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광불화엄경은 줄여서 ‘화엄경’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을 기본 사상으로 하고 있다. 화엄종의 근본 경전으로 법화경과 함께 한국 불교사상 확립에 크게 영향을 미친 불교경전 가운데 하나이다.
이 책은 당나라 실차난타가 번역한 『화엄경』 주본 80권 중 권 제74에 해당하며, 고려 현종 때(재위 1011∼1031) 부처님의 힘으로 거란의 침입을 극복하고자 만든 초조대장경 가운데 하나이다. 닥종이에 찍은 목판본으로 두루마리처럼 말아서 보관할 수 있도록 되어 있으며, 한 장의 크기는 세로 28.7㎝, 가로 46㎝이다.
초조대장경은 이후에 만들어진 해인사대장경(재조대장경 또는 고려대장경)과 비교해 볼 때 몇 가지 차이점이 있다. 해인사대장경보다 글자수가 적고 새김이 정교한 반면에 간행연도를 적은 기록은 없으며, 군데군데 피휘(避諱:문장에 선왕의 이름자가 나타나는 경우 공경과 삼가의 뜻으로 글자의 한 획을 생략하거나 뜻이 통하는 다른 글자로 대치하는 것)와 약자(略字)가 나타난다. 또 초조대장경은 책의 장수를 표시하는데 있어서 대체로 ‘장(丈)’자나 ‘폭(幅)’자를 쓰는데 비해 해인사대장경은 ‘장(張)’자로 통일되어 있다.
이 책의 경우에도 ‘경(敬)’,‘경(竟)’,‘경(鏡)’자의 마지막 한 획이 생략되고, 본문의 글자수도 한 행에 14자로 해인사대장경과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인쇄상태나 종이의 질로 보아『초조본대방광불화엄경』주본 권1(국보 제256호), 권29(국보 제257호), 권13(국보 제265호), 권75(국보 제266호)와 같이 초조대장경이 만들어진 11세기에서 12세기 사이에 간행된 것으로 보인다. 전문설명 이 책은 당나라 실차난타(實叉難陀)가 한역(漢譯)한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80권(卷) 중의 하나이며, 고려 현종(顯宗)때 새긴 초조대장경 판본(初雕大藏經 版本)이다.
이 초조본은 권수제(卷首題)와 권차(卷次)다음에 "신역(新譯)"과 함차(函次)인 "수(首)"자(字)가 새겨지고, 그 다음줄에 "당우전삼장실차난타역(唐于전三藏實叉難陀譯)"과 같이 표시되어 있으나, 해인사 소장의 재조대장경(再雕大藏經) 판본에는 권수제와 권차 다음에 "신역(新譯)"이 생략되고 그 다음줄에는 "우전국삼장실차난타봉제역(于전國三藏實叉難陀奉制譯)"과 같이 표시되고 있어 차이점을 보여준다. 초조본의 판수제(版首題)는 잘려져 보이지 않으나, 재조본은 판수제가 "주경제칠십사 삼폭 수 성대(周經第七十四 三幅 首 成大)"와 같이 장차(張次)에 "폭(幅)"자(字) 를 쓰고 각수명(刻手名)이 표시된 것이 다른 초조의 주본(周本)과 비교해 볼 때 또한 차이점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초조본은 권말(卷末)에 간기(刊記)가 생략되어 있으나, 재조본에는 "을사세고려국대장도감봉칙조조(乙巳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와 같이 그 간기가 새겨진 것도 그 차이점이다. 초조본의 본문에는 송태조(宋太祖)의 조부휘(祖父諱)인 "경(敬)"자(字)와 겸피휘자(兼避諱字)인 "경(敬), 경(鏡)"자(字)가 결획(缺劃)되어 있으나, 재조본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고 또한 각판의 본문 행자수(行字數)가 초조본은 1행(行) 14자(字)이나 재조본은 1행(行) 17자(字)로 되어 있는 것도 그 차이점이 된다.
이 초조본(初雕本)은 지질(紙質)이나 인쇄상태(印刷狀態)등으로 미루어 11세기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까지 지정된 화엄경 주본은 권 1, 13, 29, 36, 75가 있다.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74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74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7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