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대전문화재자료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65호) 쌍청당 송유묘표

오늘의 쉼터 2023. 5. 5. 14:49

 

종    목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65호)
명    칭 쌍청당 송유묘표 (雙淸堂宋愉墓表)
분    류 기록유산 / 서각류 / 금석각류 / 비
수량/면적 1기
지 정 일 2021.07.19
소 재 지 대전광역시 동구
시    대 조선 시대
소 유 자 은***
관 리 자 은***

일반설명

송유의 묘표(墓表 : 묘주의 사적과 행적을 새겨 묘소 앞에 세우는 표석)이다. 송유(1388~1446)의 본관은 은진 호는 쌍청당(雙淸堂)이다. 조부는 정몽주 등 제현들에게 존경을 받은 사헌부잡단 송명의(宋明誼)이고 부친은 진사 송극기 어머니는 고흥류씨 류백준의 딸이다. 은진송씨가 회덕에 정착한 것은 송명의 때부터이지만 은진송씨가 회송이라고 칭해질 만큼 지역사회의 깊은 연고를 갖게 된 것은 송유 때부터로 의미가 있다. 이 때 송촌(宋村)이라는 지명도 생기게 되었다.

묘표는 17세기에 입비된 것으로 비신이 크게 풍화됨 없이 잘 보존되어 비문의 판독이 가능하다. 비문의 찬자(撰者)는 김상헌(金尙憲 : 1570~1652), 서자(書者)는 김집(金集 : 1574~1656), 두전(頭篆)은 송준길(宋浚吉 : 1606~1672)이 하였다. 내용적인 면에서 약 500여명에 이르는 자손록으로 수록인원 수에서 매우 희귀한 사례이고 자손의 기록방식은 친외손 구분이 없이 수록하고 있는데 이는 17세기 이전의 전통을 반영한 것이다.

묘표의 형태를 보면 가첨석은 와가형의 팔작지붕형으로 전형적인 와가(瓦家)의 지붕 모습을 세밀하게 표현하고 있다. 비대는 상당히 높고 큰편에 속하며 비대의 상단에 복련형의 연꽃잎이 선명히 조각되어 있다. 비대의 측면에는 연주형의 장식이 새겨져 있고 상(床 )다리와 같은 문양이 조각되어 있다. 지붕형식의 가첨석과 높은 방부형의 비대는 17세기 이후 신도비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송유묘표는 조선 후기 대표적인 신도비 양식을 보여준다.


 

쌍청당송유묘표
쌍청당송유묘표
쌍청당송유묘표
쌍청당송유묘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