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 목 |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530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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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칭 | 함안 검암리 충순당(咸安 儉巖里 忠順堂) |
분 류 | 유물 / 유적/사당 |
수량/면적 | 1동(53.19㎡) |
지정(등록)일 | 2011.04.28 |
소 재 지 | 경남 함안군 |
시 대 | 조선시대 |
소유자(소유단체) | 성산이씨충순당종중 |
관리자(관리단체) | 성산이씨충순당종중 |
상 세 문 의 | 경상남도 함안군 문화관광과 055-580-2321 |
일반설명
충순당(忠順堂): 이령장군의 사당인 충순당은 검암리 상검마을에 있다. 이령(李伶) 장군의 자는 여윤(汝允)이요, 호는 충순당(忠順堂)이고, 이름은 (伶)이다 본관은 성산(星山)이며 중종 36년(1541년) 검암에서 태어났다. 선생은 왜군이 부산에 침입했다는 소식을 듣자 즉시 마을에서 장정 백여 명을 모아 김해로 달려가 김해성에서 왜군을 맞아 한 치의 물러섬 없이 싸우다 장렬히 순국(殉國)했다. 선생이 의병을 일으킨 때가 4월 14일이요, 순국한 때가 4월 20일이니 홍의장군 곽재우가 의병을 일으킨 4월 22일보다 이르다. 전국최초로 의병을 일으킨 것이다.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15만 8700명의 육군의 정규 병력을 원정군으로 편성하여 9번대(番隊)로 나누어 조선을 침공하도록 했다 이밖에 수군과 정규 전투부대 외에도 많은 병력이 출동하여, 전체 병력은 20여 만명이나 되었다. 1592년 4월 13일, 왜군 제1번대 주장인 소서행장(小西行長)은 병선 700여 척에 나누어 타고 오전 8시 오우라 항(大浦項)을 떠나 오후 5시에 부산 앞바다에 도착하여 부산포에 침입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52세의 이령 장군은 다음날인 4월14일 즉시 100여명의 의병을 모집해 백리 길도 마다않고 김해성으로 달려가 참전하였으니 이것이 임진왜란 최초의 의병이자 효시(嚆矢)이다.
함안 검암리 충순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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