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사적

사적 제307호 보령 성주사지

오늘의 쉼터 2008. 2. 21. 21:00



종     목 사적  제307호
명     칭보령 성주사지 (保寧 聖住寺址)
분     류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불교/ 사찰
수량/면적 29,084㎡
지 정 일 1984.08.13
소 재 지 충남 보령시  성주면 성주리 72
시     대통일신라
소 유 자국유,사유
관 리 자보령시

일반설명

보령 성주산 남쪽 기슭에 있는 9산선문의 하나인 성주사가 있던 자리이다.

백제 법왕 때 처음 지어졌는데 당시에는 오합사(烏合寺)라고 부르다가, 신라 문성왕때 당나라에서 돌아온 낭혜화상이 절을 크게 중창하면서 성주사라고 하였다. 산골에 자리잡고 있는 절이지만 통일신라시대의 다른 절과는 달리 평지에 자리하는 가람의 형식을 택하였다.

절터에는 남에서부터 차례로 중문처, 석등, 5층석탑(보물 제19호), 금당건물과 그뒤에 동서로 나란히 서있는 동삼층석탑, 중앙 3층석탑(보물 제20호), 서 3층석탑(보물 제47호)가 있고 그 뒤에 강당이 자리하고 있다. 최치원의 사산비문 중 하나인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국보 제8호)도 절의 북서쪽에 있다.

발굴조사결과 건물의 초석, 통일신라시대의 흙으로 빚은 불상의 머리, 백제·통일신라·고려시대의 기와 등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성주사는 당대 최대의 사찰이었으며, 최치원이 쓴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는 신라 석비 중 가장 큰 작품으로 매우 중요한 학술적 가치를 지닌다.


전문설명


이 절은 백제< 百濟 >의 법왕< 法王 > 때에 초창< 初創 >된 사찰로서 처음에는 오합사< 烏合寺 >라 부르다가 신라< 新羅 > 문성왕< 文聖王 > 때에 당< 唐 >나라에서 돌아온 낭혜화상< 郎慧和尙 >이 가람을 크게 중창하면서 성주사< 聖住寺 >라 하였다. 성주사는 선문구산< 禪門九山 >의 하나인 대가람으로 주의의 아름다운 산수< 山水 >와 어울려 웅장했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이곳에는 최치원< 崔致遠 >의 유명한 사산비< 四山碑 >의 하나인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 郎慧和尙白月보光塔碑 >와 석등 < 石燈 >과 오층석탑 < 五層石塔 > 그리고 삼층석탑< 三層石塔 > 세 개가 일렬로 배치되어 있다. 1968년과 1974년 동국대학교< 東國大學校 > 박물관< 博物館 >에서 발굴< 發掘 >을 실시하여 금당지< 金堂址 >, 삼천불전지< 三千佛殿址 >, 회랑지< 廻廊址 >, 중문지< 中門址 > 등의 건물지가 드러났으며 통일신라기< 統一新羅期 >의 소조불두< 塑造佛頭 >와 백제< 百濟 >·통일신라< 統一新羅 >·고려시대< 高麗時代 >의 와당류< 瓦當類 >가 출토되었다.




성주사지

성주사지

석불입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