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주사는 신라 진흥왕 14년(553)에 인도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온 승려 의신이 처음 지은 절이다. 법주사 팔상전은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유일한 5층 목조탑으로 지금의 건물은 임진왜란 이후에 다시 짓고 1968년에 해체·수리한 것이다. 벽 면에 부처의 일생을 8장면으로 구분하여 그린 팔상도(八相圖)가 그려져 있어 팔상전이라 이름 붙였다.
1층과 2층은 앞·옆면 5칸, 3·4층은 앞·옆면 3칸, 5층은 앞·옆면 2칸씩으로 되어 있고, 4면에는 돌계단이 있는데 낮은 기단 위에 서 있어 크기에 비해 안정감을 준다. 지붕은 꼭대기 꼭지점을 중심으로 4개의 지붕면을 가진 사모지붕으로 만들었으며, 지붕 위쪽으로 탑 형식의 머리장식이 달려 있다.
건물의 양식 구조가 층에 따라 약간 다른데, 1층부터 4층까지는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고, 5층은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공포를 설치한 다포 양식으로 꾸몄다. 건물 안쪽은 사리를 모시고 있는 공간과 불상과 팔상도를 모시고 있는 공간, 그리고 예배를 위한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법주사 팔상전은 지금까지 남아 있는 우리 나라의 탑 중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며 하나뿐인 목조탑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전문설명 | 법주사는 신라 진흥왕 14년(553)에 인도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온 승려 의신이 처음 지은 절이다. 법주사 팔상전은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유일한 5층 목조탑으로 지금의 건물은 임진왜란 이후에 다시 짓고 1968년에 해체·수리한 것이다. 벽 면에 부처의 일생을 8장면으로 구분하여 그린 팔상도(八相圖)가 그려져 있어 팔상전이라 이름 붙였다.
1층과 2층은 앞·옆면 5칸, 3·4층은 앞·옆면 3칸, 5층은 앞·옆면 2칸씩으로 되어 있고, 4면에는 돌계단이 있는데 낮은 기단 위에 서 있어 크기에 비해 안정감을 준다. 지붕은 꼭대기 꼭지점을 중심으로 4개의 지붕면을 가진 사모지붕으로 만들었으며, 지붕 위쪽으로 탑 형식의 머리장식이 달려 있다.
건물의 양식 구조가 층에 따라 약간 다른데, 1층부터 4층까지는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고, 5층은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공포를 설치한 다포 양식으로 꾸몄다. 건물 안쪽은 사리를 모시고 있는 공간과 불상과 팔상도를 모시고 있는 공간, 그리고 예배를 위한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법주사 팔상전은 지금까지 남아 있는 우리 나라의 탑 중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며 하나뿐인 목조탑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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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진흥왕 14년(553)에 창건되어, 조선 인조 4년(1626)에 벽암선사(碧巖禪師)가 재건하였고, 최근(1968)에 완전 해체 복원공사를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팔상전은 법주사의 오층목조 탑파건축(塔婆建築)으로, 1984년 4월 30일 쌍봉사의 대웅전으로 쓰이고 있던 삼층목조탑이 화재가 발생하여 없어지게됨으로써, 한국 목조탑(木造塔)의 유일한 실예(實例)가 된 중요한 건축물이다.
1층과 2층은 정면 5칸 측면 5칸, 3·4층은 정면과 측면 3칸, 5층은 정면과 측면 모두 2칸의 정방형으로 되어 있고 지붕은 사모지붕으로 상부에 상륜부(相輪部)가 온전하게 갖추어져 있다. 공포(공包)의 양식(樣式)은 1층부터 4층까지는 기둥 위에만 공포를 짠 주심포식(柱心包式)이나, 5층은 주간(柱間)에도 공포를 짜 올린 다포식(多包式)으로 되어 있음이 주목된다. 내부 중앙에는 찰주(擦柱)의 심초석이 있어 이 위에 심주(心柱)를 세웠고, 이의 네 귀에 우고주(隅高柱)를 세웠다. 1층의 변주(邊柱)와 우고주를 연결한 퇴보 위에는 2층의 변주를 세웠다. 이러한 가구법은 목조탑의 전형이 아닌가 생각된다.
전체 높이는 기단부에서 상륜(相輪)까지 약 24m로서 현존하는 한국의 탑파 중에 제일 높은 것이다.
법주사 전경
보은 법주사 팔상전
법주사 팔상전 2층 공포
법주사 팔상전 내부 사천주 법주사 팔상전 내부 퇴량상 가구 보은 법주사 팔상전 보은 법주사 팔상전 서쪽 측면 귀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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