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국보

국보 제255호 전 덕산 청동방울 일괄 (傳 德山 靑銅鈴一括)

오늘의 쉼터 2008. 2. 1. 23:12


종     목

국보  제255호

명     칭

전 덕산 청동방울 일괄 (傳 德山 靑銅鈴一括)

분     류

유물 / 생활공예/ 금속공예/ 마구

수량/면적

일괄

지 정 일

1990.05.21

소 재 지

서울 용산구  (리움미술관)

시     대

청동시대

소 유 자

이건희

리 자

리움미술관

일반설명

충남 예산군에 있는 흥선 대원군 부친의 무덤 근처 구릉에서 출토된 청동 방울들로 제정일치 사회였던 청동기시대 제사장들이 주술적 의미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출토된 청동 방울에는 8각형 별모양의 각 모서리 끝에 방울이 달려있는 팔주령 1쌍과 아령 모양의 쌍두령 1쌍, 포탄 모양의 간두령 1쌍 그리고 쌍두령과 비슷하나 X자형태로 둥글게 한번 말려있는 조합식쌍두령 1점이 있다.


팔주령 1쌍은 지름이 각각 14.4㎝ 와 14.3㎝이며 모서리 끝에 달린 방울들은 모두 지름이 2.4㎝로 1쌍이 서로 같은 모습을 하고있다. 각 모서리 끝에는 작은 방울이 8개가 달려 있다. 각 방울에는 타원형 모양 구멍이 4개씩 있다. 몸체의 바깥쪽에 점선이 2∼3줄 있고, 가운데에는 커다란 十문양이 있는데 이것은 태양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몸체 뒷면에는 [ ]모양의 꼭지가 달려 있다.


쌍두령 1쌍은 길이가 각각 19.7㎝와 19.8㎝이며, 무게는 170.3㎎, 172㎎ 이다. 형태는 아령과 비슷하며 가운데 부분이 볼록하고, 방울과 연결되는 양 끝은 가늘다. 양 끝에 달린 방울에는 타원형 모양의 구멍이 4개씩 있고, 안에는 청동 구슬이 들어 있다. 2개가 거의 같으나 가운데에 작은 구멍이 1개 있는 것이 다르다.


조합식쌍두령은 길이 17.3㎝, 방울 지름 4.4㎝, 무게 628㎎이다. 한 쪽 끝에 방울이 달려 있는 몸체 2개를 각각 X자형으로 교차하여 서로 부친 것이다. 방울이 달려있지 않은 끝의 한 쪽 몸체에는 삽입 구멍을 다른 쪽 몸체에는 꼭지를 만들어 떨어지지 않게 결합시킨 것이다.


간두령 1쌍은 각각 높이 14.7㎝와 14.9㎝, 무게 616.5㎎와 571㎎로 모습은 같고 크기만 서로 다르다. 몸체와 자루, 2부분으로 되어있고 사이에 갓 모양의 테두리를 두르고있다. 전체적으로는 포탄 모습이며 비어있는 몸체를 칸막이로 나누어 위에는 청동 구슬을 두었고 아래에는 빈 공간으로 남겨 소리가 잘 울릴 수 있도록 하였다.

이 유물들은 의기로서 중국에서 들어온 문화양식에 의해 차츰 소멸해가던 기원전 3세기 후반의 작품들로 추정된다.

 

전문설명

 

이 일괄유물(一括遺物)은 아직까지 정식(正式)으로 학계(學界)에 소개(紹介)된 바 없는데 동(同) 유물(遺物)의 최초(最初) 소유자(所有者)였던 충남(忠南) 서산군(瑞山郡) 해미면 (海美面) 보암리 거주(居住) 박준상씨가 1979년(年) 국립중앙박물관(國立中央博物館)에 감정 의뢰함으로써 알려졌으며 이후 동유물(同遺物)은 1980년 3월31일부터 1982년 2월15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國立中央博物館)에 기탁전시(寄託展示)된 바 있다.
충남 예산군 덕산면(忠南 譽山郡 德山面)개골의 대원군 부친묘(大院君 父親墓) 근처의 구릉(丘陵)에서 발견(發見)된 것이라고 하는데 정확(正確)하지는 않겠지만 유물(遺物)의 성격(性格)으로 보나 최초소유자(最初所有者)의 주소(住所)로 보나 출토지(出土地)가 충남지역(忠南地域)인 것만은 틀림없다고 믿어진다. 이 일괄유물(一括遺物)을 소개(紹介)하면 다음과 같다.


