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10대 연산군(재위 1494∼1506)과 부인 거창 신씨의 무덤이다.
연산군은 성종의 큰 아들로 성종 7년(1476)에 태어나 1494년 왕위에 올랐다. 두번씩이나 사화를 일으키는 등 성품의 광폭함이 드러나자 진성대군을 왕으로 추대하는 중종반정이 일어나, 1506년 왕직을 박탈당하고 연산군으로 강봉되어 강화 교동으로 추방되었다가, 그 해 1506년에 죽었다. 부인 신씨가 연산군 무덤을 강화에서 현재의 이곳으로 옮겨 달라 청하여 옮기게 되었다.
무덤 주변에는 연산군의 딸과 사위의 무덤도 있으며, 혼유석·장명등·향로석 등 석물이 서 있다. 묘비석 앞면에는 ‘연산군지묘燕山君之墓’라 새겨 있고, 뒷면에는 ‘정덕팔년이월이십일장<正德八年二月二十日葬>’이라 새겨 있다.
전문설명
조선(朝鮮) 제10대(第10代) 연산군(燕山君)과 부인(夫人) 거창신씨(居昌愼氏)의 묘소(墓所)이다.
연산군(燕山君)은 성종(成宗)의 원자(元子)이며 동부인(同夫人)은 영의정(領議政) 거창부원군(居昌府院君) 신승선(愼承善)의 여(女)이다. 연산군의 휘(諱)는 융이며 성종(成宗) 7년 11월 6일에 탄생하여 동왕(同王) 14년(1483) 2월 6일에 세자(世子)로 책봉되었고 동(同) 25년(1494), 12월 29일 성종(成宗)이 창덕궁(昌德宮)에서 승하하자 즉위(卽位)하였다. 연산군은 그의 실정(失政)으로 인하여 중종반정(中宗反政)을 당하여 재위12년(在位12年)(1506) 9월에 폐왕(廢王)이 되고 연산군(燕山君)으로 강봉(降封)되어 강화(江華) 교동(喬洞)에 추방되었다가 그해 11월(중종원년(中宗元年)·1506)에 31세(歲)로 병사(病死)하였다.
중종(中宗) 7년(1512) 12월에 폐비(廢妃)된 부인(夫人) 신씨(愼氏)가 상언(上言)하여 묘(墓)를 강화(江華)에서 양주군(楊州郡) 해등면 원당리(현(現) 도봉구(道峰區) 방학동(放鶴洞))으로 이장(移葬)하기를 청하여 중종(中宗) 8년(1513) 2월 20일 왕자군(王子君)의 예(禮)로 이장(移葬)하고 양주군(楊州郡) 관원(官員)으로 하여금 치제(致祭)하게 하였다. 이 묘역(墓域)은 능성구씨(綾城具氏)의 선영(先塋)인데 연산군의 사위와 딸의 묘(墓)가 있다.
묘(墓)의 시설은 대군(大君)의 예우(禮遇)로 장례하여 봉분(封墳) 곡장(曲墻) 혼유석(魂遊石) 장명등(長明燈) 향로석(香爐石) 재실(齋室)이 갖추어져 있으나 병풍석(屛風石) 석양(石羊) 석마(石馬) 사초지(莎草地) 문인석(文人石) 등은 세우지 아니하였다.
연산군묘 연산군묘 연산군묘 연산군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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