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과 뒷산을 주변환경으로 정남향으로 지어진 주택이다. 지붕 수리 공사 중에 발견된 상량문을 통해 1753년(영조 29년)에 건립된 것이 확인되었다. 전체적인 주택의 배치형식은 사랑채가 안채를 가로막고 서있는 'ㅁ'자형을 이루고 있으며, 대문은 원래 바깥행랑채에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바깥행랑채가 헐려 남아있지 않다.
안마당으로 통하는 중대문의 오른쪽에 '一'자형의 사랑채가 있고, 대문을 통하여 안마당을 들어서면 안방과 대청을 중심으로 하는 'ㄷ'자형의 안채가 자리한다. 안마당의 가운데에 화단을 만들어 사랑채에서 안채가 보이지 않도록 시선을 차단하였다. 안방의 왼쪽으로 부엌이 꺾여 자리 잡았고 그 아래로 찬광, 찬모방, 마루가 있다. 대청의 오른쪽에는 마루방·건넌방·부엌이 있는데, 부엌 옆에는 방 2칸과 마루가 있는 작은 사랑채가 돌출되어 있다. 조선시대 사대부 주택에 작은 사랑채가 더러 있기는 하지만 이 주택과 같이 안채에 붙어 뒤쪽으로 배치된 경우는 매우 드물다. 안채의 뒤뜰에는 '一'자형의 광채가 길게 놓여있다. 사랑채는 큰사랑방, 큰사랑대청, 사랑방, 머리대청을 '一'자로 배치하고 앞쪽으로는 길게 툇마루를 두었는데, 큰사랑방 앞에는 마당쪽으로 내밀어 높은 누마루를 만들었다. 안방과 대청, 사랑방과 사랑대청에는 각각 들어 걸 수 있는 분합문을 달아서 여름에는 열어 놓아 시원하게 공간을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원래 집 앞에 있던 '一'자형의 행랑채는 남아 있지 않지만, 집을 지은 시기가 비교적 분명하고, 훈련된 목수가 기법에 따라 정성껏 지어 인근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격조 높은 집이다. 완성도 높은 주택이 여주라는 작은 고을에 존재하였다는 점에서도 학술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
※ 위 문화재는 일반적으로 관람이 가능하나, 소유주 등의 개인적 사정으로 관람이 제한될 수도 있습니다.
전문설명
정남향 집으로 수구(水口)가 서남으로 열려서 멀리 여강(麗姜)이 바라보이며 조산(朝山)이 나지막하게 깔렸다. 뒷산은 낮게 중앙으로 내려오다 혈(穴)을 맺는데 하나는 곽(郭)씨댁이고 다른 하나가 이 집이다.
평면의 구성은 전체적으로 ㅁ자 모양이지만 서쪽으로 작은 사랑채가 곁달리고 사랑방 앞으로 누마루가 시설되는 등, 집 앞에 一자로 늘어서 있었다는 행랑채가 헐렸는데도 일견 사대부의 개인 취향적인 우수한 건물임을 알 수 있다. 안채는 남도형(南道形) 안방과 대청을 가로로 두고 서쪽에 부엌과 동쪽에 건넌방을 붙이면서 꺽어 배치했다. 부엌앞에는 하님의 방인 상방을 두고 앞에는 고방을 배치했다. 건넌방 앞은 작은 부엌과 광 및 동쪽으로 꺽어져서 작은 사랑방과 작은 사랑대청, 앞퇴의 툇마루로 이루어지는 작은 사랑채를 곁들였다. 사랑채는 서쪽으로부터 큰사랑, 큰사랑대청, 사랑방, 머리대청을 一자로 배치하고 앞퇴에는 길게 툇마루를 설치하였으며 사랑방 앞에는 마당으로 내밀어서 높은 누마루를 만들었다. 중문(中門)은 서남쪽 모퉁이에 있는데 큰사랑과 상방마루 사이에 ㄱ자로 구부려 진입토록 했다. 지금은 서쪽 담장에 설치된 조그만 문을 주로 이용하나 아마 이것은 이 집의 협문이었을 것이고 원래는 앞의 행랑채에 있었을 것이다. 집 뒤뜰에는 一자형의 광채가 길다랗게 놓여있다.