1) 팔주령(八珠鈴) : 1쌍(雙)이다. 령부팔수형식금구(鈴部八手形飾金具)팔두령동구(八頭鈴銅具) 등으로 불리운다.
(a) : 신부(身部)는 각변(各邊)이 안으로 휘어든 팔릉형(八稜形)의 것이며, 각(各) 모서리에 구형(球形)의 작은 방울이 하나씩 부착(附着)된 형장(形狀)이다. 신부(身部)가 전체적(全體的)으로 휘어진 것인데 뉴가 달린 이면(裏面)쪽 중앙(中央)이 불룩하다. 구형(球形)의 령부(鈴部)에는 장행인형(長杏仁形)의 체개구(切開口) 4개(個)가 나 있고 문양(文樣)은 보이지 않는다. 신부(身部)에는 문양(文樣)이 표면(表面)에만 나 있다. 외구(外區)는 3개의 팔릉형문대(八稜形文帶)로 나누어지는데 외측(外側)은 2 열(列)로 된 음각점선문(陰刻點線文)을 돌렸으며, 내측(內側)은 3 열(列)의 돌점선문(突點線文)을 돌렸고 그 가운데에는 음각(陰刻)의 평행단사선문(平行短斜線文)을 돌렸다. 이 외구(外區)의 문양구성(文樣構成)은 기본적(基本的)으로 전(傳) 강원도(논산 ?)(江原道( 論山 ? ))출토(出土) 팔주령의(八珠鈴)의 이면(裏面) 및 전(傳) 상천출토(尙州出土) 팔주령(八珠鈴)의 표면(表面) 문양구성(文樣構成)과 동일(同一)하다. 내구(內區)의 문양(文樣)은 단사선문(短斜線文) 으로 ㄱ자형(字形)의 문양(文樣)을 4개, 그리고 각(各) ㄱ자형문(ㄱ字形文)의 바깥쪽으로 직각삼각형문(直角三角形文) 4개를 대칭이 되도록 배렬(配列)함으로써 문양(文樣)이 없는 부분(部分)이 십자문(十字文)을 이루도록 하였다. 이 내구(內區)의 바깥쪽에는 일렬(一 列)의 음각점문양(陰刻點線文)을 돌렸다. 뒷면 중앙(中央)에는 반환형(半環形)의 소뉴가 달려 있다. 신부(身部)의 휘어든 만곡도(彎曲度)는 전(傳) 강원도·화순(江原道·和順) 대곡리(大谷里) 출토품(出土品)보다 훨씬 심하며 문양(文樣)이나 제작기법(製作技法)은 이들 보다 정교하지 못하다. 문양(文樣)이 지워진 부분이 일부 보인다. 직경(直徑)14.3cm, 령경(鈴徑)2.4cm.
(b) : 기본적(基本的)으로 형태(形態)·문양(文樣)등이 (a)와 같다. 신부 표면(身部 表面)의 문양(文樣)은 (a)에 비(比)해 내구(內區) 의 바깥쪽에 일렬(一列)로 된 음각(陰刻)의 점선문(點線文)이 생략(省略)되었을 뿐 그외는 동일(同一)하다. (a)에 비해 문양(文樣)이 약간 굵게 처리되었다. 직경(直徑)14.4 cm, 령경(鈴徑) 2.4cm


