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강원 유형문화재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41호 (평창군) 영은사 사명당대선사진영

오늘의 쉼터 2014. 9. 1. 00:59

 

종 목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41호 (평창군)
명 칭 영은사사명당대선사진영(靈隱寺四溟堂大禪師眞影)
분 류 유물 / 불교회화/ 탱화/ 나한조사도
수량/면적 1폭
지정(등록)일 2001.12.29
소 재 지 강원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63-1 월정사성보박물관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영은사
관리자(관리단체) 월정사
상 세 문 의 강원도 평창군 문화관광과 033-330-2541
 
일반설명
 
이 진영은 원래 범일국사진영(梵日國師眞影, 강원도유형문화재 제140호)과 함께 삼척시 근덕면 궁촌리 영은사의 칠성각에 봉안되어 있던 것인데, 1999년 6월 18일 월정사성보박물관으로 옮겨 전시중에 있다. 화기가 없어 제작시기나 작자는 알 수 없으나 범일국사의 진영과 같은 시기(1788년)에 같은 작자(信謙)에 의해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유정(惟政 ; 1544∼1610)은 조선 중기의 고승(高僧)으로 풍천임씨(豊川林氏)이며 속명은 응규(應奎), 자는 이환(離幻) 호는 사명당(四溟堂) 또는 송운(松雲)이다. 경남 밀양 출신으로 1559년 아버지가 죽자 김천 직지사(直指寺)로 출가하여 3년 뒤 승과(僧科)에 합격하였으며 선조 8년(1575) 선종(禪宗)의 수사찰(首寺刹)인 봉은사(奉恩寺)의 주지로 천거되었으나 사양하고 묘향산 보현사(普賢寺)의 휴정(休靜)을 찿아가 선리(禪理)를 참구하였다. 오대산 영감사(靈鑑寺)에 잠시 머물렀으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유점사(楡岾寺)에서 승병을 모아 의승도대장(義僧都大將)이 되어 크게 전공을 세웠고 선조는 그 공을 포장하여 선교양종판사(禪敎兩宗判事)를 제수하였다. 국방, 외교 등에서 수많은 업적을 쌓았으며, 1610년 8월 26일 입적하였다. 저서로《사명당대사집(四溟堂大師集)》7권과《분충서난록(奮忠 難錄)》1권이 있으며 시호는 자통홍제존자(慈通弘濟尊者)이다.

사명당의 진영은 의자에 앉아 있는 전신교의좌상(全身交倚坐像)으로 비스듬히 앉은 좌안칠분면(左顔七分面)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원근을 무시한 바닥의 화문석과 의자를 표현한 기법, 전체적으로 화면 가득한 구도 등은 조선후기 진영의 전형적인 양식을 따르고 있다.

얼굴의 모습은 사실적이며 세밀하게 표현 하였고 근엄하기 보다는 늠름한 기풍과 인자한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다. 짙고 풍성한 턱수염은 가슴을 덮고 있으며 우람한 어깨에서는 승장의 기백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얼굴은 밝게 그렸으나 입술은 유난히 붉은색으로 그렸다. 왼손에 주장자를 들고 있으며, 족좌대를 따로 그려 놓았고 청회색 법복, 붉은가사, 화려한 의자 표현과 화문석의 표현기법 등은 전통적인 양식이기도 하지만 영원사 범일국사 진영과 같은 기법이기 때문에 동시에 그려진 것으로 보인다.

정신적인 면을 강조하기 위해 얼굴이 강조되었기 때문에 상체보다는 하체를 빈약하게 표현한 도식적인 방법에 의해 그려졌기 때문에 전체적인 비례는 잘 맞지 않는다.

사명당의 진영은 현재 10여점이 있으나, 사명당이 오대산에 주석한 인연이 있으며, 그림의 보관 상태가 훼손이 없이 깨끗하고, 조선후기의 진영의 양식을 잘 보여 주는 작품이다.
 
 

영은사사명당대선사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