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국보

국보 제303호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오늘의 쉼터 2008. 2. 2. 13:11


종     목 국보  제303호
명     칭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분     류 기록유산 / 전적류/ 필사본/ 일기류
수량/면적 3,243책
지 정 일 1999.04.09
소 재 지 서울 관악구  신림동 산56-1 서울대학교규장각
시     대조선시대
소 유 자국유
관 리 자서울대학교규장각



일반설명

인조 1년(1623) 3월부터 1910년 8월까지 왕명을 담당하던 기관인 승정원에서 처리한 여러 가지 사건들과 취급하였던 행정사무, 의례적 사항 등을 매일 기록한 것이다. 이 책의 수량은 총 3,243책 393,578장에 이르며, 종이질은 닥나무종이이다.

이 책에 관여한 사람들은 정3품 승지 6명, 정7품 주서 2명이며, 도승지는 이조, 좌승지는 병조, 우승지는 호조, 좌부승지는 예조, 우부승지는 공조, 동부승지는 형조의 공사를 나누어 담당하였다. 주서가 기록을 담당했고, 그가 자리를 비우면 가주서가 대신 그 일을 맡았다. 전쟁기사는 임진왜란이 일어난 뒤 전쟁에 관한 사실을 기록하기 위해 임시로 설치한 사변가주서가 담당했다. 이 책은 생산기관의 명칭과, 책명을 변경해가며 1623년 3월 12일부터 1910년 8월 29일까지 280여년간 그 작업이 계속되었다.

역사를 연도에 따라 서술하는 편년체로서 날짜순으로 배열하였고, 월별로 책을 만들었는데 분량에 따라 한 달에 2책으로도 만들었다.

조선 전기의 『승정원일기』는 승정원에 보관되어 있었으나, 임진왜란 때 대부분 불타버리고 말았다. 또 1592년 임진왜란 이후 1623년까지의 일기도 이괄의 난 때 거의 불에 타버렸다. 인조 때 1592년 이후의 일기를 보수하였으나, 영조 20년(1744) 승정원에 불이 나면서 모두 타버렸다. 지금까지 전해오는 일기 역시 보수한 부분이 상당히 많으나 보수에 최선을 다하여 그 역사적 가치는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국가의 중대사에서부터 의례적인 일에 이르기까지 국정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였던 승정원의 전모가 기록되어 있을 만큼 방대하여,『조선왕조실록』편찬을 위한 첫 번째 사료로서 그 가치가 대단히 높게 평가되는 기록물이다.

 

전문설명

 

승정원일기는 조선시대의 왕명 출납기관이었던 승정원에서 여러가지 사건들과 취급하였던 제반문서들을 매일매일 기록한 것으로, 총 3,243책(冊)이 현존한다.

임진왜란과 이괄의 난 등으로 인해 인조(仁祖)이전의 일기는 모두 없어졌고, 그 이후인 인조 원년 계해(癸亥) (1623) 3월 12일부터 순종(純宗) 융희(隆熙) 4년(1910) 8월 29일까지 288년간의 일기만이 남아 있다.

현존본은 승정원일기(1623∼1894)와 승선원일기·궁내부일기·(전)비서감일기·비서원일기·(후)비서감일기·규장각일기(1894∼1910)로 구성되어 있다.

1623∼1894년의 승정원일기는 원래 3,083책(冊)이 있었던 듯하나 1919년(대정 (大正) 8년) 11월 점검할 때 천계(天啓) 4년(1624)분과 강희(康熙) 35년(1696)분 약 24책(冊)이 이미 유실되었음이 확인되었고, 그밖에도 강희 42년(1703) 6월분 1책(冊)을 비롯하여 광서(光緖) 15년(1889) 10월분까지의 사이에 12개월분 12책(冊)이 없어져 당시에 3,047책(冊)이 전존되었다. 게다가 도광(道光) 26년(1846) 8월분 1책(冊)과 27년(1847) 9월분 1책(冊)이 또한 소재불명이어서 승정원일기는 3,045권만 남아있는 것으로 파악 되었다.

1894∼1910년의 일기(승선원일기∼규장각일기) 198책(冊)은 잘 남아있다. 승정원일기 중 895책(冊) 화재로 원본일기가 불차버린 뒤 영조 23년(1747)과 고종 27년(1890) 두차례에 걸쳐 남은 자료를 토대로 재편한 개수일기이다. 이 개수일기는 조보(朝報)·금부등록(禁府謄錄)·내하기장(內下記章)·내하일기(內下日記)·승정원등록(承政院謄錄)·훈국등록(訓局謄錄)·내외일기(內外日記) 등을 참고로 하여 그 전거(典據)를 밝히고 있다. 이 일기에 관여한 사람들은 승지(承旨)6인(정3품), 주서(注書) 2인(정7품)이다. 도승지(都承旨)는 이조, 좌승지(左承旨)는 병조, 우승지(右承旨)는 호조, 좌부승지(左副承旨)는 예조, 우부승지(右副承旨)는 공조, 동부승지(同副承旨)는 형조의 공사(公事)를 분담했다. 주서가 기록을 담당했고, 그가 유고시에는 가주서(假注書)가 대행했다. 전쟁기사는 사변가주서(事變假注書)가 담당했다. 편년체(編年體)로서 일자순(日字順)으로 배열(配列)하였고, 월별(月別)로 장책(裝冊)하였는데 분량에 따라 월분(月分)을 2책(冊)으로도 만들었다.

원본은 사침본, 개수본은 오침본으로 장정(裝訂)하였다.

승정원일기는 국가의 중요한 공사에서부터 의례적인 일에 이르기까지 국정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던 승정원의 전모가 기록되어 우리 민족의 기록문화유산가운데 가장 방대하며, 『조선왕조실록』편찬을 위한 1차 사료로서의 가치가 높이 평가되는 문헌이다.




규장각에 보관된 승정원일기

겉표지

천계2년3,4,5월일기 겉표지

천계2년3,4,5월일기 속지

융희원년12월일기 겉표지

융희원년12월일기 속지

승정원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