2) 쌍두령(雙頭鈴) : 1쌍(雙)이다.
(a) : 아령(啞鈴)의 형태(形態)를 가진 것이다. 가운데 봉장부(棒狀部)는 중앙(中央)이 볼록하고 령부(鈴部)와 연결(連結)되는 양단(兩端)은 가늘다. 전체적(全體的)인 형태(形態)는 전(傳) 강원도(江原道) 출토품(出土品)보다 화순(和順) 대곡리(大谷理) 출토품(出土品)에 가깝다. 동환(銅丸)이 들은 령부(鈴部)의 4절개구(4切開口)사이에는 2조(條)의 단사선문대(短斜線文帶)를 배치(配置)하였다. 봉상부(棒狀部)의 중앙(中央)에는 장(長) 1.6cm, 폭(幅) 0.8cm의 장방형(長方形) 구멍이 관통(貫通)되어 있는데 화순(和順) 출토쌍두령(出土雙頭鈴)처럼 한쪽면의 좌우(左右)에는 방형 소공(方形 小孔)이 하나씩 더 뚫려 있다. 봉상부(棒狀部)의 내부(內部)는 령부(鈴部)와 연결(連結)되는 부분만 막혀 있을 뿐 완전히 중공(中空)이다. 봉상부(棒狀部) 이면(表面)의 문양(文樣)은 장방형(長方形)구멍을 사이에 두고 봉상부(棒狀部)의 장축(長軸)을 따라 2조(條)의 단사선문대(短斜線文帶)가 각각 배치(配置)되어 있다. 장(長) 19.8cm, 무게172 g.
(b) : (a)와 동일(同一)하나 봉상부(棒狀部)의 아래쪽 장방형(長方形)구멍의 한쪽편에 또 하나의 방형(方形) 소공(小孔)이 나 있는 것이 다를 뿐이다. 장(長)19.7cm, 무게 170.3g.
3)조합식쌍두령(組合式雙頭鈴) : 일단(一端)에 령부(鈴部)가 부착(附着)된 동봉(銅棒) 2개를 각각 구부린뒤 X자형(字形)으로 교차(交叉)해서 조합(組合)한 것이다. 전(傳) 강원도(江原道) 출토품(出土品)보다 령부(鈴部)가 크고 봉상부(棒狀部)의 길이도 길며 봉상부(棒狀部)의 휘어든 곡도(曲度)도 심하다. 봉상부(棒狀部)의 방울이 달리지 않는 일단(一端)에 나 있는 삽입구멍과 꼭지를 결합해 빠지지 않도록 하였다. 삽입구멍은 2.2cm깊이로 전(傳) 강원도 출토품(江原道 出土品)보다 깊지 않으며 삽입구명의 상하(上下)에 뚫린 고착용(固着用) 소공(小孔)도 측면(側面)에 뚫린 전(傳) 강원도(江原道) 출토품(出土品)과 차이(差異)를 보인다. 령부(鈴部)에는 1조(條)의 단사선문대(短斜線文帶)를 4개(個)의 절개구(切改口) 사이에 배치(配置)하였고, 령장부(鈴狀部)에는 령부(鈴部)쪽으로부터 X자(字)로 겹치는 부분(部分)까지만 1조(條)의 단사선문대(短斜線文帶)를 배치(配置)하였다. 장(長) 17.3cm, 령부(鈴部) 최대경(最大徑)4.4cm, 무게 628 g.
4)간두령(竿頭鈴) : 1쌍(雙)이다. 동간두(銅竿頭) · 동제령부병두(銅製鈴附柄頭) · 이형유악령(異形有鍔鈴) 등으로도 불리워 왔다. 간두령(竿頭鈴)의 설명(說明) 편의(便宜)를 위해 먼저 삽도와 같이 각부분별(各部分別) 명칭(名稱)을 부여하고자 한다.
(a) : 신부(身部)와 병부(柄部)사이에 갓의 테두리형상(形狀)을 한 테두리부(部)가 돌려진 중공(中空)의 포탄형구(砲彈形具)이다. 신부(身部)의 내부(內部)에 설치(設置)된 칸막이가 정부(頂部)에서 약 5.5cm 정도 아래쪽에 위치(位置)하여 령부(鈴部)의 길이가 공명부(共鳴部)의 길이보다 길다. 칸막이에는 한쪽으로 치우쳐서 직경(直徑)0.4cm 정도의 소공(小孔)이 나 있다. 령부(鈴部)의 절개구(切開口)는 4개이며 칸막이가 위치(位置)한 부분까지 내려오지 않았다. 령부(鈴部)속의 동환(銅丸)은 직경(直徑) 0.9cm 정도이며 합범(合범)으로 제작(製作)된 것이다. 테두리부(部)에는 부정형(不整形)의 소공(小孔)이 하나 비스듬히 뚫려 있다. 신부(身部)에는 각 체개구(切開口) 사이로 상이(相異)한 문양대(文樣帶)를 2줄씩 배치(配置)하였는데 한줄은 단선문(短線文)으로 이루어진 음각의 역삼각대칭문(逆三角對稱文)을 종(縱)으로 나란하게 한 것이다. 