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6년 로베트(Robert.A.P) 신부가 경상도 지역에 천주교를 전파하다가 1897년에 현재의 계산동 성당 자리에 있던 초가집를 임시 성당으로 사용하였다. 1899년에 한식 목조 십자형의 성당을 지었으나, 다음 해에 화재로 불 타 1902년에 현재의 성당을 짓게 되었다.
설계는 로베트 신부가 하고 중국인이 공사를 맡았다고 한다. 당시 대구에서는 처음 세워진 서양식 건물로, 입구에 두 개의 종각에 우뚝 솟아 ‘뾰족집’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성당건축은 고딕양식이 가미된 로마네스크 양식이며, 화강석 기단 위에 붉은 벽돌을 쌓고 검은 벽돌로 고딕적인 장식을 하였다.
대구 지방에서 유일한 1900년대 성당 건축물로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전문설명
이 성당은 본래 초가삼간(草家三間)을 성당으로 사용하다가 십자형 목조성당을 1899년 준공하였으나 1900년 화재로 소실되어, 1902년에 현재의 성당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건립은 초대 본당신부인 Achille paule Roberto(1853~1922)가 설계하고 중국인이 시공을 맡아 하였다고 한다. 1918년 12월 24일에는 증축낙성식이 있었는데 이때의 시공자는 중국인 강의관(姜義寬)이라고 한다.
평면은 라틴십자형(Latin cross)으로 본랑(Nave)과 양측랑(Ansle)으로, 네이브의 폭은 아일폭의 2배를 이루고 있다. 네이브 천장은 뾰죽아취형의 배럴볼트(Barrel Vault)이고, 아일천장은 원통형볼트로 되어 있다. 네이브와 아일 경계부는 족주(簇柱,clustered pier)를 두고, 반원아취로 마감하였다. 후진(Apse)은 5각형이고 반원아취의 아케이드(Arcade)를 형성하고 있다. 천장과 벽체는 프라스터로 마감하여 이의 흰색과 족주, 아취, 리브, 창틀 등의 흑벽돌색은 좋은 대조를 이루어 더한층 아름답다. 서측 정면 양측에는 2개의 종탑을 두었는데 이 종탑부에는 각각 8각의 첨탑(尖塔)을 두어 마무리하였다. 화강석쌓기의 기초부위에 흑색벽돌과 붉은벽돌로 벽체를 쌓고, 후렛 버트레스(Flat buttress)를 창들 사이에 등간격으로 두었다. 정면 중앙의 12장 꽃잎장식으로 이루어진 원화창(圓花窓)과 좌우 트란셉트(Transept) 의 원화창은 고딕적인 맛을 더해주고 있다.
한가지 부언할 것은 제대 뒤쪽에「루르드 성모동굴」을 입체적으로 구성한 것은 한국내 성당중에서 귀중한 실예라고 한다.
대구 계산동성당 대구 계산동성당 계산동성당전경 계산동 성당 계산동 성당십자가 밑에서 본 계산동 성당 성당 문 성당 입구 신호등 건너편에서 본 계산동성당 옆건물 위에서 본 성당 측면 후면 대구계산동성당 대구계산동성당 대구계산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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