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악산에 자리한 금산사는 백제 법왕 2년(600)에 지은 절로 신라 혜공왕 2년(766)에 진표율사가 다시 지었다.
미륵전은 정유재란 때 불탄 것을 조선 인조 13년(1635)에 다시 지은 뒤 여러 차례의 수리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거대한 미륵존불을 모신 법당으로 용화전·산호전·장륙전이라고도 한다. 1층에는 ‘대자보전(大慈寶殿)’, 2층에는 ‘용화지회(龍華之會)’, 3층에는 ‘미륵전(彌勒殿)’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1층과 2층은 앞면 5칸·옆면 4칸이고, 3층은 앞면 3칸·옆면 2칸 크기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짠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꾸몄다. 지붕 네 모서리 끝에는 층마다 모두 얇은 기둥(활주)이 지붕 무게를 받치고 있다.
건물 안쪽은 3층 전체가 하나로 터진 통층이며, 제일 높은 기둥을 하나의 통나무가 아닌 몇 개를 이어서 사용한 것이 특이하다. 전체적으로 규모가 웅대하고 안정된 느낌을 주며, 우리 나라에 하나밖에 없는 3층 목조 건물로 잘 보존해야 할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전문설명
금산사는 백제 법왕 2년(600)에 창건된 대사찰로 신라 해공왕 2년(766)에 중창한 것으로 되어 있으며, 현 건물은 조선 인조 13년 수문대사가 재건한 우리나라 유일의 3층 불전으로 용화전, 산호전, 장륜전이라고도 불리워진다.
1층과 2층은 정면 5칸, 측면 4칸이며, 3층은 정면 3칸, 측면 2칸인 팔작지붕 다포(多包)집으로 내부는 통층(通層)으로 되어 있다. 제일 높은 기둥이 하나로 된 통나무가 아니고 몇 토막을 이어서 만든 것이 특이하다.
이 특수한 가구방식(架構方式)은 목조탑파(木造塔婆)의 양식에서 번안(飜案)된 구조로 규모가 웅대하고 상부의 체감이 안정된 느낌을 준다.
김제 금산사 미륵전
김제 금산사 미륵전 귀공포
김제 금산사 미륵전 내부 가구
김제 금산사 미륵전 삼존불
김제 금산사 미륵전 정면 공포
김제 금산사 미륵전 측면
김제 금산사 미륵전
남쪽측면
내부 불상1
내부 불상2
내부 불상3
미륵전 우측면
미륵전 좌측면
미륵전 현판들1
미륵전 현판들2
미륵전 현판들3
미륵전 현판들4
적멸보궁에서 바라 본 극락전 측면
정면
오층석탑에서 내려다 본 미륵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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