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 남아있는 고려시대 종 가운데 가장 커다란 종으로 크기는 종 높이 1.33m, 종 입구 0.96m 이다. 종 위에는 종의 고리 역할을 하는 용뉴가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의 모습으로 표현되었는데, 신라 종의 용보다 고개를 쳐 들어 올린 모습을 하고 있다. 소리 울림을 도와 준다는 용통은 대나무 모양이며, 편평한 부분인 천판 가장자리에는 연꽃무늬를 돌렸다. 몸체의 아래와 위에는 구슬무늬로 테두리를 한 너비 10㎝ 정도의 띠를 두르고, 꽃과 덩굴로 안을 채워 넣었다.
위에 두른 띠 바로 아래로는 4곳에 사각형의 유곽을 만들고 그 안에 가운데가 도드라진 9개의 연꽃을 새겼다. 유곽 아래에는 종치는 부분인 당좌를 원형으로 2곳에 두었고, 구슬로 테두리하고 연꽃으로 장식하였다. 당좌 사이에는 2구의 비천상을 두었는데, 1구씩 대각선상에 배치하여 신라종과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유곽 바로 아래에는 위패형의 틀을 설치하고 그 속에 글을 새겨, 고려 현종 원년(1010)에 주조되고 성거산 천흥사에 있던 종임을 알 수 있다. 현재 국내에 남아있는 신라 상원사 동종, 성덕대왕 신종 다음으로 큰 종으로 제작기법이나 양식이 고려 범종을 대표하는 종이라 할 수 있다.
전문설명
국립중앙박물관(國立中央博物館)에 소장되어 있는 고려시대 초기의 대표적인 거종(巨鐘)의 하나로 1969년 7월 이전에는 옛 덕수궁미술관의 소장품이었던 범종이다. 현재 국내에 남아있는 신라시대의 상원사동종과 봉덕사성덕대왕신종 다음에 속하는 거종(巨鐘)으로 그 제작기법이나 모든 양식이 고려범종을 대표할 수 있는 우수한 범종이며, 세부상태를 보면 용뉴부분의 형태는 신라범종의 용뉴형을 닮고 있으나 다만 용두가 여의주를 물고 고개를 들어올리는 형상으로 되어 있는 것이 다르다.
용통 역시 신라범종의 용통형식과 유사하게 5단으로 구분되어 있고 최상단의 제1단과 중간부분의 제4단, 그리고 제2단과 제5단등은 각각(各各) 동일(同一)한 문양대로 조식하였으며 중앙의 3단만은 다른 문양으로 처리한 것이 주목되며 이 문양은 범종 상하(上下)문양과 동일하게 장식한 것이
특징이라 하겠다. 종정(鐘頂)의 천판주연(天板周緣)에는 신라범종에서 보이는 연판대로 돌리고 있으며 상대와 하대는 연주문대속에 보상당초문으로 주문양을 이루고 있고 유곽은 단순히 보상화문대로 장식하였다. 유곽내에 있는 유두는 9유두로 원형의 8판연화좌 위에 약간 도드라지게 배치하고 있다. 종신의 종복부에는 2개(個)의 당좌와 2구(軀)의 비천상을 배치하고 있으며 당좌는 원형의 자방을 갖추고 그 주연에 8판의 연판으로 돌리고 연판주변에는 작은 연화문대로 장식한 후 다시 그 외곽에 인동당초문대를 돌렸으며 가장 외곽선에는 굵은 연주문대로 처리한 점이 특색이다.
이같은 당좌형식은 신라범종들의 당좌에서 보이는 형식을 이어받은 것 같다. 당좌와 교대로 배치한 비천상은 신라범종에서 보이는 비천상 배치와는 달리 각 1구(軀)씩 대각선상에 배치한 것이 다르다.
특히 유곽 바로 아래에 위패형 명문곽을 설치하여 그 속에 양주(陽鑄)한 「성거산천흥사 종각 통화이십팔년경술이월일(聖居山天興寺 鐘銘 統和二十八年庚戌二月日) 」이 있어 고려현종 원년(元年)(1010)에 주조된 것임을 알 수 있고 통화(統和)는 요(遼)의 연호(年號)이며 성거산(聖居山)은 충남 천안군 성거면 성거산으로 고려태조와 깊은 인연이 있는 천흥사(天興寺)임을 알 수 있다.
성거산 천흥사명 동종
성거산 천흥사명 동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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