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만들어진 종으로, 1985년까지 서울 종로 보신각에서 제야(除夜)의 종을 칠 때 사용되었다.
조선 세조 14년(1468) 만들어 신덕왕후정릉 안에 있는 정릉사에 있었으나, 그 절이 없어지면서 원각사로 옮겨졌고 임진왜란 이후 종루에 보관했다. 고종 32년(1895) 종루에 보신각이라는 현판을 걸게 되면서 보신각종이라고 불렀다.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 경내에서 보관 중이다.
총 높이 3.18m, 입 지름 2.28m, 무게 19.66톤의 큰 종이며, 전형적인 조선 초기의 종 형태를 하고 있다. 음통이 없고 2마리 용이 종의 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 어깨부분에서 중간까지 완만한 곡선을 이루다가 중간 지점부터 입구 부분까지 직선으로 되어 있다. 몸통에는 3줄의 굵은 띠를, 종 입구 위로는 일정한 간격으로 2줄의 띠를 두르고 있고, 종의 연대를 알 수 있는 긴 문장의 글이 있다.
이 종은 2번의 화재를 겪으면서 원형에 손상을 입고, 음향도 다소 변했으나 명문(銘文)이 남아있어 주조 연대를 확실히 알 수 있는 귀중한 유물이다. |
이 종은 조선 세조(世祖) 14년(1468)에 주조되어 원각사(圓覺寺)에 있다가 절이 폐사된 후 숭례문(崇禮門)에 옮겨지고 다시 선조(宣祖) 30년(1597) 명례동현(明禮洞峴)(현 명동성당 부근)에 옮겨진 뒤, 광해군(光海君) 11년(1619) 현재의 자리에 옮겨져 파루(罷漏:오전 4에 33번)와 인정(人定:오후 10시에 28번)에 울려 도성(都城)의 문을 여닫고 하루의 시간을 알리는 데 쓰였다.
높이 3.18m, 지름 2.28m, 무게 19.66톤이며 이 종의 양식은 쌍두(雙頭) 용뉴(龍紐)로 되어 있고 종신복(鍾身腹)에는 3조의 굵은 띠를 돌리고 있다. 또한 종구(鍾口)에는 윗쪽으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2조의 띠를 돌리고 있어 이것이 하대(下帶) 역할을 하는 문양대로 되어 있다.
그리고 종의 몸체에는 “성화 4년 월 일…”이라는 장문의 명문이 새겨 있어 주조년대가 확실한 임진왜란 이전의 범종임을 알 수 있다.
종루(鍾樓)은 태조(太祖) 4년(1395)에 창건된 이래 네 차례의 소실과 여덟 차례에 걸쳐 중건이 있었고, 고종(高宗) 32년(1895)에 ‘보신각’이란 현판을 걸게 됨에 따라 이때부터 보신각이라 불리어졌다. 현재의 건물은 서울특별시가 1979년 8월에 동서 5칸, 남북 4칸의 중층누각(重層樓閣)으로 세운 것이다.
서울 원각사지 대원각사비 우측면 비신 상단 측면(쌍용 꼬리와 구름 무늬) 귀부 뒷 부분 (귀갑문과 꼬리) 비신 상단 정면 (쌍용과 제액) 서울 원각사지 대원각사비 원각사지 대원각사비 좌측면 원각사지 대원각사비 이수반룡 원각사지 대원각사비 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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