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조란 장구반주에 맞추어 다른 악기를 독주형태로 연주하는 것을 말하며, 4∼6개의 악장을 구분하여 느린 장단에서 빠른 장단 순서로 연주한다. 가야금으로 연주하는 산조를 가야금산조라 하고, 직접 가야금을 타면서 노래부르는 것을 가야금병창이라 한다.
모든 산조는 느린 장단으로 시작하여 차츰 빠른 장단으로 바뀌는데, 이는 듣는 사람을 서서히 긴장시키며 흥겨움을 끌어올리게 한다. 가야금산조는 4∼6개의 장단으로 짜여지는데, 진양조는 아주 느리고 서정적이며 중모리는 안정적이다. 중중모리는 흥취를 돋우며, 자진모리는 밝고 경쾌하다. 휘모리는 흥분과 급박감이 있다. 다른 악기의 산조에 비해 가야금산조는 가야금의 악기적인 특성으로 인해 여러 명인들이 다양한 음악유파를 형성할 수 있었다.
가야금병창은 단가나 판소리 중 한 대목을 따다가 가야금반주를 얹어 부른다. 가야금병창은 원래 가야금산조의 명인들이 불렀지만, 오늘날에는 산조와 병창의 연주자가 분리되는 추세이다. 원곡이 따로 있는 노래를 병창으로 부를 때에는 가야금 특유의 선율로 인해 본래의 곡과 다른 맛이 나고 독특한 개성을 표현하게 된다. 판소리 흥보가 중 “제비노정기”, 춘향가 중 “사랑가”, 수궁가 중 “고고천변”, 심청가 중 “심봉사 황성가는 대목”은 가야금병창의 유명한 대목이다.
전문설명 가야금산조는 가야금으로 연주하도록 짜여진 산조를 가리킨다. 산조란 판소리에서 보이는 남도 향토가락이 4∼6개의 장단으로 구분되는 악장(樂章)으로 짜여진 것인데, 느린 장단에서 빠른 장단 순으로 구성된 독주형식이다. 가야금병창이란 가야금 연주자가 직접 가야금을 연주하며 단가나 민요, 판소리 가운데 한 대목을 부르는 것이다.
가야금은 본래 가얏고라 불렸다. 옛 기록에 보면 변진(弁辰)에 현악기가 있었고 초기신라에도 현악기가 있었는데 고라 불렸다. 가야국에서 발전한 고가 가얏고이며 고구려에서 발전한 고가 거문고이다. 가얏고는 가야국 가실왕(嘉實王)이 고를 개조하여 만들어서 악사 우륵(于勒)에게 곡(曲)을 지어 타게 하였다.
가야금은 고신라에서 가무(歌舞)에 썼고 통일신라 때에는 거문고, 비파(琵琶), 대금(大금), 중금(中금), 소금(小금)과 함께 삼현삼죽(三絃三竹) 음악에 편성되어 가무에 쓰이다가 뒤에는 무용음악보다 가곡합주에 주로 쓰여온 것으로 보인다. 그 뒤에도 민간악으로서 줄곧 쓰이어 조선후기에는 거문고, 세피리, 젓대, 해금, 장고와 같이 편성되어 가곡과 현악영산회상(絃樂靈山會相) 연주에 주로 쓰였다.
한편 가야금은 민속악사들에 의하여 시나위나 봉장취(鳳將吹)라는 민속악을 탔었다. 조선말기에는 김창조(金昌祖)가 시나위음악을 토대로 판소리음악을 도입해서 가야금산조를 연주하여 이름을 떨쳤다. 같은 무렵에 한숙구(韓淑求)와 박팔괘(朴八卦)가 가야금산조를 짜서 연주하였다 한다. 이들의 뒤를 이어 한성기(韓聖基), 강태홍(姜太弘), 최옥산(崔玉山), 박상근(朴相根)과 같은 많은 가야금산조 명인들이 나왔다.
가야금산조는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고 한숙구 계통을 이은 김윤덕(金允德)과 박팔괘, 박상근 계통을 이은 성금연(成錦鳶)이, 김창조, 함동정월(咸洞庭月, 본명 함금덕:咸金德), 한성기 계통을 이은 김죽파(金竹坡, 본명 김난초:金蘭草)가 보유자로 인정되었다가 이들이 작고 및 해외이주로 해제되고 지금은 이영희가 보유자로 인정되었다.
가야금에는 큰 오동나무를 파서 통을 만들고 한 끝에 양이두(羊耳頭)를 달고 열두 줄을 매어 안족(雁足)을 고인 정악(正樂)가야금과 거문고 통처럼 만든 통에 열두 줄을 매어 안족을 고인 산조(散調)가야금이 있는데, 산조는 산조가야금으로 한다. 정악가야금은 규모가 커서 우람한 소리를 내어 정악을 타는 데 좋고, 산조가야금은 규모가 작아서 빠른 가락을 연주하는 데 편하여 산조를 타는 데 쓰인다.
가야금산조는 느린 진양조, 보통 빠른 중모리, 좀 빠른 중중모리, 빠른 자진모리, 매우 빠른 휘모리 장단으로 곡을 짠다. 그리고 우람한 느낌을 주는 우조(羽調), 화평한 느낌을 주는 평조(平調), 슬픈 느낌을 주는 계면조(界面調), 경쾌한 느낌을 주는 경드름 등 여러 정조(情調)를 나타내는 조의 변화, 촉급한 리듬과 유장한 리듬 등 리듬의 맺고 푸는 변화를 주어서 죄었다 풀었다 하여 희노애락의 감정을 표출한다.
가야금병창은 조선조 말기에 김창조, 박팔괘 등 가야금 명인들이 가야금을 타며 단가(短歌)나 판소리 한대목을 부른 데서 비롯되었다. 그뒤 오수관(吳壽寬), 오태석(吳太石), 강태홍(姜太弘), 심상건(沈相健), 박귀희(朴貴姬, 본명 오계화 吳桂花)가 가야금병창의 명인이었다. 가야금병창으로 부르는 노래는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단가나 판소리 중 한 대목을 병창(倂唱)으로 얹어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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