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상사와 백장암 약수암을 포함한 일대로서 지리산 북쪽 기슭에 있다.
실상사는 신라 흥덕왕 3년(828)에 증각대사 홍천이 창건하였으며, 제자 수철대사와 편운대사도 이 절에서 배출되었다. 조선시대 정유재란 때 화재를 입어 200여 년 동안 폐허로 남아 있었고, 승려들은 백장암에서 머물며 그 명맥을 이어왔다. 숙종 때 다시 지었고 고종 때 화재를 입어 작게 지은 것이 현재의 모습이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보광전·약사전·명부전 등이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백장암 3층석탑(국보 제10호)·실상사 수철화상능가보월탑(보물 제33호)과 탑비(보물 제34호)·실상사 석등(보물 제35호)·부도(보물 제36호)·실상사 3층석탑(보물 제37호)·증각대사응료탑(보물 제38호)과 그 탑비(보물 제39호)·백장암 석등(보물 제40호)·실상사 철제여래좌상(보물 제41호)·백장암 청동은입사향로(보물 제420호)·약수암 목조탱화(보물 제421호) 등이 있다.
중요문화재를 많이 간직하고 있으며, 절 입구에는 상원주장군(중요민속자료 제15호)을 비롯한 석장승들이 있다.
전문설명
지리산 북쪽 기슭에 자리잡은 이 절은 신라< 新羅 >의 증각대사< 證覺大師 > 홍척< 洪陟 >이 흥덕왕< 興德王 > 3년(828)에 창건< 創建 >하였다. 헌덕왕< 憲德王 > 때 당< 唐 >나라에 유학하였던 홍척이 선종< 禪宗 >의 도< 道 >를 깨치고 돌아오자 왕이 국승< 國僧 >으로 초빙< 招聘 >하여 설법< 說法 >을 듣고 선종을 받아들이며 선종구산< 禪宗九山 > 중 처음으로 이 절을 세우게 되었다. 제자< 弟子 >인 수철대사< 秀澈大師 >와 편운대사< 片雲大師 > 또한 여기서 배출되어 이 무렵 선종은 성황< 盛況 >을 이루었다. 조선시대< 朝鮮時代 >에 정유재란< 丁酉再亂 >으로 소실< 燒失 >된 것을 숙종< 肅宗 > 때 대소< 大小 > 36동< 棟 >의 건물로 지었으나 고종< 高宗 > 때에 화재를 입어 소규모로 재건< 再建 >하여 현재에 이른 것이다. 경내에는 동북향< 東北向 >을 한 보광전< 普光殿 >이 있고 그 앞 양쪽에 창건 당시의 것으로 보이는 삼층석탑 < 三層石塔 > 2기와 약사전< 藥師殿 >, 명부전< 冥府殿 >, 요사체< 寮舍體 > 등이 있다. 특히 이 절에는 국보 제10호 백장암< 百丈庵 > 삼층석탑 < 三層石塔 >을 비롯하여 수철화상< 秀澈和尙 > 능가보월탑 < 楞伽寶月塔 >과 탑비 < 塔碑 >(보물 제33, 제34호), 실상사 석등< 石燈 >(보물 제35호), 부도< 浮屠 >(보물 제36호), 삼층석탑 2기(보물 제37호), 증각대사< 證覺大師 > 응료탑 < 凝蓼塔 >과 탑비 (보물 제38, 제39호), 백장암< 百丈庵 > 석등 < 石燈 >(보물 제40호), 철제여래좌상 < 鐵製如來坐像 >(보물 제41호), 백장암 청동은입사향로 < 靑銅銀入絲香爐 >(보물 제420호), 약수암< 藥水庵 > 목조탱화 < 木彫幀畵 >(보물 제421호) 외에도 좋은 민속자료< 民俗資料 >인 석장승 < 石長생 > 등 많은 문화재< 文化財 >가 보존되어 있다.
실상사일원 극락전 내부 극락전 현판 극락전 명부전 내부1 명부전 내부2 명부전 내부3 명부전 현판 명부전 보광전 현판 보광전 수철화상탑1 수철화상탑2 수철화상탑3 수철화상탑4 실상사 동종 실상사 보광전 법당 실상사 보광전 탱화 약사전 입구 전경 전경 증각대사탑비1 증각대사탑비2 증각대사탑비3 철조여래좌상1 철조여래좌상2 철조여래좌상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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