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보물

보물 제4호 안양 중초사지 당간지주

오늘의 쉼터 2008. 1. 27. 12:24

 





종     목 보물  제4호
명     칭 안양 중초사지 당간지주 (安養 中初寺址 幢竿支柱)
분     류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불교/ 당간
수량/면적 1기
지 정 일 1963.01.21
소 재 지 경기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 212-1
시     대 통일신라
소 유 자 국유
관 리 자 안양시

일반설명

절에 행사가 있을 때 절 입구에 당(幢)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이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를 당간(幢竿)이라 하며, 장대를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이 당간지주는 양 지주가 원래 모습대로 85㎝ 간격을 두고 동서로 서 있다. 이곳을 중초사터라고 하는 것은 서쪽지주의 바깥쪽에 새겨진 기록에 따른 것이다.

현재 지주의 기단은 남아있지 않고, 다만 지주 사이와 양쪽 지주의 바깥에 하나씩 총 3장을 깔아서 바닥돌로 삼고 있는데, 이 역시도 원래의 모습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기단 위에 당간을 세우는 받침은 지주 사이에 돌을 마련하고 그 중심에 지름 36㎝의 둥그런 구멍을 뚫어서 마련하였다.

양쪽 지주에 장식적인 꾸밈이 없으며, 윗부분을 둥글게 다듬은 흔적이 있어 시대가 오래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당간을 고정시키기 위한 간구멍을 각각 지주의 상·중·하 세 곳에 뚫었다. 동쪽 지주의 윗부분이 깨어져 있는데, 8·15해방 후 인근의 석수(石手)들이 석재로 반출하기 위한 자취라고 전해진다.

각 부분에 섬세하게 조각을 해두지는 않았어도, 단정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서쪽 지주의 바깥쪽에 새겨진 명문은 모두 6행 123자로 해서체로 쓰여졌다. 이 글에 의하면 신라 흥덕왕 1년(826) 8월 6일에 돌을 골라서 827년 2월 30일에 건립이 끝났음을 알 수 있다. 당간지주에 문자를 새기는 것은 희귀한 예로, 만든 해를 뚜렷하게 알 수 있는 국내에서 유일한 당간지주이다.


전문설명

이 당간지주< 幢竿支柱 >는 중초사지< 中初寺址 > 삼층석탑< 三層石塔 >과 함께 남아 있으며 양 지주가 원상대로 85cm의 간격을 두고 동서< 東西 >로 대립하여 있다. 아무런 조각이 없어 장식적< 裝飾的 >인 의장< 意匠 >은 없었던 것으로 보이며 상부< 上部 >에는 약간의 가공< 加工 >이 있어 고식< 古式 >을 보이고 있다. 양 지주의 상부< 上部 >는 내측면< 內側面 >의 면 위에서 바깥면으로 내려오면서 활< 弧 >의 모양을 그리며 위로부터 굴곡 없이 깎여졌다. 당간< 幢竿 >을 고정시키는 간공< 杆孔 >은 양 지주 모두 상·중·하의 3곳에 간구< 杆構 >를 마련하여 장치하였는데 상부는 내면 상단에 장방공< 長方孔 >을 마련하여 간을 장치하였고 중·하부는 관통된 원공< 圓孔 >에 간을 시설하게 되어 있다. 기저< 基底 >에는 장대석< 長臺石 >의 기반석< 基盤石 >을 지주 사이와 양지주의 외축에 각기 1매씩 깔아서 기대를 삼고 있으며 간대는 지주 사이의 장대석 중심부에 원공을 시공하고 그 주변에 원대< 圓帶 >로 돌려서 마련한 간단한 간대이다. 이곳을 중초사지< 中初寺址 >라고 하는 것은 서쪽 지주의 바깥에 각자< 刻字 >한 명문< 銘文 >에 의한 것이며 이 지주는 신라< 新羅 > 흥덕왕< 興德王 > 원년< 元年 >(826) 8월 6일에 채석하여 그 이듬해인 흥덕왕 2년(827) 2월 30일에 세운 조성년대< 造成年代 >가 확실한 명문이 있는 국내 유일의 당간지주이다.

 

 

중초사지당간지주


 

 

중초사지당간지주


 

명문


 

하단부


 

중초사지 당간지주


 

서편 지주 측면에 새겨진 조성기록
 
지주 측면의 당간 고정 구멍

양 지주 사이의 당간 꽂이 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