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신이 압량주 군주로 있을 당시 군사 훈련장이었다고 전해오는 유적이다. 압량리, 내리, 선화리, 두룩산 유적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야트막한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유적은 서북쪽의 구릉지대에 높은 대를 쌓은 고대식 광장과 동남쪽에는 무덤처럼 흙을 쌓아올려 높은 대를 만든 토축 고대가 연결되어 있다. 고대식 광장은 거의 원형이며 평탄한 넓은 장소를 광장으로 하고있다. 광장은 병사들이 무술을 익히고 심신을 연마하던 장소로 보이며 토축 고대는 장군의 지휘장소로 보인다.
자연구릉상에 흙을 쌓아올려서 마치 성처럼 보이지만 성으로 보기에는 규모가 작으며, 윗면이 평탄한 광장으로 되어있는 것으로 보아 군사훈련장으로 보여진다. 다만, 토성을 훈련장으로 이용하기 위해 고쳐 쌓았을 가능성도 있다.
전문설명
삼국시대 신라 특히 김유신(金庾信)이 압량주 군주로 있을 당시의 군사 훈련장(訓鍊場)이었다는 구전(口傳)을 갖고 있는 3곳의 토성모양의 축조물을 합하여 압량유적이라 한다. 3곳 유적은 행정구역상 각각 경산군 압량면 압량리와 내리, 그리고 진량면 선화리에 위치하는데, 서로 1.2∼3.2Km 떨어져 3각형의 배치상을 보이고 있다.
압량리 유적은 압량리의 중심부 구릉상에 있고, 이곳에서 동쪽으로 1.2km 떨어져 내리 유적이 있고, 다시 압량리 유적에서 동북쪽으로 3.2km떨어져 선화리 유적이 있다. (내리 유적에서 선화리 유적 거리는 2.8km임) 이 3 유적이 입지한 지역은 금호강 이남의 너른 압량벌의 중심지대로 각각 압량벌을 조망할 수 있는 야트막한 구릉 선단부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 3유적 입지의 공통점이다.
먼저, 압량리 유적은 얕은 구릉 위에 높이 7m로 토축하고 윗면을 평탄하게 원형 광장을 축조한 것으로 광장의 크기는 지름이 대략 85km, 둘레가 300m 가량 된다. 이 광장의 동남쪽에 치우쳐 높이 10m의 외견상 고총고분 모양의 토루가 있는데 윗면이 지름 11m의 원형 평탄면을 이루고 있어, 이 지역 구전대로 장대(將臺)기능의 토루로 보인다.
내리 유적은 내리 뒷편의 구릉 정상부에 자리잡고 있는데 형태와 규모가 압량리 유적과 비슷하다. 이 유적은 구릉 자연면에 약간의 토축으로 지금 80m, 둘레 270m 광장을 마련한 것으로, 이 광장의 동남쪽에 높이 15m 가량의 토루를 쌓았는데 토루의 동남부분이 크게 파괴되어 토루의 모습을 잃고 있다.
선화리 유적 역시 구릉 말단부에 높이 10m 토축의 원형광장(지름 80m)을 구축하고 그 북쪽에 치우쳐 높이 2m, 윗면지름 13m의 토루를 쌓고 있다.
이 3유적은 자연구릉상에 얼마간 토축하여 외견상 토성처럼 보이지만 토성으로 보기에는 소규모이고 또 윗면이 평탄하여 광장으로 되어 있고 또 모두 광장 한쪽에 치우쳐 토루가 있는 점에서 이 지역 구전처럼 장대(將臺)가 있는 군사훈련장으로 추정함이 온당할듯 하다. 그리고 이것은 김유신이 백제군의 공격이 급박할 무렵인 7세기 중엽경 압량주 군주로 있었던 것을 고려하면 신라의 군사훈련장이라는 구전이 신빙성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이 유적이 군사훈련장이 확실하다 하더라도 그 이전의 토성을 이용하여 훈련장으로 개축(改築)하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압량유적전경(제1연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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