문양(文樣)의 신(幅)은 정부(頂部)에 이를수록 좁아져 절개구(切開口) 상부(上部)가 되는 위치(位置)에서부터는 상기(上記)문양(文樣)들이 단선문(短線文)으로 처리되면서 끝난다. 병부(柄部)의 문양(文樣)은 전 강원도 출토품(傳 江原道 出土品)에 비(比)해 폭(幅)이 넓다. 문양대(文樣帶)의 상하(上下)쪽은 음각의 방형점선문(方形點線文)을, 가운데는 장이등변삼각형(長二等邊三角形)에 가까운 사다리꼴문양(文樣)을 횡(橫)으로 돌린 것이다. 이 문양대(文樣帶)는 대칭이 되는 두곳의 사이가 떨어져 있어 이 간두령(竿頭鈴)이 합범제작(合범製作)임을 알 수 있다. 고(高) 14.9cm, 현(現)무게 571g.
(b) : (a)와 문양(文樣)· 형태(形態)가 동일(同一)하나 동범(銅범)의 것은 아니다. (a)에 비해 신부(身部)의 두께가 두텁고 칸막이에 뚫린 구멍이 크다. 령부(鈴部)속의 동환(銅丸)도 (a)의 것보다는 크다. 고(高)14.7cm, 무게 616.5g.
이 동령류(銅鈴類) 일괄유물(一括遺物)은 전(傳) 강원도(江原道)· 화순(和順) 대곡리(大谷理)· 전(傳) 상주유적(尙州遺蹟)과 같이 팔주령(八珠鈴)을 중심유물(中心遺物)로 해서 쌍두령(雙頭鈴)· 조합식쌍두령(組合式雙頭鈴)· 간두령(竿頭鈴)의 set와 삼구식(三區式) 세문경(細文鏡)을 공반유물(共伴遺物)로 하는 유적중(遺蹟衆)에 속하는 유적(遺蹟)에서 출토(出土)된 것으로 믿어진다.
청동의기류(靑銅儀器類)를 반출유물(伴出遺物)과의 조합(組合), 시문(施文)되어 있는 단위문양(單位文樣)의 조합(組合), 제작기법(製作技法)의 정·조(精·粗), 형태(形態)의 비교(比較)등을 통해 보면 이들 의기류(儀器類)와 관련된 한국식동검문화기(韓國式銅劍文化期)를 3기(三期)로 구분(區分)할 수 있다. 제1기(第1期)는 방패형동기(防牌形銅器)· 나팔형동기(喇叭形銅器)· 견갑형동기(肩甲形銅器)· 검파형동기(劍把形銅器)와 같은 요령식동검문화(遼寧式銅劍文化) 요소(要素)의 출현(出現)으로, 제2기(第2期)는 4종(種)의 동령류(銅鈴類) set와 원형유문동기(圓形有文銅器)의 등장(登場)과 요령식동검문화계(遼寧式銅劍文化系) 의기(儀器)의 소멸로, 제3기(第3期)는 동령유(銅鈴類) set 중 팔주령(八珠鈴)의 소멸과 간두령(竿頭鈴)의 잔존(殘存)으로 획(劃)을 그을 수 있다. 따라서 이 동령류(銅鈴類) 일괄(一括)도 이러한 한국식동검문화기(韓國式銅劍文化期) 제2기(第2期)에 속할 것으로 믿어지며 실년대(實年代)로는 기원전(紀元前)3세기(世紀) 후반(後半)정도에 둘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팔주령(八珠鈴)의 내구(內區)에 시문(施文)된 십자일광문(十字日光文)의 motif는 이 팔주령(八珠鈴) 이외에도 원형유문청동기(圓形有文靑銅器)· 다뉴정문경(多뉴精文鏡)· 투문통형금구(透文筒形金具)· 혁금구(革金具) 등의 청동기(靑銅器)에서도 보이고 있어 한국식동검문화기(韓國式銅劍文化期) 제2기(第2期) 이후(以後) 제3기(第3期)까지 유행(流行)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motif는 영국(英國) ·유럽· 시베리아일대에서도 보이고 있어 시베리아를 비롯한 지방문화(地方文化)와의 연결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동(同) motif는 태양(太陽)을 상징하는 것으로 믿어지는 것이다.



전 덕산 청동방울 일괄

팔주령

팔주령

쌍두령

조합식쌍두령

간두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