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국보

국보 제109호 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 (軍威 阿彌陀如來三尊 石窟)

오늘의 쉼터 2008. 1. 24. 20:08


종     목 국보  제109호
명     칭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 (軍威 阿彌陀如來三尊 石窟)
분     류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불교/ 불전
수량/면적 1기
지 정 일 1962.12.20
소 재 지 경북 군위군  부계면 남산리 산15
시     대통일신라
소 유 자국유
관 리 자군위군

일반설명

경상북도 군위군 팔공산 절벽의 자연동굴에 만들어진 통일신라 초기의 석굴사원으로,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경주 석굴암 석굴(국보 제24호)보다 연대가 앞선다. 이 석굴에는 700년경에 만들어진 삼존석불이 모셔져 있는데, 본존불은 2.18m, 왼쪽 보살상은 1.8m, 오른쪽 보살상은 1.92m이다.

가운데 본존불은 사각형의 대좌(臺座) 위에 양 발을 무릎 위에 올리고 발바닥이 위로 향한 자세로 앉아 있는 모습이다. 민머리 위에는 상투 모양의 큼직한 머리(육계)가 있으며, 얼굴은 몸에 비하여 큰 편으로 삼국시대 불상에서 보이던 친근한 미소가 사라지고 위엄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옷은 얇게 걸치고 있어서 당당한 신체의 굴곡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으며, 옷자락은 넓은 무릎을 거쳐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 아래까지 길게 늘어져 있다. 손모양은 오른손을 무릎 위에 올리고 손가락이 땅을 향한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인데, 우리나라 불상에서 나타나는 최초의 예로써 의의가 크다.

같은 양식을 보여주는 좌우의 보살상은 각각의 머리에 작은 불상과 정병이 새겨진 관(冠)을 쓰고 있다. 가슴 앞에는 목걸이를 걸치고 팔에는 팔찌를 끼고 있으며, 옷은 길게 U자형의 주름을 그리면서 내려오고 있다. 이들 보살상은 날씬한 몸매에 어울리는 신체 비례와 목·허리·다리 3부분을 비틀고 있는 모습에서 새롭게 수용된 중국 당나라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은 삼국시대 조각이 통일신라시대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높은 문화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자연 암벽을 뚫고 그 속에 불상을 배치한 본격적인 석굴사원이라는 점에서 불교 미술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전문설명

 

천연 절벽의 자연동굴속에 만들어진 이 석굴사원은 인공적 석굴사원인 석굴암의 석굴보다 조성한 연대가 앞선 것으로, 한국 석굴사원 사상 중요한 위치를 지니고 있다. 이 석굴사원< 石窟寺院 >에는 서기 700년경에 조성된 삼존석불< 三尊石佛 >이 안치< 安置 >되어 있다. 본존불< 本尊佛 >인 중앙의 여래상의 높이는 2.88m, 양옆 협시불< 脇侍佛 > 가운데 왼쪽 보살상은 1.92m, 오른쪽 보살상은 1.8m에 이르는 큰 석불들이다. 본존여래상은 통일신라< 統一新羅 > 불상의 특징인 장중한 위엄을 갖추고 항마촉지인< 降魔觸地印 >을 하였으며, 통견< 通肩 >의 얇은 법의< 法衣 >를 입고 있다. 좌우의 보살상은 날씬한 몸매에 목, 허리, 다리에서 살짝 굽은 삼곡< 三曲 > 자세를 하고 있다. 세련된 옷주름과 왼쪽 보살상의 정연한 보주형< 寶珠形 > 두광< 頭光 >은 통일신라 조각예술의 사실적 솜씨를 잘 보여주고 있다. 본존여래상< 本尊如來像 >의 상현대좌< 裳懸臺座 >와 보살상의 복련대좌< 覆蓮臺座 >와 부드러운 선각< 線刻 > 등에서 삼국시대 조각예술의 상징적 솜씨도 남아 있다. 이 석불들은 삼국시대 조각이 통일신라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이룩된 것으로 높은 문화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

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 전경

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향우 관음보살입상, 중앙 아미타 여래좌상, 향좌 세지보살입상)

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

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 전경

세지보살상

관음보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