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국보

국보 제186호 양평 신화리 금동여래입상 (楊平 新花里 金銅如來立像)

오늘의 쉼터 2008. 1. 28. 19:12


종     목 국보  제186호
명     칭양평 신화리 금동여래입상 (楊平 新花里 金銅如來立像)
분     류 유물 / 불교조각/ 금속조/ 불상
수량/면적 1구
지 정 일 1976.12.14
소 재 지 서울 용산구  용산동 6가 국립중앙박물관
시     대삼국시대
소 유 자

국유

관 리 자국립중앙박물관

일반설명

1976년 경기도 양평군 신화리에서 농지정리를 하다가 우연히 발견된 높이 30㎝의 불상인데, 이곳에서 기와조각 등 유물이 많이 나온 것으로 보아 예전에는 절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불상은 대좌(臺座)와 광배(光背)를 잃었으나, 보존 상태가 매우 좋고 도금이 거의 완전하게 남아 있다.

얼굴은 길고 둥글어 풍만한 느낌을 주며, 목은 매우 길고 굵게 표현되어 있다. 얼굴에 비해 몸이 매우 길어 전체적으로 막대기 모양을 띤다. 옷은 양 어깨에 걸쳐 입고 있는데, 가슴과 배를 많이 드러내면서 U자형의 주름을 만들고 있다. 가슴에는 가로지르는 3가닥의 선을 새겨 속옷을 나타내고 있다. 치마의 옷자락은 몇 줄로 겹쳐져서 굵은 곡선을 그리고 있는데, 주름의 형태가 특이하며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느낌을 준다. 양 손가락이 없어진 상태여서 정확한 손모양은 알 수 없으나, 오른손은 들어 손바닥을 보이고, 왼손은 손끝이 땅을 향하여 손바닥을 보이고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묵직하고 단순한 원통형의 몸체, 간결한 U자형의 주름은 중국 수나라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며, 당시 신라가 점령하고 있던 한강 유역에서 출토되었으므로 신라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전문설명


원래는 대좌(臺座) 위에 정면하고 꼿꼿이 선 여래입상(如來立像)인데, 대좌와 두광(頭光)이 없어졌다. 머리는 나발(螺髮)이며 얼굴은 길쭉하고 둥글며 풍만한데, 목에는 삼도(三道)가 없다. 천의(天衣)는 두 어깨와 두 손에 걸쳐 길게 늘어뜨리고, 상의(裳義)는 아래의 끝 앞뒤에서 간략한 옷주름을 새겼다. 양손의 손가락은 없어졌으나, 본래 삼국불(三國佛)의 통인(通印)인 여원시무외인(與願施無畏印)을 하였다.

머리에 비하여 몸집이 매우 길어 막대기모양을 하고 있는 것은, 얼굴이나 법의(法衣)의 양식과 더불어 삼국(三國) 말기(6세기 후반)의 특색이며, 중국(中國) 육조(六朝) 송(宋)나라의 작품과도 비교된다. 모두가 한꺼번에 주조(鑄造)되어 뒷면에 공간이 없는 것도 고식(古式)으로 볼 수 있다.

1976년 경기도(京畿道) 양평군(楊平郡) 강상면(江上面) 신화리(新花里)에서 절터를 개간하다가 우연히 발견된 것인데, 광복 전후를 통하여 발견된 삼국기(三國期)의 여래입상(如來立像)으로는 가장 크고 우수한 작품으로 볼 수 있다. 출토지인 한강(漢江) 유역의 절터는 한국(韓國) 초기 가람(伽藍)의 점정조건(點定條件)과 부합되고 있다.




양평 신화리 금동여래입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