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사적

사적 제235호 보은 삼년산성

오늘의 쉼터 2008. 2. 20. 12:56


종     목 사적  제235호
명     칭보은 삼년산성 (報恩 三年山城)
분     류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성/ 성곽
수량/면적 229,958㎡
지 정 일 1973.05.25
소 재 지 충북 보은군  보은읍 어암리 산1-1
시     대삼국시대
소 유 자국유,사유
관 리 자보은군

일반설명

삼년산성은 돌로 쌓은 산성으로 신라 자비왕 13년(470)에 쌓았으며, 소지왕 8년(486)에 고쳐 세웠다.

『삼국사기』에는 성을 쌓는데 3년이 걸렸기 때문에 삼년산성이라 부른다고 기록되어 있고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오항산성으로,『신증동국여지승람』,『충청도읍지』에는 오정산성으로 기록되어 있다.

성의 둘레는 약 1,800m이고 성벽은 납작한 돌을 이용해서 한 층은 가로 쌓기를 하고, 한 층은 세로 쌓기를 하여 튼튼하며, 성벽의 높이는 지형에 따라 다르다. 남쪽과 북쪽은 안팎을 모두 돌을 이용하여 쌓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으며, 문터는 4곳에 있으나 모두 그 형식이 다르다. 성내에는 연못터와 우물터가 있고 주위 암벽에는 글이 새겨 있다. 삼국시대에서 고려·조선시대까지의 토기조각과 각종 유물이 발견되어 성을 오랫동안 이용했음을 알 수 있다.

5세기 후반 신라의 성 쌓는 기술을 대표하는 산성으로 주변에는 수 천기의 무덤들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돌을 이용하여 쌓은 대표적인 산성으로 평가되는 곳이다.


전문설명


삼년산성은 신라< 新羅 > 자비마립간< 慈悲麻立干 > 13년(470) 축성< 築城 >을 시작한 지 3년 만에 완성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그후 소지< 炤知 >마립간 8년(486)에 실죽< 實竹 >이 3천 명의 인부를 징발해 개축< 改築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신라가 서북지방으로 세력을 확장하는데 가장 중요한 전초< 前哨 > 기지였다고 생각되고 있으며, 삼국통일< 三國統一 > 전쟁 때 태종< 太宗 > 무열왕< 武烈王 >(645∼661, 재위)이 당< 唐 >나라 사신 왕문도< 王文度 >를 이곳에서 맞이하기도 하였다. 고려< 高麗 > 태조< 太祖 > 왕건< 王建 >(918∼943, 재위)은 이 성을 점령하려다 크게 패하였던 때가 있었던 난공불락의 요새이다. 성벽< 城壁 >은 납작한 돌로 내외협축< 內外夾築 >을 하여 우리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석축산성< 石築山城 >으로 평가된다. 성의 둘레는 약 1.7km이고 성벽의 높이는 13m, 폭은 8∼10m에 이른다. 이 성에는 서문< 西門 >·북문< 北門 >·동문터< 同門址 >가 있고, 특히 성벽의 군데군데에 곡성< 曲城 >이 있어 우리나라 고대< 古代 > 축성법< 築城法 > 연구< 硏究 >에 매우 중요시되고 있다. 성내에는 아미지< 峨眉池 >란 커다란 연못이 있었고, 성 밖의 산능선에는 수많은 고분군< 古墳群 >이 있어 유서깊은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삼년산성

삼년산성근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