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상을 모시기 위해 나무나 돌, 쇠 등을 깎아 일반적인 건축물보다 작은 규모로 만든 것을 불감(佛龕)이라고 한다. 불감은 그 안에 모신 불상의 양식뿐만 아니라, 당시의 건축 양식을 함께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 작품은 높이 18㎝의 작은 불감으로, 청동으로 불감과 불상을 만들고 그 위에 금칠을 하였다. 불감 내부를 살펴보면 난간을 두른 사각형의 기단 위에 본존불과 양 옆에 보살상이 있으며, 그 위에 기둥과 지붕으로 된 뚜껑이 덮혀 있다. 법당 모양의 뚜껑에는 앞면과 양쪽에 커다란 창문이 있어서 안에 모셔진 불상을 잘 볼 수 있도록 하였다.
본존불은 얼굴이 세련되지 못하고,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은 주름을 간략한 선으로 표현했다. 몸 뒤편에 있는 광배(光背)는 머리광배와 몸광배로 나누어져 있으며, 불꽃무늬로 가장자리를 장식하고 있다. 본존불 양 옆의 보살상도 구슬로 장식된 관(冠)을 쓰고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형식이나 표현 수법이 본존불과 같다.
불감은 지금도 금색이 찬란하고 지붕에 녹청색이 남아 있는 등 전체적인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본존불의 긴 허리, 불규칙하게 나타나는 옷주름, 그리고 보살이 쓰고 있는 구슬로 장식한 관(冠) 등 여러 양식으로 보아 만든 시기는 중국 북방 계통의 영향을 받은 11∼12세기 경으로 추정된다. 이 작품은 고려시대 또는 그 이전의 목조건축 양식과 조각수법을 보여주는 귀중한 예라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전문설명
불감(佛龕)이란 원래 호지불(護持佛)을 봉안하기 위하여 불당건축을 작게 모작(模作)한 것이다. 그러므로 불감은 여기에 봉안된 불상과 아울러 공예와 조각 양면으로 조형미를 고찰하는 대상이 된다.
이 불감 역시 신라(新羅) 말 고려(高麗) 초의 한국(韓國) 목조건축물의 구조양식을 고찰할 수 있는 구체적인 자료가 된다. 이 불당형(佛堂形)이 보여 주는 건축 각부 양식의 고격(古格), 특히 옥개(屋蓋)부분은 고려(高麗) 초 이전 신라(新羅) 불당건축의 양식을 전해 주는 것일 가능성이 짙은 매우 귀중한 유물(遺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건축형(建築形) 뚜껑을 벗겨 놓고 보면, 수미단(須彌壇) 모양으로 된 건축 기단부의 간결하고 오랜 양식이라든가, 단간(單間) 주심포(柱心包)집 모양이면서 앞뒤 양면 중앙에 공간포(空間包) 하나씩을 나타낸 포작구조(包作構造) 등도 주목되는 양식이다. 기둥에는 엔터시스가 있는데다가 우진각지붕이라는 점, 용마루 양쪽 끝에는 오대(五代) 북송풍(北宋風)의 망새(치미(치尾))가 뚜렷하고, 네 귀마루 위에는 각기 봉두(棒頭) 모양의 대소 장식 2개씩이 붙어 있는 점 등은 한층 더 고격(古格)을 보여 주는 것으로 주목된다.
감(龕)의 두 측면과 정면에는 넓은 개창(開窓)이 있어서 감 안의 삼존불(三尊佛)이 잘 보이도록 되어 있으며, 네 처마귀에는 풍탁(風鐸)을 달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구멍이 남아 있다.
감 안에 안치된 삼존불(三尊佛)은 중앙에 여래좌상(如來坐像), 양쪽에 협시보살(脇侍菩薩)이 시위해 있는데, 조각의 기법으로 보나 얼굴의 표현으로 보나 치기(稚氣)가 있어서 세련된 작풍(作風)을 나타낸 것으로는 볼 수 없다.
본존여래불(本尊如來佛)은, 장곡사(長谷寺) 상대웅전(上大雄殿) 석조불좌(石造佛座)(국보(國寶) 제58호)를 연상시키는 고격(古格)있는 4각형 대좌 위에 결가부좌(結跏趺坐)했으며, 오른손은 들어서 시무외인(施無畏印)을 하고, 왼손은 무릎을 짚은 촉지인(觸地印)을 나타내고 있다. 통견(通肩) 법의(法衣)는 간략한 선각(線刻)으로 표현했고, 불상에 붙여서 주조(鑄造)된 앙련좌대(仰蓮座臺) 앞면으로는 법의(法衣)자락이 약간 늘어져 있다. 머리는 나발(螺髮)인데 백호(白毫)는 없고, 타출문(打出文)으로 된 전신광배(全身光背)를 등지고 있다.
두 협시보살상(脇侍菩薩像)은 모두 권점문(圈點文)으로 장식된 삼산형(三山形) 보관(寶冠)을 쓰고 있으며, 본존불(本尊佛)과 비슷한 타출문(打出文) 광배를 다 같이 갖추고 있다. 오른쪽 협시보살(脇侍菩薩)은 오른손을 수평으로 들어서 손바닥을 아래로 하고 왼팔을 약간 높이 들어 손바닥을 보이고 있으나, 왼손은 손바닥을 아래로 하고 있다. 이 두 협시(脇侍)의 보발(寶髮)은 양 어깨 위까지 드리워져 있고, 치마는 좁고 길게 내려와 발등 위에 이르렀으며, 천의(天衣)는 겨우 무릎 근처까지 내려와 있다. 이들 보살(菩薩)의 장엄구(莊嚴具)나 옷주름의 표현은 매우 엉성하다.
이 삼존불(三尊佛)은 모두 장방현 동판(銅版) 위에 못으로 고정시킨 것을, 다시 기단 위에 뚫어진 장방형 구멍을 막아서 못으로 고정시켰는데, 치기(稚氣)있는 이들 삼존불(三尊佛)의 조각수법은 불감 자체가 지닌 정제(整齊)되고 또 고격(古格)있는 양식과는 대조적이어서, 양자가 같은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 아닐 것이라는 추정을 가능케 해 준다.
불감은 아직도 도금색(鍍金色)이 찬란하며, 지붕에는 녹청색(綠靑色)의 칠이 남아 있고, 전체적인 보존상태는 매우 좋다.
금동삼존불감 금동삼존불감 금동삼존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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