구조는 안채와 사랑채를 1고주5량으로 처리했는데 대청(大廳)만은 긴보5량으로 했다. 중도리 아래 설치한 대청 분합문(分閤門)은 헛기둥을 세우고 매달았기 때문에 아무때나 떼어내면 큰 공간을 만들 수 있다. 이와 같이 가로로 놓여지는 방들은 5량으로 처리했지만 세로로 나열되는 방들은 모두 맞걸이 3량으로 결구(結構)했다. 댓돌은 면을 노출시킨 정다듬가공 화강암이며 사랑채는 두벌대(2벌대), 안채는 외벌대(큰한자)의 큼직하고 높은 기단이다. 초석(礎石)은 높은 주초이고 네모기둥이다. 도리는 납도리인데 종도리에는 장혀와 헛창방을 받치며 그 사이에 소로를 끼우는 후기적 수법을 쓰고 있다. 대공은 판대공으로 높은 사다리꼴인데 여러개의 토막판자를 겹치고 있다. 구조·기법은 정성을 들여 잘 다듬어진 우수한 것이다. 대청앞도 4분합문(分閤門)을 달고 안방과 대청, 사랑방과 사랑대청에도 각각 분합문(分閤門)을 달아서 여름에는 개방해 놓고 시원하게 공간을 이용했을 것이다.
바깥마당의 정원시설은 이미 파괴되었으므로 크게 인상 깊은 것은 없다. 서쪽으로 아카시아 나무를 울창하게 심어 시야를 차단하며 작은사랑 앞에는 이 곳이 선비의 공부방답게 향나무 한 그루가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한다. 안마당에는 중앙에 숫기왓장을 돌려서 화단을 조성하고 사철나무와 분도화등의 나무를 심어 사랑채와 안채와의 직접적인 시선을 차단하였다. 안마당 한쪽에는 네모꼴 반석(盤石)을 깔아 징검다리를 만들고 있는데 건축 당시의 조형으로는 생각되지 않는다. 뒤뜰은 각종 나무가 울창한 뒷산과 연결되는데 뒷산의 아름다운 자연을 집안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특히 동쪽 둔덕에 심어진 소나무는 고색 창연한 집의 운치를 더해준다.
이 집은 1753년(영조 29년)에 지은 것을 상량문을 통해 알 수 있다. 건축기법으로 미루어 그 이전으로 추정되나 종도리 아래 헛창방과 소로를 끼운 점은 19세기 후반의 수법으로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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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사랑채에서 본 안채 ![](https://t1.daumcdn.net/cfile/blog/99A9333B5DF1F0E62E)
대청 앞에서 바라본 안마당 ![](https://t1.daumcdn.net/cfile/blog/9980BE3B5DF1F0E730)
안채에서 작은사랑채로 통하는 중문 ![](https://t1.daumcdn.net/cfile/blog/99DB8D3B5DF1F0E802)
작은사랑채 ![](https://t1.daumcdn.net/cfile/blog/993B093B5DF1F0EA33)
전경 ![](https://t1.daumcdn.net/cfile/blog/99E3503B5DF1F0EB36)
뒷산에서 바라본 전경 ![](https://t1.daumcdn.net/cfile/blog/9907683B5DF1F0EC34)
배면 ![](https://t1.daumcdn.net/cfile/blog/9921D6375DF1F0ED2E)
사랑채 누마루 ![](https://t1.daumcdn.net/cfile/blog/997EB1375DF1F0EF35)
사랑채 마루 ![](https://t1.daumcdn.net/cfile/blog/997FA7375DF1F0F135)
사랑채 전경 ![](https://t1.daumcdn.net/cfile/blog/99E467375DF1F0F202)
사랑채 ![](https://t1.daumcdn.net/cfile/blog/99CB5F375DF1F0F303)
사잇문 ![](https://t1.daumcdn.net/cfile/blog/9971E7375DF1F0F42B)
안채 광 ![](https://t1.daumcdn.net/cfile/blog/99113A375DF1F0F52F)
안채전경1 ![](https://t1.daumcdn.net/cfile/blog/99D96B395DF1F0F635)
안채전경2 ![](https://t1.daumcdn.net/cfile/blog/99B8DF395DF1F0F72C)
전경1 ![](https://t1.daumcdn.net/cfile/blog/99B819395DF1F0F836)
전경2 ![](https://t1.daumcdn.net/cfile/blog/994FB0395DF1F0F926)
해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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