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사적

사적 제172호 경주 오릉

오늘의 쉼터 2008. 2. 18. 21:13


종     목 사적  제172호
명     칭경주 오릉 (慶州 五陵)
분     류 유적건조물 / 무덤/ 왕실무덤/ 고대
수량/면적 89,550㎡
지 정 일 1969.08.27
소 재 지 경북 경주시  탑동 67
시     대신라
소 유 자국유
관 리 자경주시

일반설명

경주시내 평지 서남쪽에 위치한 4기의 봉토무덤과 1기의 원형무덤이다.

『삼국사기』에는 신라 시조 박혁거세와 제2대 남해왕, 제3대 유리왕, 제5대 파사왕 등 신라 초기 4명의 박씨 임금과 혁거세의 왕후인 알영왕비 등 5명의 무덤이라 되어 있다. 『삼국유사』에는 혁거세왕이 임금자리에 있은지 62년 만에 하늘로 올라갔다가 7일 후에 몸이 흩어져 땅에 떨어지자 왕비도 따라 죽으니, 사람들이 같이 묻으려고 했으나 큰 뱀이 방해해서 몸의 다섯부분을 각각 묻었는데, 그것을 오릉(五陵) 또는 사릉(蛇陵)이라 했다고 한다.

내부구조는 알 수 없으나 무덤의 겉모습은 경주시내에 있는 다른 삼국시대 신라무덤과 같이 둥글게 흙을 쌓아올린 원형 봉토무덤으로, 1호 무덤이 높이 10m로 가장 크며, 2호 무덤은 표주박형으로 봉분이 두 개인 2인용 무덤이다. 이러한 대형 원형 봉토무덤은 신라에서는 4세기 이후 등장하는 것으로 박혁거세 당시의 무덤 형식은 아니다.


전문설명


신라의 시조왕릉(始祖王陵)으로 전하는 오릉(五陵)은 경주시내 평지 서남쪽에 위치한 봉토분(封土墳)으로 4기(基)는 원형분(圓形墳)이나 1기는 표형쌍분(瓢形雙墳)으로 되어 있다.

제1릉(第1陵)은 가장 남쪽에 있으며 높이 약 10m로 5기(基) 가운데 가장 높고 크다. 제2릉(第2陵)은 제1릉의 동북쪽에 있으며 높이는 약 9m이다. 제3릉(第3陵)은 제2릉의 동쪽에 있으며, 높이는 약 7.2m로 표형쌍분(瓢形雙墳)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이는 원형분(圓形墳) 2기(二基)가 합쳐진 것이다. 제4릉(第4陵)은 제2릉의 서쪽에 있으며 높이는 약 3.6m이다. 제5릉(第5陵)은 제4릉의 동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높이는 약 1.8m이다.

이와 같이 5기(基) 중 1기(基)는 표형쌍분(瓢形雙墳)으로 2인용 무덤이기 때문에 오릉(五陵)의 실제 피장자는 6인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또 이와 같은 대형(大形)의 원형봉토분(圓形封土墳)은 신라에서는 4세기 이후에 출현하는 것으로 후세(後世) 수축(修築)이었으면 몰라도 혁거세왕(赫居世王) 당시의 고분 형식은 아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오릉(五陵)을 사릉(蛇陵)이라 했는데, 1대 혁거세왕(赫居世王)·남해왕(南解王)·유리왕(儒理王)·파사왕(破娑王) 등 박씨 사왕(朴氏 四王)을 사릉원내(蛇陵園內)에 장사지냈다고 되어 있고,《삼국사절요(三國史節要)》에서는 혁거세왕(赫居世王)과 알영부인(閼英夫人)을 합장(合葬)하려 하자 뱀의 이변(異變)이 있어 각각 장사지냈다고 하였다. 그러나 《삼국유사(三國遺事)》에서는 이와 다른 기록을 하고 있는데, 혁거세왕(赫居世王)이 재위 62년만에 승천하였다가 그후 7일만에 유체(遺體)가 흩어져 땅에 떨어졌고 왕후(王后)도 따라 승하하니 사람들이 합장(合葬)하고자 하였으나 큰 뱀이 방해하여 오체(五體)를 각각 장사지냈으므로 오릉(五陵) 또는 사릉(蛇陵)이라 하며 담암사(曇巖寺) 북릉(北陵)이 그것이라고 하였다.




경주 오릉

경주 오릉 제1릉

숭덕전

경주 오릉 전경

오릉과주변지형원경

오릉과주변지형원경

경주 오릉 기념비

비각 전면

비각

숭덕전 전경

숭의문

신라시조왕비탄강유지비

알영정 우물터

경주 오릉1

경주 오릉2

경주 오릉3

경주 오릉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