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강원 유형문화재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74호 원주 구룡사 목조관음보살좌상과 복장유물

오늘의 쉼터 2015. 12. 3. 23:46

 

 

 

종 목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74호

명 칭

원주 구룡사 목조관음보살좌상과 복장유물

(原州 龜龍寺 木造觀音菩薩坐像과 腹藏遺物)

분 류 유물 / 불교조각/ 목조/ 보살상
수량/면적

불상 1구, 복장유물 8종

지정(등록)일

2015.11.06

소 재 지

강원 원주시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구룡사
관리자(관리단체) 구룡사
상 세 문 의 강원도 원주시

 

일반설명

 

2014년 8월 개복한 조성발원문에 “康熙二十七年丙寅四月日”이라는 조성연대가 적혀있다. 1686년 4월에 현 횡성군 봉복사(鳳腹寺) 반야암(般若庵)에서 화원(畵員) 금문(金文)ㆍ대웅(大雄)ㆍ법휘(法輝)가 관음보살로 조성하였다. 봉복사 반야암은 670년(문무왕 10)에 창건되어 1748년(영조 24)에 천진암(天眞庵)과 같이 소실되었다고 한다. 이외 1911년 발견된 개금발원문 내용으로 보살상은 1715년, 1767년, 1887년, 1911년까지 총 네 차례 개금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반야암이 폐사된 후 1911년 이전 구룡사에 불상이 옮겨 봉안되어 졌음을 알 수 있다.

○ 개금발원문에 불화의 제작 현황까지 정확하게 적어 놓아 조선말기 불교회화사 연구에도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예를 들어 1887년 개금과 더불어 후불도ㆍ원불(願佛)ㆍ신중도ㆍ현왕도ㆍ독성도가 그려졌고, 1911년 개금 시에 입석대(立石坮)에 봉안된 아미타불 개금, 본방(本房) 신중도, 미지산(彌智山) 용문사(龍門寺) 신중도가 동시에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 불상을 제작한 수화승 금문은 17세기 중반부터 18세기 전반까지 활동한 조각승으로, 수화승 혜희와 1655년 충북 보은 법주사 목조관음보살좌상, 1662년 전남 순천 송광사 관음전 목조보살좌상, 1666년 경기 안성 봉덕사 목조여래좌상을 조성하였다. 또한 1668년에 수화승 승일과 경북 김천 직지사 비로전 석조비로자나불좌상, 1675년에 수화승 혜희와 전북 김제 금산사 대장전 불상을 조성하였다. 이후 금문은 1703년 5월에 경북 상주 운봉사 괘불도[문경 김룡사 소장] 조성 시 복장시주로 참여하고, 1703년 6월에 수화승으로 부산 기장 장안사 석조삼세불좌상 중수, 1706년 수화승으로 경기 안성 칠장사 지장전 목조지장보살삼존상과 시왕상 등을 조성하였다. 따라서 원주 구룡사 목조관음보살좌상은 17세기 후반에 활동한 조각승 금문이 제작한 기년명 보살상이고, 그는 법령(法靈) → 혜희(惠熙) → 마일(摩日), 금문(金文), 청윤(淸允) → 세균(世均)으로 이어지는 조각승 계보에 속한 조각승으로 파악된다. 불상의 현상은 귀 양 옆으로 관대(冠帶)가 휘날리는 화려한 보관을 쓰고 있는데, 보관에는 화염문과 구름무늬, 꽃무늬 등이 장식되어 있다. 이들 장식은 모두 따로 제작하여 보관에 부착한 것이다. 방형의 얼굴에 코가 큼직하며, 이목구비가 단정하다. 머리에서 내려온 보발(寶髮)은 귓바퀴를 가로질러 어깨 위로 흘러내린다. 양 손은 따로 만들어 신체와 분리되며, 수인은 엄지와 중지를 맞댄 아미타수인을 결하고 있다. 양 손은 신체에 비하여 큰 편이다. 보살상은 천의가 아닌 가사를 걸치고 있는데, 이처럼 보살상이 가사를 입고 불상의 수인을 취하고 있는 것은 조선시대 보살상의 보편적인 특징이다. 화려한 보관, 방형의 얼굴, 단정한 이목구비에 큰 코, 배 앞의 W자형 옷자락, 양 무릎 앞으로 부채처럼 퍼진 옷 주름 등은 이 보살좌상이 조선후기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현재의 대좌는 최근에 새로 조성한 것이다. 복장유물은 願文, 改金願文, 다라니, 묘법연화경, 범자진언, 후령통이 있다.

 

 

 

 

불상정면

불상배면

불상측면

원문

개금발원문

묘법연화경

후령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