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사적

사적 제273호 부산 복천동 고분군

오늘의 쉼터 2008. 2. 21. 15:23


종     목 사적  제273호
명     칭부산 복천동 고분군 (釜山 福泉洞 古墳群)
분     류 유적건조물 / 무덤/ 무덤/ 고분군
수량/면적 45,576㎡
지 정 일 1981.06.09
소 재 지 부산 동래구  복천동 일원
시     대가야
소 유 자국유
관 리 자부산시(부산시립박물관)

일반설명

부산 복천동 일대의 구릉 위에 있는 가야 때 무덤들이다. 여러 차례에 걸친 발굴조사로 40여 기의 무덤이 확인되었으나, 대부분의 무덤은 아직도 땅 밑에 남아있다.

무덤의 형태는 땅을 파서 넓은 방을 만들고 나무관을 넣은 덧널무덤(토광목곽묘), 땅속에 네모난 돌로 벽을 쌓고 천장을 덮어 만든 구덩이식 돌방무덤(수혈식석실묘), 땅속에 시체를 바로 묻는 널무덤을 비롯해 여러 가지 형식의 무덤들이 있다. 이 무덤들에는 도굴되지 않은 큰 무덤이 많아 2000점 이상의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굽다리접시(고배), 목항아리(장경호), 토제등잔을 비롯한 토기류는 4∼5세기 낙동강 하류지역의 특징적인 토기들이다. 철제 갑옷·투구류도 다양하게 출토되었다. 특히 4호 무덤에서 나온 단갑은 우리나라에서 처음 발견된 갑옷이다. 11호에서 출토된 괘갑은 부속장식까지 완전하게 갖춘상태로 발견되었는데 이런 완제품은 우리나라에서 처음 발견되는 것이다. 10호 무덤에서 발견된 말갖춤(마구)는 완전히 갖추어진 실전용으로 처음 발견되었다. 이러한 갑옷·투구류는 고구려 고분벽화에 그려져 있는 것과 같다.

복천동 무덤에서는 새로운 무덤양식을 발견하여 무덤의 변천과 흐름 연구에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해 주고 있다.


전문설명


이곳 구릉지대< 丘陵地帶 > 전체에 마련되어 있는 이 복천동< 福泉洞 > 고분군< 古墳群 >은 동아대학교< 東亞大學校 > 박물관< 博物館 >에 의해 부분적인 발굴 조사가 이루어져 무덤의 존재를 알고 있었으나, 1980년 이 일대의 불량 주택을 헐고 새로운 주택지로 만들기 위해 부산대학교< 釜山大學校 > 박물관< 博物館 >에 의해 사전 조사가 이루어짐으로써 지하에 무덤이 집단적으로 남아 있음이 알려졌다. 발굴 조사 결과 크고 작은 무덤이 함께 존재하고 있고 무덤을 마련하는 방법도 여러 형태임을 알게 되었다. 무덤의 형태에는 땅을 파 넓은 광< 壙 >을 만들고 목곽< 木槨 >안에 목관< 木棺 >을 넣어 묻어 만든 토광< 土壙 > 목곽묘< 木槨墓 >, 땅속에 장방형< 長方形 >의 석축벽< 石築壁 >을 마련하고 그 위를 크고 넓적한 돌을 여러 개 덮어 천장< 天障 >을 만든 수혈식< 竪穴式 > 석실분< 石室墳 >, 땅속에 시체< 屍體 >를 바로 묻은 토광묘< 土壙墓 >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이들 고분에서 많은 수의 유물이 출토되었으며 특히 철제의 투구 및 갑옷< 甲胃 >, 말방울< 馬鈴 >, 말에 씌우는 투구< 馬胃 >, 금동관< 金銅冠 > 등 주요 유물이 수습되어 4∼5세기경에 이룩된 가야< 伽倻 > 문화의 이해와 아울러 당시 일본에 전달된 우리 문화를 밝히는데 매우 중요한 유적이 되고 있다.




동래 복천동 고분군 전경

동래 복천동고분군전경

청동제칠두령(21,22호분주곽)

삼엽환두대도,삼누환두대도(10,11호분주곽)

마주(10,11호분부곽)

22호분(21호분주곽)

11호분(10호의주곽)

정강이대기10,11호분주곽

각종토기(22호분)

금동관(10,11호분주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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