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경북문화재자료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619호 칠곡 감호당 (漆谷 鑑湖堂)

오늘의 쉼터 2014. 2. 28. 20:32

 

 

종 목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619호
명 칭 칠곡 감호당 (漆谷 鑑湖堂)
분 류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주거지/ 주거지
수량/면적 1동
지정(등록)일 2014.02.17
소 재 지 경북 칠곡군  왜관읍 매원리 475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광주이씨 감호당파종중
관리자(관리단체) 광주이씨 감호당파종중
상 세 문 의 경상북도 칠곡군 새마을문화과 054-979-6063

 

일반설명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매원리 매원마을 마을회관 뒤편에 위치하는 감호당은 조선시대 경성판관,
담양부사를 지내고 흥학에 힘쓴 석담(石潭) 이윤우(李潤雨, 1569~1634)가 매원마을의 자연 풍광에
매료되어 만년에 강학하며 거처하기 위해 지은 건물로 감호정사라고도 한다. 후에 아들인 이도장
(李道長, 1607~1690)에게 물려주게 되었고, 이도장은 여기에 거처하며 독서(讀書)와 강도(講道)에
힘써 건물의 주인으로 추대되었다. 이윤우는 칠곡 사양서원과 성주 회연서원에 봉안되어 향사되고
있다.
감호당의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으나 1610년(광해군 2) 이윤우가 사직 후 향리에 돌아온 때
부터 1624년(인조 2) 담양부사로 도임한 시기인 1610~1624년 사이라고 보면 큰 무리가 없다. 또한
감호당 중수기문을 비추어 볼 때도 17세기 초에 건립되었으리라 짐작된다. 그 후 두 차례의 보수
를 했고 1838년(헌종 4)에 크게 중수한 바 있으며, 2002년에도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중
수 기문과 현존 건물을 볼 때 창건 당시 건물이 중건되었으나, 현재 건물의 규모와 구조가 크게 다
르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감호당의 형태는 일곽 서쪽의 일각문을 내고 방형으로 구획한 돌담 안에 ‘一’자형 건물을 남향으
로 앉혀 배치했다. 감호당 뒤에는 우측에 직교하여 ‘一’자형의 부속건물이 있어 전체적으
로 'ㄱ'자형을 취하고 있다. 규모는 정면 5칸, 측면 1칸이며 평면 형식은 중앙에 2통칸 마루를 중
심으로 좌측에 1칸 온돌방과 우측에 2칸 온돌방이 배열된 중당협실형(中堂挾室形)이다. 양 온돌방
뒤에는 반침이 설치되어 있다. 청방간에는 2분합 들문이 설치되어있고 온돌방 전면에는 쌍여닫이
와 외여닫이 띠살창, 측면에는 외여닫이 띠살창이 설치되어 있다. 대청 배면은 싸여닫이 판장창(바
라지창)이 각각 설치되어 있다. 가구는 3량가로 단촐한 구성을 하고 있다. 기둥 상부의 결구 방식
은 정면 대청 상부만 장혀수장이고 나머지는 민도리 형식이다. 자연석 기단 위에 자연석 주춧돌을
앉힌 다음 방형 기둥을 세워 상부 가구를 받치고 있다. 지붕은 맞배지붕으로 마감했고 막새를 들였
다. 양 측면 박공쪽은 풍판을 달아내었다. 정자, 정사 등 강학지소 건물의 일반적 지붕 구조가 팔
작지붕이 많은데 비해 보기 드문 형태이다.
매원리 마을회관 뒤편에 토석 혼축 담장을 두르고 남향으로 자리하고 있으며, 최근 담장 보수와 기
와 교체가 이루어 졌다. 특히 지붕 끝 처마에는 원래 없었던 막새가 달려있다. 여러 번의 보수와
최근 중수로 인해 옛 목부재는 남아있지 않으나 초석과 건물의 평면형태는 창건 당시부터 많이 변
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되어 조선초 이 지방 정사류 건축의 이해를 돕는데 일조할 것으로 판단된
다. 특히 지붕이 팔작이 아니라 맞배형태인 점은 지방색과 함께 시기적 차이로 볼 수 있다. 서원이
나 서당보다 한 단계 아래인 사설 강학(講學) 활동 공간으로서 칠곡 지방의 일반적 양식과 평면 구
조가 다른 것이 특징이다. 조선 중·후기 매원리 일대의 강학 공간 구조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칠곡 감호당

 

칠곡 감호당

 

칠곡 감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