, 다음이 2칸 ×2칸의 대청, 끝머리가 보간 1.5칸의 작은방, 뒷 날개에는 1.5칸의 고방이 배치되었다. 큰방 및 작은방의 앞퇴와 작은방의 머릿퇴에는 툇마루가 시설되었는데 작은방 앞 툇마루만 약간 높게 만들어졌다. 작은방 앞 모퇴에는 조그만 볏광이 마련되었고 집 뒤 안쪽에는 쪽마루가 돌아가면서 시설되었다. 여기에서 특이한 것은 대청으로서 중앙에 가로로 분합문(分閤門)을 시설하여 공간을 구분짓고 뒤는 안대청, 앞은 밖대청이라 하여 밖대청은 전면으로 개방하면서 안대청은 폐쇄하는 점이다. 남도의 대청 이용은 경기지방과 달라서 외부로 보기에는 구들과 같은 형상을 하면서 도장 내지는 고방의 기능이 강조되는 점을 생각할 때 도장기능을 갖는 안대청을 구분하는 것은 이 지방 부농(富農)들의 대청 이용의 발달된 형태로 여겨진다.
안채의 구조 역시 평면구성과 더불어 특이한 방법을 쓰고 있다. 양통집에서 볼 수 있는 구조로 3평주5량 구조로 처리하고, 대신 앞퇴를 둘 때는 샛기둥을 세우고 상부에는 포대공 처럼 접시받침을 짧은 동자주 위에 얹고 장혀와 도리를 걸치며 도리가 잇대어지는 사이는 토막보를 끼워 결구(結構)한다. 도리는 납도리인데 장혀를 받쳤으며 모서리는 굴리지 않고 모를 접었다. 보 아래에는 단이를 받치며 전면은 직절, 안쪽은 빗절이다. 전면 기둥머리에는 특별하게 주두(柱頭)를 얹었다. 기둥은 네모인데 비교적 크고 민흘림이며 초석(礎石)은 낮은 덤벙주초이다. 댓돌은 자연석 외벌대이고 대공은 사다리꼴 판대공인데 뒷날개 마감은 박공으로 처리했다.
사랑채는 5칸전후퇴집이며 전형적인 남도 사랑의 평면구성을 보여서 대청이 한쪽에 놓인다. 간살이는 서쪽에서부터 보간 1.5칸의 대청, 다음은 복판에 사랑웃방, 사랑아랫방인데 뒷퇴에는 아랫방쪽에 골방을, 웃방쪽은 2단으로 만들어진 반침을 시설했다. 대청과 사랑방의 앞퇴에는 툇마루가 깔리며 대청과의 사이는 분합문으로 구획되었으나 대청과 사랑웃방과의 샛문은 쌍여닫이가 만들어질 뿐 분합문은 두지 않았다. 오히려 중부지방보다 폐쇄적이며 아랫방 동쪽은 부엌을 겸한 대문간이나 지금은 이용치 않는다. 맨 아래 끝은 문간방인데 뒷퇴는 토방으로 쓰고 아랫퇴가 곁달리는데는 측벽을 터서 둘곳으로 이용한다.
구조는 전형적인 2고주5량이다. 장혀를 받치고 납도리를 올렸는데 납도리 모서리는 모를 크게 접고 있다. 종도리 아래에는 단장혀를 받치고 대공은 기둥꼴 판대공이다. 기둥은 두리기둥으로서 낮은 덤벙주초 위에 올렸고 댓돌은 막돌허튼층쌓기로서 두벌대 높이이다.
광채는 전면 4칸, 측면 2칸의 겹집구조로서 가운데는 긴보 5량구조로 처리하였으며 북쪽 1칸은 따로 구분하고 나머지는 통간으로 만들었다. 바닥은 우물마루이며 외벽은 광채의 특징을 살려 빈지널벽이다. 대문간은 맞걸이 3칸집이며 복판은 대문간, 서쪽에 문간방, 동쪽에 헛간으로 이루어졌다. 헛간채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양통구조로 만들어 졌다.
특히 재미있는 것은 안마당 동쪽에 지어진 돼지우리로서 건축연대는 오래지 않으나 구조기법이 전통적 방법을 따르며 모양새가 대단히 아름다운 초가 삿갓지붕이다.
주변의 대나무숲도 그윽한 분위기를 풍겨주지만 사랑채 앞의 정원시설과 뒤안의 중간 짜임새도 매력적이다.
안채 사랑채 뒷면과 곳간채가 보이는 마당
축사 곳간채 Husband's quarters 곳간채 대문 대문채 마루 대문채 돼지우리 마당 노거수 사랑채 안채측면 장독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