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국보

국보 제41호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 (淸州 龍頭寺址 鐵幢竿)

오늘의 쉼터 2008. 1. 19. 20:24



종     목국보  제41호
명     칭청주 용두사지 철당간 (淸州 龍頭寺址 鐵幢竿)
분     류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불교/ 당간
수량/면적 1기
지 정 일 1962.12.20
소 재 지 충북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2가 48-19
시     대고려시대
소 유 자국유
관 리 자청주시

일반설명

절에 행사가 있을 때, 그 입구에는 당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이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를 당간이라 하며, 이를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당간이 서 있는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는 예전에 용두사라는 절이 자리잡고 있던 곳이다. 용두사는 고려 광종 13년(962)에 창건되었으나 고려말의 잦은 전쟁과 난으로 인해 폐허가 되었고, 절이 있던 터는 청주시내의 가장 번화한 거리로 변하였다.

이 당간은 밑받침돌과 이를 버티고 있는 두 기둥이 온전히 남아 예전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두 기둥은 바깥면 중앙에 세로로 도드라지게 선을 새겨 단조로운 표면에 변화를 주었다. 그 사이로 원통 모양의 철통 20개를 아래위가 서로 맞물리도록 쌓아 당간을 이루게 하였고, 돌기둥의 맨 위쪽에는 빗장과 같은 고정장치를 두어 당간을 단단히 잡아매고 있다. 특히 세 번째 철통 표면에는 철당간을 세우게 된 동기와 과정 등이 기록되어 있는데, 원래는 30개의 철통으로 구성되어 있었다고 한다.

당간을 세운 시기는 절의 창건과 때를 같이 하는 고려 광종 13년(962)으로, 연대를 확실하게 알 수 있어 소중한 가치를 지닌다. 또한 당간이 남아 있는 경우가 드문 우리 문화재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이곳과 함께 공주 갑사, 안성 칠장사의 세 곳에서만 철당간을 접할 수 있어 보기 드문 작품이다.

현재 청주에는 이 유물과 관련된 일화가 다음과 같이 전해지고 있다. 예로부터 청주에는 홍수에 의한 재난으로 백성들의 피해가 많았는데, 어느 점술가가 이르기를 큰 돛대를 세워 놓으면 이 지역이 배의 형상이 되어 재난을 면할 수 있을 것이라 하였다. 결국 이곳에 돛대 구실을 하는 당간을 세워 놓으니 재난을 피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청주를 주성(舟城)이라 이름하였다 한다.


전문설명


신라< 新羅 >·고려< 高麗 >를 통하여 수많은 사찰< 寺刹 >의 건립< 建立 >과 함께 설치< 設置 >된 당간< 幢竿 >들이 있었으나 대개가 현재 석조< 石造 >의 지주< 支柱 >만이 남아 있는 실정이다. 특히 당간에 명문< 銘文 >이 있어 그 건립년대< 建立年代 >를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이 철당간과 공주< 公州 > 갑사< 甲寺 >의 철당간< 鐵幢竿 >뿐이다. 당간의 지주는 화강석< 花崗石 >으로 양지주가 마주 서 있고 그 사이에 철통< 鐵桶 >의 원형< 圓形 > 당간 20개를 연결시켜 12.7m의 철제당간을 세웠다. 주목< 注目 >할 것은 철제당간의 밑에서부터 셋째 번의 원형철통 표면< 表面 >에 철당기< 鐵幢記 > 명문이 양각< 陽刻 >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것으로 건립년대< 建立年代 >가 준풍< 峻豊 > 3년, 곧 고려 광종< 光宗 > 13년(962) 3월 29일이라는 것을 명확히 알 수 있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유물< 遺物 >이다. 현재 지주의 높이는 4.2m이고, 철제원통당간 1개의 높이는 0.63m이며 전체 높이는 12.7m에 달한다.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

용두사지 철당간 명문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

기단부

용두사지 철당간1

용두사지 철당간2

용두사지 철당간3

용두사지 철당간4

종문대

철당간 명문

철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