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사적

사적 제171호 서울 고종 어극 40년 칭경기념비

오늘의 쉼터 2008. 2. 18. 21:09


종     목 사적  제171호
명     칭서울 고종 어극 40년 칭경기념비 (서울 高宗 御極 40年 稱慶紀念碑)
분     류 유적건조물 / 인물사건/ 역사사건/ 역사사건
수량/면적 628.09㎡
지 정 일 1969.07.18
소 재 지 서울 종로구  세종로 142-3
시     대대한제국시대
소 유 자국유
관 리 자종로구

일반설명

고종(재위 1863∼1907)이 왕이 된지 40주년과 그의 나이 51세에 기로소에 들어 간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으로 비를 보호하는 비전(碑殿)안에 있다. 또한 이 비석에는 고종이 처음으로 나라 이름을 대한제국으로 고치고 황제의 칭호를 사용한 것을 기념하는 의미도 담겨 있다.

기로소(耆老所)는 정2품 이상의 문관 중 70세 이상 된 사람을 우대하는 제도로, 고려 때의 기영회를 계승한 관제이다. 조선 태조가 60세 되던 해에 친히 기영회에 들어갔는데, 이후 왕들이 오래살지 못해 기로소에 들어가는 이가 없자, 숙종과 영조 등이 60세를 바라보는 나이라 하여 미리 앞당겨 들어간 것을 본받아 고종은 신하들의 건의에 따라 51세에 들어가게 되었다.

비석은 귀부, 비몸, 이수로 구성되어 있는데, 비몸 앞면에는 황태자인 순종의 글씨가 있으며, 비문은 윤용선이 짓고 민병석이 썼다. 비를 보호하기 위한 건물은 앞면 3칸·옆면 3칸의 정자(停子)형 건물로 건물 기단 둘레에 돌난간을 설치하였다. 이 건물의 남쪽에 설치한 문은 돌기둥을 세우고 철문을 달았는데, 문의 가운데칸에는 무지개 모양의 돌을 얹어 ‘만세문’이라는 이름을 새겨 넣었다. 이 문은 일제시대 일본인이 떼어 가서 대문으로 사용하던 것을 광복 이후 찾아와 복원한 것이다.

비를 보호하고 있는 비전은 20세기초 전통적인 건축양식의 틀이 해체되기 직전에 세워진 건물로 당시 이러한 유형의 건물 중 대단히 아름다운 건물이며, 이 시기에 세워진 덕수궁의 다른 여러 건물과 함께 중요한 연구자료가 된다.


전문설명


고종(高宗)이 즉위(卽位)한지 40년이 되고 보령(寶齡)이 51세가 되던 해를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비(碑)이다. 비석의 형태는 귀부(龜趺), 비신(碑身), 이수로 구성되어 있다.

비신(碑身) 맨 위쪽의 전액(篆額)은 '대한제국이황제보령육순어극사십년칭경기념비송(大韓帝國李皇帝寶齡六旬御極四十年稱慶紀念碑頌)' 이라고 사면(四面)에 둘러 새겼는데, 황태자(皇太子)(뒤에 순종(純宗))의 글씨이며, 비문(碑文)은 의정 윤용선(議政 尹容善)이 짓고 글씨는 육군부장 민병석(陸軍副將 閔丙奭)이 썼다. 내용은 서(序)와 송(頌)의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비문(碑文)의 내용은 "원구에서 하늘에 제사 올리고 황제(皇帝)가 되었으며 나라 이름을 '대한(大韓)'이라 하고 연호를 '광무(光武)'라 한 사실과 1902년이 황제(皇帝)가 등극한지 40년이자 보령이 망육순(51세)이 되는 해이므로 기로소(耆老所)에 입사(入社)한 사실을 기념하여 비석을 세운다" 하였다.

이 비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즉위(卽位) 40년이 되는 해요. 대한제국(大韓帝國)으로 국호를 고치고 황제(皇帝)라 칭하며 기로소(耆老所)에 입사(入社)한 것이다. 기로소(耆老所)는 중국에서는 당송대(唐宋代)부터 있었으며, 우리나라는 고려때 최당(崔당)이 조직한 기영회(耆英會)가 있었는데 조선시대(朝鮮時代)에는 이 기영회(耆英會)를 관제로 계승하였다. 조선(朝鮮)의 태조(太祖)는 1394년 60세가 되던 해에 친히 기영회(耆英會)에 들어갔다. 이는 정이품(正二品) 이상의 문관(文官)으로 70세 이상된 사람을 우대한 제도였다. 태조(太祖) 이후의 왕(王)은 모두 빨리 세상을 떠나서 기로소(耆老所)에 입사(入社)한 이가 없다가 숙종(肅宗)이 59세(歲) 되던 해에 곧 60이 된다 하여 앞당겨 입사(入社)하고 영조(英祖)는 51세에 60을 바라보는 나이라 하여 입사(入社)하였다. 고종(高宗)도 영조(英祖)의 고사(故事)에 의하여 신하들의 건의를 받아들여 기로소(耆老所)에 입사하게 된 것이다.

이 비(碑)를 보호하기 위한 '기념비전(記念碑殿)'이 있다. 비전(碑殿)은 이중(二重)기단 위에 서 있는데 정면 3칸, 측면 3칸의 정방형(正方形) 건물이다. 기둥은 팔각형의 높은 초석 위에 서 있으며 삼출목(三出目)의 공포를 가진 다포식(多包式) 건물로 4모지붕을 하고 있다. 비각건물(碑閣建物)인데 '기념비전(記念碑殿)'이라 현판을 달아 전자(殿字)를 붙여서 건물의 격을 높였다. 정자형 건물인데 추녀와 사래가 시원하게 빠져나가서 조선 후기 이런 유형의 건축물 중 대단히 아름다운 건물이다. 비전(碑殿)의 기단 둘레에는 돌난간을 설치하였는데, 연꽃잎을 새긴 동자기둥 위에 받침돌을 설치하고 방위 따라 사신(四神)과 12지신상(支神像)을 돌로 조각하여 배치하였다. 남쪽에는 말과 주작과 해태가, 동쪽에는 토끼와 용이, 서쪽에는 닭과 호랑이가, 북쪽에는 쥐와 거북과 해태가 배치되어 있다. 비전 남쪽에 둔 삼문은 돌로 기둥을 세우고 철문을 달았다. 문기둥에는 앞면에 당초문을 새기고 위쪽에 들짐승을 하나씩 앉혔다. 가운데 문 위에는 무지개 모양의 돌을 얹고 감실을 파고 '만세문(萬歲門)'이라는 이름을 새겨넣었다. 만세문의 편액 위에 난간을 받치는 연잎 모양의 동자기둥을 본떠 만든 대좌 위에 주작(朱雀)을 조각하여 놓았다. 이 비전의 조각물들은 경복궁 근정전(景福宮 勤政殿)과 같이 음양오행사상에 의한 방위신의 보호를 받고 있는 것이다 '기념비전(記念碑殿)' 앞에는 도로원표(道路元標)가 있어 이곳에서 전국의 거리를 재고 있다.




기념비석

비각전면

비각주변상황

기념비전 편액

난간석

만세문 상단

만세문 우측

만세문

만세문과 기념비각

전경

측면 전경

고종즉위40년칭경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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