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안지역은 삼한시대에 아라가야가 있던 곳으로 이 지역에 있는 무덤들은 5∼6세기경에 만들어졌다.
도항리고분군(사적 제84호)과는 같은 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행정구역상으로 도항리고분군과 말산리고분군으로 나누어진다. 그러나 대부분은 도항리고분군에 속하며, 이 고분군에 속하는 무덤은 1·4·9·10호의 4기 밖에 되지 않는다.
이 가운데 높이 9.7m, 지름 39.39m의 4호무덤은 가야읍 아라공원 안에 있는 무덤 가운데 가장 큰 무덤으로 1917년에 발굴조사되었다. 내부구조는 장방형의 반지하식 돌방을 가진 구덩식돌방무덤(수혈식석실묘)이다.
발견된 유물 가운데 수레바퀴 모양의 토기와 새모양 토기·말띠드리개가 특징적이며, 그밖에도 각종 토기류와 철제무기, 말장식류, 사람의 뼈 등이 발견되어 이 시대에 함안지역 문화를 밝혀줄 중요한 유적지로 평가된다.
※역사성과 특성을 고려한 인접지역 고분군 통합 재지정 : 사적 515호 '함안 말이산 고분군'
전문설명
가야읍 일대의 낮은 평야지대에는 주변의 산지에서 뻗어 내린 낮은 구릉이 부채살처럼 펼쳐지며, 여항산으로부터 해발 200여미터 안팎의 봉우리들로 이어지는 능선의 말단부에 놓이는 것이 도항리-말산리 능선이다.
말산리(末山里)라는 지명도 능선의 말단부 있는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는데, 함주지(咸州誌)에 말이산고분군이 있는 구릉의 동쪽에 있는 하산(下山)부락을 '말이산'이라 하고, 그 서쪽에 있는 우곡리(牛谷里)부락을 '서말이산(西末伊山)'이라고 한 것을 근거로 구릉에 있는 말산(末山)부락의 명칭을 '이(伊)'자가 탈락된 것으로 보고, '말이'(Mar-i)를 두((頭)-머리)와 같은 것으로 보아, 지명이 말이산(末伊山)이 된 것은 고분군이 있는 구릉을 높여 부른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해발 50미터 안팎의 도항리-말산리능선의 동쪽은 함안천의 측방침식으로 가파르나, 서쪽편은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8가닥의 짧은 능선으로 가지를 치며 뻗는데, 이 주능선과 8가닥의 짧은 능선 정상부 위에 5∼6세기대에 축조된 함안 아라가야의 대형봉토분이 배치되어 있는데, 같은 능선위에 밀접해 있는 이들 고분군은 행정구역상 도항리고분군과 말산리고분군으로 나누어진다.
함안군내 도항리-말산리의 고분군에 대한 조사는 일제강점기 이후 1995년까지 10차에 걸친 조사가 이루어졌다. 그에 관한 내용을 간추리면, 함주지(咸州誌) 고적 항목의 고총(古塚) 난에 '우곡 동쪽과 서쪽 언덕의 고총은 높이와 크기가 언덕과 같은 능이 40여개 있다. 옛날 국왕의 능이라고 전한다.(우곡동서구고총 고대여구릉자사십여 언전고국왕릉운(牛谷東西丘古塚 高大如丘陵者四十餘 諺傳古國王陵云))'고 한 것, 함안군청고적조사표(咸安郡廳古蹟調査表)에 가야면 말산리(3기), 도항리(33기), 신음리(9기), 가야리(3기), 대산면 장암리(1기)의 고분이 있는 것으로 확인된 것, 1917년에 이마니시 류(금서 룡(今西 龍))에 의한 지표조사와 지형측량을 통한 분포도 작성 그리고 45기의 봉토분을 지형에 따른 4군으로 나누면서 보존이 필요한 고분에 대해서 번호를 붙여 말이산구군((末伊山邱群)-1호∼39호), 도항리구군((道項邱群)-40호∼45호), 가야구군((伽倻邱群)-46호∼49호), 신음구군((新音邱群)-50호∼60호), 연산산성군(蓮山山城下群) 구분, 1981년에 함안군에서 실시한 고분정화사업과 고분의 기수(基數) 파악 및 번호 부여와 34호분(새번호 : 4호분), 1984년과 1986년 창원대학교박물관의 지표조사와 새번호부여 및 도항리 14-1호 14-2호분에 대한 발굴, 1991년의 창원문화재연구소에 의한 학술조사 및 보존, 정비사업을 위한 지표조사 과정에서 이루어진 암각화의 발견과 35호분 주변에 대한 정밀조사, 1992년에 있었던 창원문화재연구소에 의한 대형토광목곽묘와 목관묘 발굴 그리고 창원대학교박물관의 정밀지표조사, 이후 1992년부터 1995년에 이르는 창원문화재연구소의 4차례에 걸친 연차 발굴 등이다.
말산리 고분군은 도항리고분과 같은 구릉에 있는 새번호 1호, 4호, 9호, 10호분이다. 이 가운데 4호분은 현재 가야읍 아라공원내에 있는 외형이 가장 큰 무덤(옛 34호)으로, 1917년 발굴조사되었다. 4호분은 원형봉토분으로 봉토는 각이 진 냇돌이 섞인 흙으로 성토되었으며, 지름 39.39미터, 높이 9.7미터로 구릉내에서 최대형이다. 묘광은 장축을 N12°E로 지표하 1.2미터 정도까지 파서 암반층을 기반토한 장방형 반지하식 석실분이다. 석실은 판상할석을 뉘어서 쌓았고 틈새를 점토로 메웠다. 석실 벽에는 모두 5개의 작은 장방형 벽감을 설치하였는데 양쪽 장벽에 2개, 북쪽 단벽에 1개가 있다. 벽감은 등잔을 올려 놓아 무덤 내부를 밝히는 등감으로 여겨지고 있다. 벽에는 회칠을 하지 않았으나 못이 박혀 있는 것으로 보아 그림을 그려 놓은 커튼 형태의 채화장막을 드리웠던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석실의 바닥은 작은 할석을 깔았고, 관·곽을 두었던 흔적이 있었다. 석실의 천정은 길거나 넓적한 자연석 13매를 가공하여 덮고, 점토를 발라 틈을 메웠다. 4호분에서 출토된 유물은 고배, 차륜형토기, 압형토기, 기대 등의 토기류와 철도, 철촉, 철모, 철겸 등의 철제무기 및 행엽 안교 등의 마구류와 인골 등 160여점이다.
함안 말산리 고분군 함안 말산리 고분군 3호분 함안 말산리 고분군 4호분 함안말산리고분군 함안말산리고분군 함안말산리고분군전경 함안말산리고분군원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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