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국보

국보 제279호 초조본대방광불화엄경주본<권제74>(初雕本大方廣佛華嚴經周

오늘의 쉼터 2008. 2. 2. 11:10


종     목 국보  제279호
명     칭

초조본대방광불화엄경주본<권제74>(初雕本大方廣佛華嚴經周本<卷第七十四>)

분     류 기록유산 / 전적류/ 목판본/ 대장도감본
수량/면적 1권(卷)1축(軸)
지 정 일 1993.06.15
소 재 지 충북 단양군 
시     대고려시대
소 유 자대한불교천태종 구인사
관 리 자대한불교천태종 구인사

일반설명

대방광불화엄경은 줄여서 ‘화엄경’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을 기본 사상으로 하고 있다. 화엄종의 근본 경전으로 법화경과 함께 한국 불교사상 확립에 크게 영향을 미친 불교경전 가운데 하나이다.

이 책은 당나라 실차난타가 번역한 『화엄경』 주본 80권 중 권 제74에 해당하며, 고려 현종 때(재위 1011∼1031) 부처님의 힘으로 거란의 침입을 극복하고자 만든 초조대장경 가운데 하나이다. 닥종이에 찍은 목판본으로 두루마리처럼 말아서 보관할 수 있도록 되어 있으며, 한 장의 크기는 세로 28.7㎝, 가로 46㎝이다.

초조대장경은 이후에 만들어진 해인사대장경(재조대장경 또는 고려대장경)과 비교해 볼 때 몇 가지 차이점이 있다. 해인사대장경보다 글자수가 적고 새김이 정교한 반면에 간행연도를 적은 기록은 없으며, 군데군데 피휘(避諱:문장에 선왕의 이름자가 나타나는 경우 공경과 삼가의 뜻으로 글자의 한 획을 생략하거나 뜻이 통하는 다른 글자로 대치하는 것)와 약자(略字)가 나타난다. 또 초조대장경은 책의 장수를 표시하는데 있어서 대체로 ‘장(丈)’자나 ‘폭(幅)’자를 쓰는데 비해 해인사대장경은 ‘장(張)’자로 통일되어 있다.

이 책의 경우에도 ‘경(敬)’,‘경(竟)’,‘경(鏡)’자의 마지막 한 획이 생략되고, 본문의 글자수도 한 행에 14자로 해인사대장경과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인쇄상태나 종이의 질로 보아『초조본대방광불화엄경』주본 권1(국보 제256호), 권29(국보 제257호), 권13(국보 제265호), 권75(국보 제266호)와 같이 초조대장경이 만들어진 11세기에서 12세기 사이에 간행된 것으로 보인다.

 

전문설명

 

이 책은 당나라 실차난타(實叉難陀)가 한역(漢譯)한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80권(卷) 중의 하나이며, 고려 현종(顯宗)때 새긴 초조대장경 판본(初雕大藏經 版本)이다.

이 초조본은 권수제(卷首題)와 권차(卷次)다음에 "신역(新譯)"과 함차(函次)인 "수(首)"자(字)가 새겨지고, 그 다음줄에 "당우전삼장실차난타역(唐于전三藏實叉難陀譯)"과 같이 표시되어 있으나, 해인사 소장의 재조대장경(再雕大藏經) 판본에는 권수제와 권차 다음에 "신역(新譯)"이 생략되고 그 다음줄에는 "우전국삼장실차난타봉제역(于전國三藏實叉難陀奉制譯)"과 같이 표시되고 있어 차이점을 보여준다. 초조본의 판수제(版首題)는 잘려져 보이지 않으나, 재조본은 판수제가 "주경제칠십사 삼폭 수 성대(周經第七十四 三幅 首 成大)"와 같이 장차(張次)에 "폭(幅)"자(字) 를 쓰고 각수명(刻手名)이 표시된 것이 다른 초조의 주본(周本)과 비교해 볼 때 또한 차이점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초조본은 권말(卷末)에 간기(刊記)가 생략되어 있으나, 재조본에는 "을사세고려국대장도감봉칙조조(乙巳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와 같이 그 간기가 새겨진 것도 그 차이점이다. 초조본의 본문에는 송태조(宋太祖)의 조부휘(祖父諱)인 "경(敬)"자(字)와 겸피휘자(兼避諱字)인 "경(敬), 경(鏡)"자(字)가 결획(缺劃)되어 있으나, 재조본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고 또한 각판의 본문 행자수(行字數)가 초조본은 1행(行) 14자(字)이나 재조본은 1행(行) 17자(字)로 되어 있는 것도 그 차이점이 된다.

이 초조본(初雕本)은 지질(紙質)이나 인쇄상태(印刷狀態)등으로 미루어 11세기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까지 지정된 화엄경 주본은 권 1, 13, 29, 36, 75가 있다.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74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74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