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인천유형문화재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2호 김상용선생순절비 (金尙容先生殉節碑) 해제

오늘의 쉼터 2011. 12. 17. 04:49

 

종 목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2호
명 칭 김상용선생순절비 (金尙容先生殉節碑)
분 류 유물 / 비
수량/면적 1기
지정(등록)일 1995.03.02
해 제 일 1995.11.15
소 재 지 인천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 416
시 대
소유자(소유단체) 강화군
관리자(관리단체) 강화군
상 세 문 의 인천광역시 강화군 문화예술과 032-930-3627

 

일반설명

 

이 비는 조선(朝鮮) 인조(仁祖) 때 문신(文臣)으로 병자호란(丙子胡亂)이 일어나자 종묘(宗廟)를 모시고 강화도(江華島)로 피란했으나 청군(淸軍)이 이곳마저 함락하자 남문루(南門樓) 위에 화약(火藥)을 쌓아놓고 불을 붙여 순국(殉國)한 충의(忠義)의 귀감(龜鑑)인 선원(仙源) 김상용(金尙容) 선생의 위국충절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정조(正祖)때 유수(留守)로 부임한 공의 7대손(七代孫) 김매순(金邁淳)이 건립한 순의비(殉義碑)이다. 명종(明宗) 16년(1561)에 출생한 김상용 선생은 장령(掌令) 김번의 증손(曾孫)이며, 병자호란 때 청국(淸國)과의 화의를 극력 반대한 척화파(斥和波) 김상헌(金尙憲)의 형으로 자(字)는 경택(景澤), 호(號)는 선원(仙源), 시호(諡號)는 문충(文忠), 본관(本貫)은 안동(安東)이다. 선조(宣祖) 23년(1590)에 문과(文科)에 급제(及第)한 이래 인조 10년(1632)에 우의정(右議政)이 되고, 인조 15년(1637)에 순국하였는데 그 위패(位牌)는 선원면(仙源面)에 위치한 충렬사(忠烈祠)에 봉안하였다. 당초 순의비는 구(舊) 남문지(南門址)에 있던 것을 1976년 강화중요국방유적(江華重要國防遺蹟) 복원정화사업(復元淨化事業)의 일환으로 현 위치로 비각(碑閣)을 옮겨 세우던 중 숙종(肅宗) 26년(1700)에 당시 강화 유수인 선생의 종증손(從曾孫)인 김창집(金昌集)이 세운 구비(舊碑)가 발견되어 신·구비를 나란히 세웠다.

 

시도기념물 제35호 김상용 순절비로 재지정 

 

 

 

 


김상용선생순절비